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 2014년 11월호

삼각산의 왕기를 품은 고봉산 

삼각산三角山에 올라보면 외청룡 자락에 나즈막한 구릉지와 평야가 펼쳐진다. 이 지역을 고양이라 한다. 고양은 삼각산 행궁지에서 발원한 창릉천昌陵川과 도봉산 주능선에서 발원한 곡릉천曲陵川 사이로 지나가는 산줄기가 펼친 장막이다. 그 산줄기는 도봉산(740m)에 뿌리를 두고 노고산(429m)과 현달산(138m)을 거쳐 고봉산(208m)에 이른다. 가만히 살펴보면, 소위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땅 중에서도 상급으로 치는, 20km에 이르는 완만한 S자형 산줄기의 끝자락에 고봉산이 있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고봉산高峰山의 위용     사진 중앙 아파트 뒤로 우뚝 솟아 보이는 산이 고봉산(203m)이다. 일산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산으로, 하나의 산(一山)이라는 의미를 간직한 산이다. 일산읍과 벽제읍의 경계에 놓여 있다. 조선시대의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파주군 형제봉과 안산의 봉수대를 연결하고 있다. 전략상 요충지로 지금은 높은 철탑과 군대가 진주하고 있다. 고봉산은 일산 주민들의 심신을 힐링시켜주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봉산 영역에 1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비록 고도는 낮아도 100만을 포용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풍산홍씨가 조상들의 영예를 재현하려면 고봉산에서 그들만의 정기를 재충전해야 할 것이다. 고봉산만이 그들의 유전자를 일깨워 주는 열쇠를 가졌다.

홍구洪龜의 탁월한 선택

풍산홍씨의 관향은 안동 풍산이다. 시조 홍지경부터 홍간(2대), 홍유(3대)의 묘지가 안동 풍산읍 아래 풍천면에 있고, 홍연(4대)의 묘는 임하면에 있다. 고려시대 빈문각賓文閣 대제학을 지낸 홍연洪演의 아들 홍구洪龜는 고려가 멸망할 조짐을 보이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할 수 없어 안동 풍산으로 낙향하던 중 고봉산이 아름다워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한다. 이후 고봉현은 풍산홍씨의 세거지가 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을 새로운 안식처로 선정한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배우자 상산김씨의 친정이 이곳에 있었거나 친구라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어쨌든 고봉현은 풍산현을 대신하여 풍산홍씨의 세장지가 되었으며, 본거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한양이 지척인 이곳에 머물기로 한 그의 탁월한 선택은 후손들에게 조선이 망할 때까지 벼슬이 이어지게 하여 영예로운 가문이 되게 하였다. 한양에서 멀수록 관직에 등용되기가 어려웠다. 한양은 왕기王氣의 땅이므로 벼슬을 하려면 왕기가 서린 한양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 한양까지 과거시험 치러 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벼슬은 왕을 보좌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기술이므로 기운을 타고나지 않고서 수행하기는 어렵다.

삼각산 향로봉에서 본 고봉산     낮은 봉우리들 사이에서 우뚝하게 보인다. 산봉우리에는 철탑이 높게 서 있다. 산봉우리에 서 있는 건물이나 철탑은 산의 정기를 흐리게 한다.



노고산에서 고봉산까지 연결된 녹색띠_용맥     사진 우측의 노고산에서 사진 좌측의 고봉산까지 이어진 녹색띠가 드러나 있다. 이것이 산줄기의 연결선이다. 풍수에서는 용맥이라고 부른다.

왕가의 일원이 되다

조선왕조 시대의 명문가가 되는 일은 이율곡이 나 이퇴계처럼 학문이 높거나, 나라를 위해 또는 주군을 위해 충신이 되거나, 왕의 장인(국구)이나 왕의 사위(부마)가 되는 등 왕가와 혈연관계를 맺는 방법이 있었다.

