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 2014년07월
유학자 산으로 간 이유_ 도명산과 우암 송시열
도명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백두대간의 준령이 서쪽으로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월간사람과산, 신준식 기자 촬영)
충청북도와 경상북도를 가르는 백두대간 중 산수가 아름다운 곳은 선비들이 세상을 피해 스스로 즐겼다는 둔세자오遯世自娛의 고장이 되었고, 지형이 험해서 접근하지조차 힘든 지역은 유배지로 활용되었다. 그 중에서도 충북의 괴산은 화양구곡과 선유동 계곡이 산 좋고 물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외에도 선비들의 발자취를 좇아가볼 만한 곳이 많다.
도명산道明山 정상 우뚝 솟은 바위가 하늘을 향해 부끄러움 없이 벌거벗은 채 서 있다. 우주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조선 선비의 고상한 자태이다. 성리학의 도道를 밝게 빛나게 하는 산이다. 도학道學에서 명明이라는 글자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대학>에서 ‘대학은 재명명덕在明明德하다’는 구절이 맨 처음 나온다. ‘어른으로써 공부를 하는 목적은 인간이 가진 본연의 밝은 덕을 더욱 빛나도록 갈고닦는데 있다’는 뜻이다. 신명神明이란 용어는 정신의 지극한 경지를 나타낸다. 명明은 지극히 밝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성리학에서 최고의 뜻을 지니고 있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괴산은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던 곳
괴槐자는 회화나무 또는 느티나무를 말한다. 괴산의 괴槐자는 정승을 상징하는 회화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옛날 백성들이 좋아했던 나무로 정자나무 또는 당산목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곳이 많이 남아 있다. 괴산을 관향으로 하는 성씨들은 별로 융성하지 못했다. 사대부들이 지방관으로 근무했다가 벼슬을 그만두면 즐거이 찾는 고장이었다. 괴산출신으로는 한일병탄의 통분을 삭이고자 자결한 풍산홍씨의 홍범식(1871-1910)과 소설 <임꺽정>을 지은 홍명희(1888-1968)가 유명하다.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한 하동출신 정인지(1396-1478)는 무덤을 불정면에 두어 마음의 고향임을 천명했다. 대제학을 지내고 좌찬성을 지냈던 진주류씨 류 근(1549-1627)도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했던 적이 있어 눈여겨보았다가 광해군 때 세상을 버리고 괴산읍 제월대에 고산정을 세우고 산수를 즐겼다. 영의정을 지낸 광주노씨 노수신(1515-1590)의 유배지는 칠성면에 있고, 조선을 쥐락펴락했던 은진송씨 송시열의 유적은 화양구곡에 있다.
정인지의 무덤 하나의 능선이 산의 장막을 뚫고 나와 분지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의연하다. 앞은 정인지 묘이고, 뒤의 묘는 부인 경주이씨 묘이다. 모양은 그럴싸한데 무덤자리의 형태가 안정적이지 않고 흠결이 있어서 안타깝다.
노수신의 유배지 전경 노수신(1515-1590)이 거처했던 유배지. 2년 후 복직되어 승승장구하여 영의정까지 오른다. 산막이 옛길을 따라 5km를 따라가면, 명칭처럼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절경을 만난다. 그가 살았던 수월정은 괴산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 노수신의 후손들이 초가삼간을 멋있는 기와집으로 이전 건축해 놓았다.
고산정 대제학 류 근이 광해군의 정치성향에 적응하지 못해 괴산에 은둔하면서 제월대에 고산정을 지어놓고 즐긴 자연풍광이다. 탁 트인 경치에 빼어난 동양화 한 폭이다. 옛 선비의 정신적 유희를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다.
홍범식 고가 괴산읍내에 있는 풍산홍씨 금산군수 홍범식의 고택. 그는 일제병탄을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순국선열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한다. 소설<임꺽정>을 지은 홍명희의 생가이기도 하다. 홍명희는 광복직후 월북하여 북조선공산당 수립에 동조하여 김일성의 총애아래 부수상에 오른다. 집 뒤 능선이 성성하지만 규모가 작고 좌우능선이 긴밀하지 못하니, 좌우의 살풍을 피할 길 없고 자의식이 뚜렷하지만 세상일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니 애만 쓰고 남는 것이 없다. 부친 홍승목는 친일파, 본인은 항일지사, 아들 홍명희는 공산주의자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였으니, 한 가문의 안타까움을 너머 불행한 근대사를 겪어야 했던 우리의 쓰라린 아픔이다.
