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순의 풍수이야기> 월간사람과산 2014년 5월호
고성산과 덕봉마을의 해주오씨 500년
고성산 자락에 안긴 덕봉리 전경 --- 영남대학교 인류학과 박성룡 교수의 석사학위논문(1979)에 의하면, 양성면 덕봉리는 원래 풍산심씨의 집성촌이었으나 해주오씨가 들어와서 자손이 번성하자 풍산심씨는 양성면 필산리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해주오씨가 번창하게 된 동기가 풍수이다. 풍산심씨 일족들이 지관을 멸시하자, 외손인 해주오씨에게 자손이 번창하는 와우형 무덤자리를 잡아주었고 그 후 해주오씨의 부와 명성이 융성해져 덕봉리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안성 칠현산(516m)은 한남금북정맥이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누어지는 산이다. 한남정맥은 안성의 북동쪽에 놓여 있고, 금북정맥은 동쪽과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두 정맥 사이에 펼쳐진 평야를 가로지르는 안성천은 서쪽으로 흐른다. 안성의 동쪽은 400미터이상의 산지이고 서쪽은 평야 또는 구릉지로 농업생산물이 많아 사람이 살기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고장이다.
글 사진 | 김 규 순(서울풍수아카데미 원장, www.locationart.co.kr)
고성산에서 내려다 본 덕봉마을 전통적인 마을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옛 문헌에 천덕산은 나오지만 고성산(298m)이란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고성산이란 이름이 오래되지 않았거나, 마을에서만 부르던 이름일 수 있다. 덕봉마을에는 사액서원과 고택 그리고 종친의 무덤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 있어서 한 가문의 500년 역사와 전통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산자와 죽은 자가 함께 숨을 쉬는 전형적인 한국 마을이다..
안성의 성씨들
안성시는 조선시대의 안성군, 양성군, 죽산군을 통합하여 이루어진 고장이다.
한양에서 가까우면서 너른 평야를 지닌 지형이라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이 지역을 본향으로 한 성씨는 꽤 많지만 안성김씨, 안성박씨, 양성갈씨, 죽산음씨, 죽산송씨, 죽산최씨 등 대부분의 토성들은 번창하지 못했다. 다만 조선 초기 1차∙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병조판서를 지낸 이숙번(1373-1440)을 배출한 안성이씨, 세종 때 천문학자로 <칠정산내외편>을 저술한 이순지(1406-1465)의 양성이씨, 세종의 사위이자 서예가로 이름을 날린 안맹담의 죽산안씨, 세조 때 이시애난을 평정하여 좌의정에 등극한 박원형(1411-1469)의 죽산박씨 정도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안성 토성씨족土姓氏族보다 현달한 내성來姓이 있었으니 해주오씨이다. 해주오씨는 송나라의 사신으로 고려에 건너왔다가 정착한 오인유를 시조로 한다. 시조부터 5대까지는 황해도 벽성군에 세거했고, 6대 효성∙효순∙효충 3형제 중에서 효충이 용인이씨에게 장가를 들어 용인에 정착하였다.
오정방吳定邦 고택 --- 오정방(1552-1625)의 손자 오핵(1615-1653)의 <백천당유고>의 천덕산기天德山記에 의하면 5대조(오현경)가 1510년에 건축했으며, 1650년(효종1년)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오정방의 당호 퇴전당退全堂이란 현판은 1662년에 쓴 우암의 글씨. 해주오씨의 덕봉리 입향조는 오현경(해주오씨11대)이다. 실질적으로는 오경운이 장가를 들면서 이주한 것이 거의 명확하다.
퇴전당 현판 --- 우암 송시열의 글씨이다.
해주오씨 덕봉마을의 위기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는 해주오씨 세거지로 5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입향조는 오현경이지만 사실은 둘째아들 오경운에 의해서이다. 오경운이 풍산심씨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동네인 덕봉리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는 해주오씨 시조인 오인유로부터 12대이다.
오경운이 풍산심씨에게 장가온 연도가 자세하게 전하지 않으나 덕봉리에 들어온 것은 1510년 이전이다. 덕봉리에 있는 오정방 고택의 건립시기가 1510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515년과 1518년에 아들 수천과 수억을 낳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암울한 그림자가 다가왔다.
오현경이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둘째아들 경운과 함께 귀양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중종 20년(1525)에 유세창 형제의 역모사건으로 친동생 오필경 부자가 교수형에 처해지고, 오현경에게도 그 화가 미쳤던 것이다.
