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순의 풍수이야기> 월간사람과산 2014년 6월호

회문산의 풍수노래와  도인적 삶이 어울리는 순창




섬진강은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이 서쪽으로는 호남정맥을 분수계로 하여 그 중앙을 가로지른다. 섬진강 분수계 영역에서 북쪽은 임실, 동쪽은 남원, 남쪽은 곡성과 구례이다. 순창군은 영역의 중앙 서쪽에 위치하는데, 섬진강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고장이다. 땅이 양명하고 기름지지며, 바람이 온화하고 햇빛이 따사로우며, 물이 맑지만, 산은 험하다. 그런 순창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 회문산에 59대 영화지지가 있다는 회문산가의 핵심은 무엇인가. 남원양씨 가문이 선택한 피란지 순창, 순창설씨부인과 신말주가 선택한 순창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글 사진 | 김 규 순(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회문산가

회문산에는 59대 발복하는 명당이 있다는 노래가 전한다. 59대라면 얼추잡아서 1800년 동안 복이 지속되는 대명당이다. 명진대선사冥眞大禪師가 18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수가사 <회문산가>를 음미하면서 회문산을 올라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많은 이들이 이 명당을 찾아서 산에 올라온 흔적들이 회문산 정상을 올라가는 8부 능선에서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그것이 무덤이다. 돌과 무덤이 어울려 멋있게 보이지만 풍수적 환경은 열악하다.

회문산의 풍수적 환경

회문산(回文山 837m)은 호남정맥의 용추봉(583m)에서 분기한 작은 지맥이 섬진강을 만나, 나무가 열매를 맺듯, 기운이 뭉쳐진 산이다. 회문산은 순창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깎아지른 듯 절벽을 형성하며 솟아있다. 바위가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듯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고 돌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반면에 흙은 쌓여 있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종류의 산은 지난 수 만년간 비바람이 몰아치고, 세찬 바람이 몰아쳐 흙이 씻겨 내려간 결과이다. 바람이 몰아치는 곳에서는 기氣가 있어도 흩어지기 마련이다. 

장풍득수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약자이다. 바람이 갈무리되고 물을 만나는 곳에 기가 머무른다고 한다. 동양학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氣를 중시한다. 기氣란 우주만물의 근간이며 물질의 근원으로써 vital Energy이다. 기氣는 바람이 불면 흩어진다. 찬바람에 감기 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고 무에 바람 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무덤이 주로 있는 곳은 8부 능선 위쪽이다. 주위의 산이 높으면 높은 곳에서 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가 있는 경우는 천혈이라 부른다. 천혈이 제대로 형성된 곳이면 후손이 명예가 가득한 벼슬을 누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위의 산들이 회문산 보다 낮아서 장풍의 역할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풍수의 폐해
<일지매를 의지하여 저암杼岩은 재상在上하고 기암機岩은 재하在下하되 상연좌上連座에 하절파下絶破라>이 구절로 바위와 바위 사이 또는 바위 위에 무덤을 만든 사람이 있으니 오호통제라.
워낙 돌이 많다보니 ‘입수도 돌이고 전순도 돌이다’고 묘사하고 있다. 과연 이런 곳에 무덤을 만들 지형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실제로 회문산을 등산하다보면 650m이상의 고지대 무덤들의 앞과 뒤에 돌과 바위들이 육중하게 버티고 있다.

기가 머무르는 곳을 찾아라

풍수에서는 생기生氣라고 말하는 기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기는 물의 성격과 비슷하다.

물은 아래로 흐르다가 못이 있으면 잠시 머무르기도 한다. 물처럼 지형이 평평한 곳에 흙이 뭉쳐져 있을 것이라는 풍수적 관찰론이다. 풍수학에서는 ‘수토소기隨土所起’라 하였다. 기는 흙을 따라서 일어나므로 흙이 없으면 식물도 자라지 않듯이 생기는 없다.

반석위의 무덤
<만일 이 혈을 얻을 진대 보토엄관補土掩棺 혐의嫌疑마소 / 당대當代에 속발하여 오십구대五十九代 갈 것이니>라는 회문산가의 한 구절에 속고 부화뇌동하여 만든 무덤. 전형적인 배토장으로 비스듬하게 서 있는 반석위에 묘지를 만들었다. 위에서는 물이 흘러들어가고 있는데 임두수淋頭水가 되겠다.

반석 위에 무덤을

<일지매를 의지하여 저암杼岩은 재상在上하고 / 기암機岩은 재하在下하되 상연좌上連座에 하절파下絶破라> 워낙 돌이 많다보니 ‘입수(위)도 돌이고 전순(아래)도 돌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과연 무덤 주위에는 죄다 바위이고 돌이다.

<석상에 오선위기五仙圍碁를 알아볼 이 뉘 있으며 / 인간의 문천무만文千武萬 차지할 이 뉘 있으리> 회문산가에서 문과 합격자가 천명이 나오고 무과 합격자가 만 명이 나온다는 명당자리가 오선위기五仙圍碁라고 부르는 대목이다. 오선위기란 바위로 만들어진 바둑판을 다섯 명의 신선이 둘러 앉아 있다는 자리를 말한다. 오선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위기 즉 돌로 만든 바둑판 위에 무덤을 만들라는 뜻인지라-.

