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과산 2013년 11월호 <김규순의 산이 있는 사람이야기>

문경 희양산의 기상과 효령대군의 종가집 후손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백두대간이 북쪽과 서쪽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문경은 그야말로 대륙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백두대간 중에서 가장 험한 코스와 가장 쉬운 코스가 여기 문경에 있다. 사람의 힘은 허리에서 나오듯이 우리나라의 저력은 백두대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백두대간 아랫마을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미처 순화되지 못한 기운이 사람을 오히려 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대에 온 몸을 바쳐 한민족의 정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이가 있었으니, 문경이 낳은 인물 의병대장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선생이다.

희양산   운강 이강년 선생의 생가가 기대고 있는 주산. 희양산은 돌산이라서 희양산의 정기를 타고났다면 심지가 굳고 우직하며 변함이 없어 충절의 기운을 타고 났을 것이다. 이 지역에서 의병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주흘산과 희양산과 같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상을 가진 청년이 많았던 까닭이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www.locationart.co.kr)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일생

운강 이강년은 1880년 23세에 무과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나 갑신정변으로 나라가 혼란하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한다. 연이어 갑오경장과 을미사변 그리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강년도 동학군에 투신하여 농민군을 거느리고 척왜를 위한 의병항쟁을 일삼는다. 1897년 4월에는 새로운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요동으로 가서 이주민자치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으나, 곧 귀국하여 이항로의 학문을 계승한 유인석의 문하에 들어가 위정척사사상으로 사상체계를 확립한다.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기점으로 제2차 의병전을 일으킨 이강년은 1907년 7월 5일의 제천 전투에서 500여 명의 적을 토멸하였다. 그 직후 고종의 밀령을 받고 사기 충전한다. 밀령에 의해 도체찰사가 되어 전국 7도를 관장하는 명실 공히 의병대장이 된다. 일본 침략군의 의병토벌로 공방전이 치열해진다. 이강년은 전국의 의병들과 합세하여 1907년 12월 서울진공연합작전을 수행하지만 3개월 만에 가평포천지역에서 후퇴를 하니 실패로 돌아간다. 그는 다시 산악전을 중심으로 인제백담사 전투, 안동서벽 전투, 봉화 재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1908년 7월 작성전투에서 발에 총을 맞아 포로가 된다. 경성으로 이송된 그는 그 해 10월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우리나라 이천만 민족이 장차 나와 같은 죽음을 당할 것이니 이것이 제일 원통하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아들 승재承宰(1873-1910)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결사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다 죽었으며, 그의 손자 정수廷秀는 일제에 무언항쟁을 하였다.

운강 이강년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희생에 대한 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고, 아들 승재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고종의 비밀칙령 "오호라! 내 죄가 크도다. 악이 충만하여 짐의 나라를 돌보지 않으니, 이로써 열강이 틈을 엿보고 역적 신하가 권세를 농락하여 4천년의 종묘사직과 3천리 강산을 하루아침에 오랑캐가 짓밟는구나. 생각하면 나의 하찮은 목숨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종묘사직과 만백성을 생각하면 애통하기 그지없도다. 선전관 이강년으로 도체찰사를 삼아 지방 7도에 보내니 양가의 재주 있는 자제들로 각각 의병을 일으키게 하며 소모관을 임명하며 인장과 병부는 스스로 새겨서 사용하라. 만일 명을 쫓지 않는 자가 있으면 관찰사와 수령들을 먼저 베고 파직하여 내쫓을 것이다. 경기진영의 군사는 나와 함께 사직에 순절할 것이다. 조서를 비밀리에 내리는 것이니 그리 알고 모든 일을 거행하라." 

요산요수와 유전자

논어에 인자요산仁者樂山이요 지자요수知者樂水란 말이 있다. 세상을 이웃과 더불어 소통하며 바르게 사는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영리하여 돈 되는 일에는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이 말은 풍수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에 이미 공자께서 풍수와 유전자(DNA)에 대해 통달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류가 지구상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대개 400만년전이고. 현존인류가 발생한 것은 12만년전이다. 역사시대는 기껏 5천년에 불과하다. 그러면 인류는 99.9%의 기간 동안 축적된 유전자 성향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유전자의 선택일 수 있다. 외국에 나갔다가 귀국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면 포근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우리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잃지 않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 본능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이것이 유전자가 풍수와 관련이 깊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운강이강년기념관   기념관에는 운강선생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측 의충사는 운강선생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운강선생은 국가적 지원 없이 오로지 밀명하나로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여 일본의 침략에 맞서 투쟁을 한 조선의 마지막 의병대장이었다. 힘없이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자기의 한 몸뿐만 아니라 아들과 손자까지 희생하였다. 그의 희생은 후일 독립운동의 정신을 드높이는 자극제가 되었다.



생가에서 보이는 운강이강년기념관

대륙적 기질과 해양성 기질

대륙성 기후는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지형에서 나타나는 기후로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매우 더우며, 일교차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대륙성 기후의 지형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은 대륙성 지형에 익숙하다. 대륙성 기질은 의리･명분형이 많으며, 정신적 활동에 민감하고, 예학을 선호하며, 상호 투쟁적이고 승리를 추구한다. 대륙성은 정중동의 성향이고 어려움을 같이하고 공동체 생활에 익숙하며 검약한 생활을 견뎌 나가는 내공이 있다.

