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8일(토) 아침 8시에 해남으로 가는 답사 버스는 출발했다.

약속했던 장성욱, 이원희 회원이 개인사정으로 불참했다. 좀처럼 가기 힘든 곳만 골라서 일년에 한 번 가는 일박이일 코스의 답사인데 동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우리 회원으로 그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이영호, 정완순, 김판수, 김상동, 이기영, 이태헌 회원도 집안 사정과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어 섭섭하기 그지 없었다,

경부고속도로에는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차량들로 붐비고 있었다. 부지런히 달려 우리는 오전 11시50분경에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에 있는 삼거리 식육식당에 도착했다. 여기는 모원여 님의 동생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차려준 점심을 맛있게 잘 먹었다. 제육볶음과 황룡강에서 막 잡아온 민물고기와 정말 감치는 맛의 새우젓과 게장까지 나왔으며, 디저트로는 각 종 과일과 율금차, 커피로 대미를 장식했다. 나무랄 데가 없는 밥상이었고 임곡의 토속적이고도 속 깊은 맛을 본 식사였다. 시장한 배를 맘껏 채우고는 광산구 광산동 45번지에 있는 월봉서원으로 향했다. 


자동차로는 단 5분 거리지만 호남철도에 막혀 고속버스가 진입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1km를 걸어야 했다. 월봉서원이 서 있는 자리가 예전에는 행주 기씨의 종택이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뒤 근래에 위치를 바꾸어 건립된 건물이라 고즈넉한 맛은 없었다. 




사색을 위한 산책로로 잘 닦여진 솔나무와 대나무가 늘어서 있는 산길을 걷다 보니 고봉 기대승 선생의 묘나 나왔다. 너른 자리에 묘가 안정감 있게 버티고 있었다. 안내판에 <묘좌우향>이란 글이 보이자, 우리 회원이 장난스럽게 무슨 뜻인지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보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단다. 한 회원이 풀이하기를 ‘토끼가 앉아서 우측을 향하고 있다’고 하니 다른 회원이 ‘토끼가 앉아서 소를 향하고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 우리 회원들은 <묘좌우향>고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주산은 힘차고 아름다웠으나 용맥은 두리뭉실했다. 현무 측과 청룍 측으로 대나무가 빽빽이 차 있어 차폐통풍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두루 둘러보고 문화해설사의 도움으로 마을 입구에 위치한 기세훈 고택으로 들어 갔다. 애일당은 운조루와 녹우당과 함께 호남 3대 명당으로 알려져 있단다. 위압적이지 않으나 위엄이 있으면서 단촐하게 서 있었다. 현재는 고봉학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관계상 나주의 남파고택을 가지 못하고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있는 녹우당으로 직행했다. 오후3시반경에 도착했다. 먼저 고산의 5대조인 어초은 윤효정의 묘에 들렀다. 녹우당 뒤에 어초은 사당이 있었고 그 뒤에 묘가 위치하고 있었다. 좀 전에 본 고봉의 묘와 분위기가 비슥했다. 용맥은 뚜렷하지 않았고 주위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 있었다. 좌측으로는 비자나무 숲이 있었고, 뒤로는 대나무가 솔나무와 섞여 빼곡이 들어차 있어서 들어갈 수 가 없을 정도였다.

고산유물관에서는 고산(1587-1671)이 효종의 무덤인 여주 영릉의 자리를 정할 때(1659년) 사용했던 패철을 볼 수 있었다.  1층은 용상팔살이었고, 2층은 천반봉침, 3층은 지반정침, 4층은 투지60룡, 5층은 천산72룡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6,7,8,9층은 잘 보이지 않아서 파악이 힘들었다. 이미 조선초에 하륜이 호순신의 지리신법을 들고 나와 한양을 도읍지로 만드는데 일조를 한 예가 있지만, 이 유물을 가지고 판단할 때 조선이 건국되고 250년이 지난 그 당시에 성행한 이기풍수는 어떠한 것이었는가가 궁금해진다. 자료에 근거한 좀 더 정확하고도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다.

녹우당은 남도의 새로운 거주문화와 건축설계를 엿 볼 수 있었다. 솟을 대문은 바깥 쪽을 향해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골목을 만들어 수줍게 서 있었다. 앞이 탁 트인 곳이라서  집안에 들어 온 기가 설기되지 않도록 문을 좁게 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고산고택에서 내려오니 커다란 연지가 있었다. 솟을 대문을 숨긴 것도 모자라서 못을 조성하여 이중으로 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다.

윤선도 고택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대흥사로 이동했다. 두륜산 정상이 와불형태로 누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특이한 것은 일주문 다음에 있어야 할 천왕문이 없다는 점과 대웅보전이 제일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천왕문이 없는 것은 영암 월출산과 장흥 천관산, 진도 첨찰산 그리고 제주 한라산이 사천왕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흥사 주위를 둘러싼 9개의 봉우리가 또한 대흥사를 보호하고 있기에 이들이 이중으로 사천왕을 대신하므로 천왕문이 없는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이 대흥사 터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곡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배산임수의 자리에서 동향이나 남향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이 곳이다. 그리고 대웅보전에서 나오면서 와불을 정상적으로 쳐다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대웅보전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에 서게 된 이유일 것이다. 이미 오후6시가 넘어서 검은 천이 하늘을 가렸다. 저녁식사는 호남도사의 약속이 빵구가 나는 바람에 급히 기사를 통하여 오리집으로 쳐들어갔다. 오리훈제와 오리돌구이, 오리밥이 코스요리로 나왔다. 오후 8시가 넘어서 대흥사 아래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들어갔다. 통닭 세마리를 시켜 다시 주거니 받거니 음주문화가 형성되었다. 탱크 3대와 따발총 소리가 난무하는 전쟁터와 같은 잠자리를 향유하는 즐거움(?)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