덕봉리 산수도 --- 북현무,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그리고 내명당과 외명당 등 자연적으로 잘 짜진 형국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밝힌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리와 생리와 인심, 산수가 모두 갖추어진 곳이다.
풍산심씨 할머니, 해주오씨를 되살리다.
역모로 집안이 풍비박산 되고, 10살과 7살 난 두 아들만이 남게된다. 오경운의 처 풍산심씨는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시아버지와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성현 덕봉마을의 고성산에 모신다. 덕봉리에서 태어나 고성산의 정기를 품은 풍산심씨 할머니의 강단과 희생으로 해주오씨를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구했다. 이렇듯 가문의 융성 뒤에는 어머니의 희생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시아버지와 남편의 무고가 밝혀져 신원이 회복되었고, 두 아들은 차례로 어모장군(정4품 외직)을 지낸다. 덕봉리에서 태어난 수천과 수억 형제가 해주오씨의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단초가 된 셈이다. 하늘은 낳고 땅은 기른다고 했다. 천도지덕天道地德이라 했으니 풍산심씨 할머니의 덕이 해주오씨를 살린 것이다.
사액서원 덕봉서원 --- 숙종은 자기가 죽인 충정공 오두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워주고 사액을 내린다. 대원군 서원 철폐령에도 훼손되지 않은 47개 서원중 하나이다. 서원은 사교육기관으로 후손들의 교육을 전담하였으며, 1946-1963년까지 양성중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다. 서원은 산 능선으로 장막이 쳐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으나 덕봉서원은 오픈되어 있는 형태가 특이하다. 아마 해주오씨들은 농부들과 같이 농사를 지은 모양이다. 사액서원은 조선 명문가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오래된 마을의 상징--- 우물터
정무공파, 해주오씨의 커다란 줄기가 되다
오수억의 손자 정무공 오정방(1552-1652)은 임진왜란 때 도총부도사로 전공을 세웠으며, 광해군 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사직 당하였으나, 인조반정으로 포도대장에 등용(1623)되었으며, 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이괄李适의 난 때(1624) 왕을 공주에까지 호종하였다.
오수억의 증손자 네명은-오숙(종2품, 관찰사), 오빈(정2품, 지중추부사), 오상(종6품, 사복시주부), 오핵(종5품, 지평)-가문을 반석위에 올렸다. 오숙의 아들 오두인(1624-1689)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숙종 때 인현왕후 폐위를 반대하다가 장형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유배도중 66세로 파주에서 죽었다. 오두인의 셋째 아들 태주가 현종의 부마(해창위)였음에도 아버지의 일로 삭탈관직 당하였다. 그래도 18일 만에 직첩을 돌려주라는 숙종의 명이 내려졌다.
숙종의 변덕스런 성정이 오두인을 죽였다. 그의 인생 여정은 증조부 오정방과 닮은꼴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정무공 후손에 대한 왕가의 믿음은 더욱 강하여졌고, 오두인의 손자 오원과 증손자 오재순은 부자 대제학으로 해주오씨 정무공파를 조선의 명문가 반열에 올린다.
오경운과 배위 풍산심씨의 무덤 --- 가운데가 풍산심씨와 남편의 묘. 아래쪽은 현손 오숙의 무덤이 멀리 있다. 사진 바로 앞에 보이는 무덤이 오숙의 아들 오두인의 묘이다. 양성면의 너른 구릉이 멀리 보인다. 풍산심씨는 정무공 오정방의 할머니이다. 지아비를 역모사건으로 잃고 어린 자식들을 품어 안고 평생을 숨죽이며 살다간 풍산심씨의 가슴 아픈 일생을 표현한 자리이지만 앞에 있는 현손 오숙의 무덤과 뒤에 있는 5대손 오두인의 무덤보다 훨씬 안정된 자리이다.
해주오씨 정무공파 재실 --- 덕봉리의 해주오씨 후손들에게 조상들의 풍수문화유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수십억을 들여 재실을 대단한 규모로 지었다. 5년이 지났어도 건물이 뒤틀리거나 흠결이 생기지 않았다. 가문의 내공이 이런 곳에서 엿보인다. 가문의 중흥을 위해 조상의 얼을 기리는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정무공 가문이 부럽다.
