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론]20140504

아파트 청약 - 동∙호수지정제로 변환하자

글 사진 : 김 규 순 (저널리스트)

현재 신규 아파트 분양의 경우 동호수를 추첨하는 것이 원칙이다. 매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호수가 배정된다. 동∙호수 지정청약제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미분양의 경우이다.

이것은 동일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개별 아파트는 동일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현실적으로는 동일한 단지 안에서 각동이나 호수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다. 아파트 개별동의 위치나 방향에 따라 매매가격도 조금씩 다르거나 매매의 속도가 다르다. 동일한 청약금액을 내고 어떤 사람은 선호도가 높은 집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다들 기피하는 동∙호수에 간다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다. 동∙호수 지정방식이 아닌 복불복의 추첨방식은 사행심을 조장하기도 한다.

선호도란 아파트의 동∙호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거주하려는 사람의 나이와 직업과 가족 구성원의 특징에 따라 선호도에 차이가 있다. 어떤 가족은 싫어하는데 어떤 가족은 좋아할 수도 있다.

유아를 키우는 가족은 어린이 놀이터 옆에 있는 동을 선호할 것이고, 초등학생이 있는 가족은 학교 옆 아파트를 선호할 수 있지만, 주말 달콤한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의 소음이 성가실 것이다. 노인의 경우 단지의 구석진 곳보다는 단지 입구에 있는 동을 원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또는 마트에서 가까운 동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있는 집은 소음 때문에 1층을 원하거나 양쪽 맨 끝의 아파트를 원하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의 경우에도 노인들은 고층에 살아도 상관없거나 더 좋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저층에 사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생활 위험도에서 훨씬 안정적이다.

건물의 방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햇빛을 싫어하는 사람은 북향을 좋아할 것이고, 야간 근무를 하는 직종의 사람은 아침태양을 피하여 서향을 선택할 것이다. 경치의 문제도 있다. 강남의 강변은 북향이 좋고, 강북의 강변은 남향이 좋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아파트 건물의 배치에 따라 단지의 동선이 달라지며 접근성과 가시성도 차이가 난다. 특히 자연이 연출하는 바람 길에 따라서도 쾌적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거주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주어야 할 것이다. 주거공간이야 말로 가장 기초적인 문화적 혜택으로 생명의 안정감과 정서적 행복감을 보장하는 일차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주거지나 건물은 사는 사람의 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대도시의 각박한 주거환경이더라도, 가능하면 개인이 원하는 주거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작은 단초가 될 것이다.

이제 아파트 청약과 분양도 지정제로 바꾸어야 할 때이다. 동∙호수를 원하는 사람끼리 추첨하자. 행정편의주의 방식이나, 개인차를 무시한 방법은 옳지 않다. 헌법에 보장된 바와 같이 국민들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지금과 같이 IT가 발달한 상황에서 동호수지정청약제 실시는 어렵지 않다.[q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