유학자가 산으로 가는 까닭은
퇴계 이황선생이 아홉 달을 신선처럼 머물다간 선유구곡仙遊九曲과 우암 송시열이 정사경영을 하던 화양구곡華陽九曲은 금강산 이남에서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최상급으로 꼽힌다. 구곡이란 계곡 중에서 선경仙境을 9군데 정하여 선비가 나아갈 길을 비유하며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 효시는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이다. 괴산은 아니지만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 회재 이언적의 옥산구곡 등등 많이 산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산수가 빼어난 구곡을 찾아서 명명한다는 것은 선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이고 사대부들에게는 이상향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면 교통이 좋아야 하고, 농산물의 수확이 풍족하고 사람들의 마음씀씀이가 아름다워야 하며, 가까운 곳에 비경을 품은 산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산수는 사람의 정서를 순화시켜주며 자연을 통해서 인간은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자연관은 뛰어난 자연의 비경을 즐기는 방법을 채택하여 건물의 향배와 공간을 배치했다. 즉, 집의 방향이나 크기 또는 문의 방향이나 크기를 자연에 의지하여 설계하여 문을 열면 자연의 선경이 그림처럼 정원처럼 눈에 들어오게 했다. 조선의 최상위 선비들은 자연에서 문∙사∙철文∙史∙哲의 통합된 개념을 찾았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사대부가 벼슬길로 나아가기 전에 검증받는 필수전문지식이었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더라도 선비의 정신적인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었으므로, 문사철의 연마는 선비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일이었다. 대학자에게 문사철의 완성이 바로 구곡이었다.
화양계곡의 송시역 유적에 복원된 만동묘 송시열이 명나라 두 황제의 위폐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낸 곳이다. 하나는 임진왜란 시에 조선에 군대를 파병한 신종이고, 다른 하나는 청나라에 끝까지 저항하다 죽은 의종의 위폐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국제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선비 송시열은 의義만 중시하다 중용을 깨닫지 못한 학자였다. 일제는 임진왜란에 구원병을 보낸 명나라가 좋을 리 없었고, 명 황제의 위폐가 조선에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기 힘들었기에 철저하게 훼손시켰다. 중국인은, 청에게 명나라가 망하자 죽은 명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주지도 못했는데 조선의 유학자가 위폐를 모시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훼절된 만동묘정비 일제는 비석에 새긴 글씨를 하나하나 쪼아서 훼손시켰다. 조선의 유학자가 명나라의 황제를 섬기는 것이 못마땅했다.
정치의 중심지가 된 화양구곡
화양구곡을 끼고 있는 산은 도명산과 낙영산 그리고 가경산이다. 그 중에 도명산道明山(650m)은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포함한 송시열 유적을 품고 있다. 도를 밝히는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빼어난 산수를 찾아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학자의 내공과 학문적 경지가 고매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화양구곡을 살펴보면 송시열의 안목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송시열 초상화 국보제239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은진송씨 가문은 양송兩宋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던 가문이었다. 송준길과 송시열이 노론의 영수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고, 영조 대에 동방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면서 조선의 명문가로 우뚝 섰다. 한 집안에서 두 명이나 문묘에 배향된 집안은 광산김씨와 은진송씨 가문이다.
화양구곡에는 (1)경천벽 (2)운영담 (3)읍궁암 (4)금사담 (5)첨성대 (6)능운대 (7)와룡암 (8)학소대 (9)파천를 차례대로 살펴볼 수 있다. 하나하나마다 역사적인 사실도 얽혀 있지만, 구곡은 자기가 추구하는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천벽은 뜻을 세웠다는 입지立志를, 운영담은 청운을 품고 이무기로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 읍궁암은 학문의 정진에 장애가 생겨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단계, 금사담은 학문의 성과가 드러나는 단계, 첨성대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단계, 능운대는 벼슬을 얻어 세상에서 뜻을 펴는 모습, 와룡암은 하늘 높이 날던 용이 천지의 높고 넓음을 깨달아 자중하는 모습, 학소대는 자연을 벗하며 학과 함께 춤을 추는 신선의 경지를, 파천은 제 아무리 단단한 바위도 세월 앞에서는 곰보처럼 변하듯이 자연에 몸을 의지하는 단계를 말한다.