고성산의 당당함과 풍요로움
양성면의 진산은 천덕산이고 고봉산은 덕봉리의 주산이다. 힘차게 솟은 산 정상과 좌우의 능선이 마을을 겹겹이 장막을 쳐 덕봉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고성산이 바라보는 들판의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한천이 흐르고 있다.
고봉산의 중출맥에 해주오씨 정무공파의 선조와 후손들이 대부분 묻혀있으며, 그 능선 안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겹겹이 발달하여 마을을 보호하고 있고, 더욱이 백호는 너른 평야를 가로지르는 한천을 멀리 밀어내면서 마을을 두르고 있어 편안한 기운을 느낀다. 풍수지리학에서 부자가 되는 형상들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백호가 물을 거두어들이는 형국의 복이 오래간다. 덕봉리 해주오씨들의 장구한 역사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좌청룡 바리봉을 중심으로 안쪽에는 오정방 고택이, 바깥쪽에는 덕봉서원이 있다. 바리봉이 예리하지는 않지만 옹골찬 모습이어서 이곳에 공부한 사람은 뒷심이 있을 것이다.
덕봉리의 해주오씨 가문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문가는 아니다. 퇴계선생 같은 대학자를 배출하지도 않았고, 이순신 장군과 같은 나라를 구한 충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김홍도와 같은 예술가를 배출하지도 않았으나, 그럼에도 마을을 만들어서 500년의 전통을 일구어오면서 집성촌을 지켜온 것을 보면서, 평범한 것이 위대한 것임을 알게 해주는 곳이기에 우리는 이 마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돌혈 --- 돌혈이란 우뚝 솟은 야산 꼭대기에 있는 무덤자리를 말한다. 사진으로는 주위의 능성을 보고서 무덤이 높은 곳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해주오씨 16대 오상의 무덤으로 큰 형님 오숙에게 출계한 오두인(정2품, 형조판서)-오태주(현종부마, 종2품)-오원(정2품, 대제학)-오재순(정2품, 대제학)∙오재소(정2품, 예조판서)-오윤상(정3품, 군자감정)-오치성(정3품, 군자감정)이 그의 혈연적 후손으로 6대가 연이어 당상관이상의 벼슬을 지탱해 왔다. 조선시대 중반기에 오상의 가계에서 집중적으로 벼슬이 배출되어, 명당의 진가를 드러내었다.
와혈 --- 풍수에서 혈의 형태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름 하여 와겸유돌이다. 와혈이란 새 둥지 모양의 오목한 모양을 한 지형의 무덤자리이다. 해주오씨 16대 오빈의 무덤으로 이곳에 대한 명당여부의 이견이 분분하다. 현달한 자손은 없으나 자손이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덕봉리 출신으로 5명의 판검사가 있는데 모두 오빈의 후손이라 전한다.
와혈과 돌혈의 후손
덕봉리 해주오씨 정무공파묘역에는 와겸유돌의 형태를 가진 무덤자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오정방의 손자 네 명중 와혈과 돌혈에 묻힌 두 형제의 후손이 번창하여 풍수사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와혈은 움푹 파인 형국인데, 소쿠리모양이거나 새 둥지모양의 무덤자리를 말한다. 돌혈은 우뚝 솟은 모양인데 종이나 가마솥을 엎어 놓은 형상의 무덤자리이다. 덕봉리의 와혈에는 오빈이 묻혔고, 돌혈에는 오상이 묻혔다. 오빈의 후손은 조선시대에 현달하지는 않았으나 자손이 번성했다. 자손이 번성해했다는 것은 건강했고 먹고 살만했다는 뜻이니 이것만으로도 이 자리가 명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상의 셋째아들 오두인은 비록 양자를 갔지만, 그의 가계에서 정3품 이상의 벼슬이 쏟아진다. 명당에 모시면 좋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니 오상의 묘가 좋은 자리임은 풍수사 사이에 이견이 없다.
좋은 자리의 여부를 알고 싶으면 먼저 주산에 올라보아야 한다. 지형의 형세가 기세를 품으면서 균형 잡힌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 자칫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하면 일부분만 가지고 판단하면 오판의 가능성이 높다.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면서 좌우의 경계를 살피고 중앙능선을 살피면 좋은 자리가 어디쯤 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풍수 초보자는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풍수를 배워야 안목을 키우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qsoon]
(도움말 주신 분 : 오세정-해주오씨정무공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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