풍산홍씨도 과거를 통하여 꾸준히 벼슬에 오르다가 홍이상洪履祥(10세조)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된다. 그의 아들 6명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 번영의 든든한 기반을 조성한다. 모당공파 중에서도 홍영의 후손에서 현달한 인물이 가장 많았다. 홍이상은 경상도관찰사를 지냈고, 아들 홍영洪霙은 공조참판을 지내며 중앙무대로 진출하면서 조선의 명문가 월사 이정구(연안이씨)의 딸과 혼인하여 가문의 위상을 높인다. 손자 홍주원洪柱元(12세조)은 선조의 부마가 되어 가문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계기를 마련한다. 홍주원의 직계로 홍만용(13세조)은 우참찬에, 홍중기(14세조)는 평양부판관에, 홍현보(15세조)는 예조판서. 홍봉한(16세조)은 영의정을 지내고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장인이 된다. 궁중문학의 백미 <한중록恨中錄>을 쓴 혜경궁 홍씨가 그의 딸이고, 정조의 외조부이다.

풍산홍씨 묘역에서 보이는 삼각산    풍산홍씨 묘역에서 보이는 도봉산과 삼각산이 아름답게 보인다. 삼각산은 한양의 상징이고, 출세의 상징이다. 고봉산이 삼각산의 왕기를 품은 까닭에 명문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도봉산에서 고봉산까지 이어지는 산수도

노론에 갇힌 가문 왕권과 충돌하다

조선후기 당쟁은 예송논쟁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정권에 대한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투쟁이었다. 당黨이란 어떤 이데올로기에 자신들을 스스로 갇히게 하는 것이다. 왕에 대한 충성이나 국가의 안위보다 당파의 강령과 이익이 우선이었다. 영조가 노론의 주장에 쏠려, 소론의 편이었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었으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노론은 조선의 후기를 쥐락펴락했던 당파였으며 노론이외의 당은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조선후기의 왕들은 노론이 탐탁하지 않았으면서도 힘이 없어서 끌려가고 있을 때였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노론이었다. 정조가 등극을 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한을 풀기시작하면서 혜경궁 홍씨의 숙부 홍인한이 사사되고 홍인한도 충격으로 죽게 된다. 동생 홍낙임 마저 역모의 위험에 처하나 혜경궁홍씨의 보살핌으로 죽음을 면하지만, 정조 사후 정순왕후에 의해 죽게 되니 관살官殺의 끈질김이 쇠가죽같이 질기다. 당파싸움을 넘어서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린 것이 조선 말기의 정치의 양상이었다.

홍구와 홍이상의 묘     사진 바로 앞이 홍구(5세)묘, 제일 위쪽이 홍수묘, 그 다음이 아들 홍이상(10세)묘, 중간이 손자 홍영(11세)묘이다. 그 외 후손들은 고봉산의 다른 줄기에 모셔져 있다. 후손의 묘가 조상의 묘 위쪽에 위치한 도장倒葬형식으로 남부지방에서는 역장逆葬이라고 하며 기피한다. 모당 홍이상은 1549년 고봉산 아래 귀이동歸耳洞에서 태어난다. 무덤은 반영구적이어서 오래 남아 있으므로 살펴볼 수 이었지만, 집터는 알 수가 없어서 매우 아쉬웠다.

혜경궁홍씨 풍산홍씨의 수호신이 되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했던가 홍국영洪國榮은 정조의 오른팔이 되어 10촌 할아버지뻘의 홍인한과 홍국영을 축출하고, 정순왕후의 오빠 김구주를 제거하고, 남양홍씨 홍술해와 능성구씨 구선복 등 역모를 잡아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도 선조의 부마 홍주원의 둘째 아들 홍만형의 5세손이다. 그러나 홍국영도 욕심이 지나친 끝에 토사구팽당하여 강릉의 해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풍산홍씨의 가문이 풍비박산되는 가운데 집안을 보존하려고 온몸을 던지는 이가 혜경궁 홍씨였다. 혜경궁 홍씨(1735-1815)가 생존할 때까지 보호받았다. 일례로 홍봉한의 장증손자인 홍세주(1791-)는 18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순조의 특별명령으로 군직軍職을 얻어 출사(1808)하였다. 좌의정左議政 김재찬金載瓚이 그에 대한 임명 취소를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순조에게 혜경궁홍씨는 할머니였다. 혜경궁 홍씨 사후에 풍산홍씨의 벼슬이 현령이나 참봉으로 급격하게 낮아지고 한미해지고 있다. 정조이후 국정주도권을 상실하여 가문의 성장 동력을 만들지 못한 탓이다.