화양구곡은 송시열 자신의 인생행로를 표방한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송시열의 삶과 화양구곡은 합치되지 않는 일면이 있다. 학소대와 파천의 경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숙종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가 구곡을 찾아서 산으로 간 것은 학문의 완성이 아닌 사치와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백성을 위하여 정책을 편 것이 아니라 노론을 위해서 학문을 사용했다. 학문을 높여서 신선의 경지에 들지 못하고 자연에 파묻혀 즐겨 살았다고 하지만, 자연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송시열은 선경을 간직한 산수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도를 닦는 것이야 말로 선비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에 올랐으면서도 벼슬에 나서기보다는 향리에서 자연을 벗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조선 후기에는 학파가 정파였던 시기였다. 그는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본연유학보다도 주자에 의한 신유학을 더욱 중시하였다. 그에게는 공맹보다 주자를 우위에 두고 성인이라고 추켜세웠다. 이것이 다른 정파인 소론과 북인, 남인과 생각이 달랐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만 내세운 채 독재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당파의 뿌리가 그로부터 굳어졌으며 그가 속한 노론의 전횡은 조선의 멸망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가 화양계곡에 기거하자 그를 추종하는 문하門下 선비들과 사대부들이 줄을 이었다고 전한다. 한 때는 조선의 임금보다 더 권력이 컸다고 하며,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왕들은 항상 불안에 싸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군군신신의 가르침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효종과 현종은 젊은 나이에 급서를 하였는데, 일각에서는 공작정치의 일환으로 의심하기도 한다.
암서재 우암 송시열이 금사담 절벽 암반위에 집을 짓고 공부하며 <송자대전>을 집필 한곳으로 전해진다. 풍수적으로 암반위에 집을 짓는 경우는 산신각이나 정자 정도이지만, 송시열은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을 선호했다. 바위는 굳은 결의와 깨어 있는 선비정신, 변하지 않는 의리를 나타낸다. 물은 기氣의 모체라고 했다. 물이 들어오는 방향은 기를 수용하는 방향이며 물이 흘러나가는 방향은 기운이 빠지는 방향이므로 암서재의 방향도 물이 들어오는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비례부동非禮不動 비례부동은 중국 명나라 의종의 글씨, 구곡 중 첨성대 부근에 암벽에 새겨져있다. 明에 사신으로 간 민정중(閔鼎重)이 明 의종(毅宗)의 친필을 모사하여 가져와 우암송시열에게 준 것이다. 이는 공자의 비례물동非禮勿動에 근거한다. 뜻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마라'
충효절의忠孝節義 암서재 앞 좌측 바위에 새겨놓은 글자. 유학은 행의 철학이다. 선비라면 지행합일해야 할 것이 충효절의이다. 이 네 글자는 유학적 정치사상의 정수이다.
율곡선생과 퇴계선생에 이어 송시열이 칭송되지 못하는 까닭
공부를 하고 수양을 한다는 것은 내공이 쌓일수록 이해력과 포용력을 키우는데 그 목적이 있다. 공부가 많을수록 마음이 편협해지고 병통이 굳어지고 선택이 좁아지고 경직된 사고를 가진다면 공부하지 않는 이만 못하지 않은가. 수양은 세상물정에 두루 통하고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정쟁을 일삼고, 배척하고 죽이는 것은 소인배들의 일이다. 송시열이 문묘에 배향되었다고는 하나 이는 조선왕이 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다면 문묘에 배향되었다고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당리당략의 핵심이었고 조선 멸망의 단초가 그곳에서 시작되었기에 퇴계이황과 율곡이이처럼 온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다는 수많은 강물을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연을 보면서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공부이고 수행이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변함없는 교훈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화양구곡을 거닐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송시열의 일생에 대비하여 자신의 일생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될 것이다.[qsoon]
우암 송시열의 무덤 청천면 응봉 아래에 묻혀 있다. 사람은 자기의 성정과 비슷한 곳에 살고 또 묻히기 마련이다. 풍수를 통해서 죽어서도 자기의 이상을 표현하는 법이다. 그의 묘지를 볼작시면, 이상향이나 백성의 안위나 명예를 나타내 보이기보다 소탐대실하고 있는 자리이다. 명성에 걸맞지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비가 대대로 칭송을 받으려면 부귀를 멀리하고 백성을 가까이해야 한다. 선비는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화양구곡 화양구곡은 자연풍광의 모습을 선비의 삶에 비유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명승지는 8경이라 하여 풍광자체를 즐기는 것이지만, 구곡은 순서대로 의미를 부여하여 사색과 명상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곳이다. 그 시초는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이다.
대명건곤大明乾坤 화양산수華陽山水 금사담에 놓인 큰 반석에 새겨진 글씨라고 전해진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훼손시켰다. 화양의 산수는 명나라의 것이라고 해석하며 중국인은 즐겁고 일본인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사실은 명나라의 하늘과 땅을 통한 정신이 화양의 산수에 녹아 있다는 뜻이다. 송시열은 명나라의 정신을 화양구곡에서 구현하여 자기가 주자를 이은 성리학의 태두가 되고 싶었던 마음을 은밀하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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