해양성 기후는 바다를 접한 해양성 지형으로 바다의 영향을 받아서 연중 온난 습윤한 기후를 보여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다. 바람이 잦고 강하며 습기가 많다. 연교차가 비교적으로 작다. 탁월풍이 해양에서 내륙으로 강하게 부는 지역에서는 내륙까지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해양성지형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사람은 실리적이며 물질추구의 성향이 강하며 실학을 선호하고 공존과 상생에 힘쓴다. 해양성은 활동적이고 재물을 좋아한다.

인류가 이주를 시작하였는데, 대륙을 통하여 이동한 종족은 대륙적 기질을 갖게 되었고, 해변을 따라서 동쪽으로 이동한 종족은 해양성 기질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성향과 결과가 성씨의 본관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주 종족이 거처를 정할 때에 수구초심의 유전자적 기질을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유전자를 분석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의 본관과 출생지 그리고 성장지를 알면 어느 정도 취향을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운강 이강년선생 동상   갓과 한복 그리고 칼을 든 모습이 생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조상이 의병 활동하던 열악하지만 늠름한 모습이다.

을사오적과 의병대장

전주이씨는 고려시대에는 중앙접부에 진출하였으나 무인정권 때 권력에서 밀려나 이성계의 직계조상은 동북면 즉 원나라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였으며 원나라의 벼슬을 지냈다. 그후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은 원나라의 국력이 약해지자 자기가 벼슬하던 쌍성총관부를 고려에 바치고는 귀화한다.

전주이씨 시조가 살았던 경주나 그가 묻혔다는 전주 건지산은 모두 해안에서 가까운 평야지대이다. 즉 해양성기후지형이다. 이성계의 선조가 살았던 함경도 함흥, 덕원, 안변 등지도 해안가 동네이다. 이를 볼 때 전주이씨의 성향은 해양성기질이 강하다. 해양성 기질은 명분이나 의리보다는 이익이 판단에 앞선다. 같은 배에 탄 사람끼리는 단결하지만 다른 배에 탄 사람은 적이다.

왕족 이지용(흥선대원군의 종손)은 을사오적으로 손꼽힌다. 운강선생과 그 아들은 국가적인 도움이 없이 외세에 엄청난 저항을 하여 백성들에게 애국애족의 정신을 심어주고 독립의 씨를 뿌렸다. 같은 전주이씨 혈족인데 이렇게 정반대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산의 정기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풍수의 관점이다.

운강 이강년선생은 전주이씨 효령대군(세종의 둘째형)의 18세손으로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다. 왕족은 대체로 한양에 거처하는데 영남으로 이주한 까닭이 궁금하다. 후손에게 물어보니 임진왜란(1592-1598)시에 피난을 간 것으로 알고 있단다. 확인을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뒤졌다. 효령대군의 후손들은 왕족으로 특권을 누리다가 효령대군의 7세종손 한성판관 이사건李思騫이가 1580년 불미스런 일로 파직 당한다. 8세종손 이응길李應吉도 불미스런 일에 엮여 1607년 6월에 파직당하고 11월에 죽었다. 9세종손 이성민李聖民은 상주 공근면으로 이주를 하였다. 종손이 자기의 터전을 떠나 영남으로 이주를 한 이유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권력다툼에 밀려 시골로 쫓겨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효령대군의 자손이 번창하였음에도 종손이 시골로 쫓겨 가는 것을 구경한 혈족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운강 이강년 선생 생가   생가는 문경시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다. 이 골짜기에서 조선의 자존심을 지켜준 운강선생의 기상을 느껴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고증을 받아서 제대로 지었으면 좋겠다. 행랑채가 반듯하게 지어져 있고 계단까지 설치되어 있지만, 저 대문으로 황소가 들락날락하였겠는가. 집안에는 마구간이 지어져 있다. 옛날 양반집이라고 모두 기와집이 아니다. 초가집이라도 양반가의 안채와 사랑채를 기품 있게 지었을 것이다.

문경의 진산은 주흘산, 운강선생의 수호신은 희양산

운강 선생의 3대가 나라 없는 나라를 위해 희생을 하였다. 이런 기개는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유전인가. 풍수책에 주봉이 암석이면 명장자손이 나고, 기암이면 특출자손이 난다고 했다. 주산은 둥글고 양명하되 기운이 강하고 왕성해야 한다. 주산의 기운이 좋으면 주위 산의 기운도 좋다. 길지吉地 주위에는 길수吉水와 길풍吉風이 감싸는 것이다.



문경 주흘산   황금들녘에 우뚝 솟은 주흘산이 문경의 기상을 대변해준다.

주흘산이 조산祖山으로 북쪽에 버티어 그 위엄을 지켜주고 희양산이 온통 암석으로 강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란 운강선생은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여 시대의 부름에 호응한 것이다. 이곳에서 출생하고 자란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같은 성향이었을 것이나 그들은 시대를 타고나지 못했으므로 한낱 시골의 선비로 지냈을 것이다. 운강 선생이 전주이씨 중에서 특출한 면모를 보인 것은 주흘산과 희양산의 정기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운강선생의 9대조부 이성민(이응길의 장남)이 상주로 이주한 것은 300년 후에 운강선생과 같은 큰 인물을 배출하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었겠는가.

운강선생을 기리며, 문경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인물이 태어나길 기다린다. [q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