유골이 생기를 받는 것이 풍수의 목적인데 <만일 이 혈을 얻을 진대 보토엄관補土掩棺 혐의嫌疑마소>라고 하며 반석 위에 관을 놓고 흙으로 덮으라고 하니 이는 배토장培土葬으로도 정상적인 경우가 아니다. 더욱이 천근월굴天根月堀이란 동굴바위 위에 묘지를 만들기도 했다. 반듯한 반석만 보면 무덤자리로 착각하고 있으니 풍수지리가 사람을 부화뇌동시키고 혹세무민하는 결과를 보는듯하여 가슴 아프다. 바위에는 생기가 없어서 어떤 t식물도 자라지 못한다는 풍수지리의 정석과 원리는 무시한 채 회문산가의 가사 한 구절에 의지하여 조상의 시신을 바위 위에 얹어 놓았으니 무식의 소치라.

암석 동굴 위에 만든 무덤
>천근월굴< 바위 동굴 위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바닥은 반석이고 그 위에 시신을 놓고 흙으로 덮었다. 무덤이란 흙을 깊이 파서 흙을 다지는 것인데 이와는 딴 판이다.

사탑지를 말하는가

명진대선사冥眞大禪師가 무덤에 연연하는 노래를 만든 까닭은 무엇인가. 선사들에게 몸뚱이란 헌 옷에 불과하다. 그냥 벗어놓고 서방정토로 떠나면 그만이다. 불가에서 스님들이 입적하면 다비식을 행한 이유도 벗어 놓은 옷가지를 불사르는 것과 같다.

대선사의 회문산가에서 무덤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무덤이 아닌 수행처나 사탑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사찰에 세우는 탑도 일종의 무덤이 아니던가. 탑은 땅 속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만드는 것이고, 돌이나 바위를 기단으로 만들면 탑을 세우기는 더욱 좋다.

<발낭鉢囊은 서에 있고 바리대는 북에 있다>, <굽이굽이 정신이요 모두모두 춘의로다>에서는 배 굶지 않으니 정신 차리고 수행할 곳으로 적당하다는 말이고.

<소견처 삼십오리 삼십육궁 벌여있다>, <용장 호단처에 소천小泉이 앞에 있다>, <임두수는 물탄勿彈하라 내장진기內藏眞氣한 곳이라>한 대목에서 ‘삼십육궁’, ‘소천’, ‘내장진기’라는 말에서 사찰터나 탑사지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는가.

<이 몸이 죽은 후에 천만년 지나간들 회문산을 그 뉘 알리>

<정신이 탁립하고 혈정이 기이하매 / 속안俗眼은 알이 없어 누세공로累世空老 하리로다>

<찾으려고 생각 말고 쓰려고도 뜻도 마소 / 조물造物이 변화 후에 혈정穴精이 현저하리>

위 가사에서 경고하는 문구는 혈정을 찾을 생각조차 말라고 한다. 이는 속인이 찾을 수 있는 무덤자리가 아니라, 대선사의 눈에 보이는 사찰 터임을 은근히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조물이 변화 후에’ 라는 말은 아직도 땅 속 깊이 묻혀 있어서 지진이나 산사태 이후에야 세상에 드러난다는 말로 밖에 해석이 안 되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 노래가사인가.

섬진강과 주변 산
섬진강 주위의 산을 보면 모두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비바람이 거세어서 바위를 덮고 있던 흙이 쓸려 내려간 것이다. 섬진강 바닥에도 돌들이 떠 내려와 구르고 있다.

순창 _ 풍요의 고장

회문산가에서 <도국圖局이 협착狹窄하니 인재는 아니 나도 / 창고봉倉庫峰이 상응하니 구세부호九世富豪 어디가리>라는 표현이 순창의 풍수적인 특색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고령신씨 신말주 후손 세거지
신말주 후손들이 살던 곳을 복원해 놓았다. 신말주는 순창설씨 처가댁에 몸을 의탁하였다. 순창은 세상이 어지러울 때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유가의 가르침을 실천하기위해 숨는 곳이다. 한양에서 멀수록 숨어 지내기 쉬운 곳이니 산 좋고 물 좋고 배부르고 등이 따뜻한 곳이 여기이다.

순창설씨는 원효대사로 잘 알려진 소성거사 설사薛思와 요석공주가 낳은 그의 아들 설총薛聰이 가장 빼어난 조상이다. 순창설씨의 원적은 경주이고 본적은 순창이다. 설자승薛自升이 1124년(고려인종2년)에 이자겸의 난을 기회로 벼슬을 버리고 부인 순창조씨의 고향에 안착했으며 순창백에 봉해진 것이 그 동기이지만, 정확한 이유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조에서는 명문가였으나 조선왕조에 들어서는 토착성씨로 퇴조하고 있다. 고령신씨 신말주도 순창설씨에 장가를 들었는데,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뿌리치고, 부인의 고향으로 내려가 자연을 벗하며 살아간다.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세째 형)와는 그 성향이 달랐다. 유유상종이라 순창조씨와 순창설씨 그리고 신말주는 그렇게 연쇄반응식으로 인연이 맺어졌다. 순창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과 함께 소탈하게 지내는 사람이 좋아하는 고장이다. 맑은 기운이 끝도 없다는 순창淳昌의 글 뜻을 새겨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