풍수적으로 고봉산의 우백호줄기는 도봉산에서 연결된 능선이 대신하고 있어 매우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 우백호는 여자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집안의 여자나 인척관계에 기인하여 가문이 융성해 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홍이상의 신도비     비문에 의하면, “광해군 5년 선영先塋이 바라보이는 곳에다 작은 집 하나를 짓고 종척宗戚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시를 읊는 일로 소일하였다. 을묘년(乙卯年, 1615년 광해군 7년) 4월에 병이 나자 성城 서쪽 밖 옛집으로 돌아가 약을 물리치고 마시지 않으며 9월 19일 졸卒하니, 춘추 67세였다. 고양高陽 고봉高峯 아래 신좌을향辛坐乙向 자리에 장례하였다”고 적고 있다.
지금은 고봉산 아래 풍산홍씨의 집성촌이 없다. 모두 서울로 떠난 때문이리라. 다만 대여섯 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홍이상신도비 건너편 홍박사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는 홍석현씨가 이곳에서 태어나서 지금도 풍산홍씨 묘역을 지키고 있다.



만경대와 만경사     만경대는 고봉산 정상에서 능선이 내려오다가 봉우리를 만들어 기운을 머금은 자리이다.  풍산홍씨 가문에서는 이곳을 만경대라 부른다. 이곳에서 풍산홍씨의 족집게 교육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무가 없다면 삼각산의 위용이 한 눈에 보여지는 곳이다. 청운의 꿈을 키우던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만경사는 사찰로 등록되어 있지만, 홍이상이 원당으로 창건하였으며, 그 후 후손이 기거하면서 고봉산에 산재한 가문의 묘지를 관리하였다.  만경대가 만경사의 주차공간으로 잠식되고 있다. 만경대는 홍구의 묘소가 있는 용맥의 윗부분으로 풍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형이다. 이 부분이 부서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잘 보존하여야 묘소로 전달되는 기운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모당 홍이상 가문의 정신적 고향_만경대

홍이상의 후손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생각한 고봉산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고봉산 중턱의 만경사萬景寺 건너편에 있는 만경대萬景臺가 바로 그곳이다.

만경사는 홍이상이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원당願堂으로 창건하였다. 그 후 후손들이 거주하며 문중 재실齋室로 삼으면서 소위 족집게 과외의 장소로 만경대를 이용하였다. 집안의 어른과 공부하는 후손 십수명이 만경대에 모여 즉문 즉답 형식으로 가르침을 전수했다고 한다. 모당의 후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공부하였으며 이들이 문과에 많이 급제했다고 한다. 교육의 장소로 문봉서원文峰書院이 있었지만 서원은 풍산홍씨 뿐만 아니라 고양지역의 젊은 서생들을 받아들인 곳이었다. 문봉서원은 흥선대원군에 의해 훼절되었다.

풍산홍씨 가문은 명문가가 되면서 한양에 터전을 마련한다. 홍봉한도 안국동에 집이 있었고 혜경궁 홍씨는 서대문 밖 평동(외가_현재 경교장부근)에서 태어났다. 고봉산은 공부를 하거나 정치적으로 한양을 떠나야 할 때 잠시 낙향하던 곳이었다. 별서別墅가 있었겠지만 고대광실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나마 한국동란 때 폭격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잠시라도 기거했던 집터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서울에 사는 풍산홍씨 모당공파는 대부분 서울토박이라고 한다. 선조의 부마였던 홍주원(1606-1672)때부터 400년을 한양에 터전을 이루며 살아 왔으니 서울토박이로 인정한다.[qsoon]

 


정조외조부 홍봉한 묘     홍봉한의 딸 혜경궁홍씨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었지만, 왕의 장인 즉 국구는 되지 못했다. 사위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조가 자기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일에 대하여 함구령을 내리고,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자는 역적이라 못 박았기에 정조도 할아버지인 영조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서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증하지 못한다.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증하게 되면 영조에 대한 반역이며 이 경우 노론세력에게 쿠데타의 명분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莊獻世子로 추존하는데 그치고, 고종이 장조으로 추증한다.



한중록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의 자전적 기록으로 궁정문학의 백미라 일컫는다. 핵심권력을 가지지 못한 비애가 묻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