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과산 2013년 09월호
김규순의 산이 있는 사람이야기

밀양박씨 가문에서 맺힌 영동永同의 인물 - 난계 박연 선생

어류산      어류산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으로 피난 와서 머물렀던 곳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가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이라서 낮지만 여간 험하지 않다. 주산이 수려하면 특출한 인물이 나온다고 했다.  이산을 주산으로 하여 박연의 조부 박시용이 누워있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www.locationart.co.kr)



난계의 조부 박시용의 무덤   조산은 선경仙景이나 우백호가 머리를 쳐들면서 외면하니, 후손의 돌출행동으로 곤경을 당할 격이다. 박시용으로부터 3대가 전성기였고 그 후는 큰 인물이 배출되지 않으니 밀양박씨가 더 이상 길지를 찾아내지 못함이다. 인물이 이어질려면 길지도 이어져야 한다.

영동, 아름다운 고장

백두대간과 금강 사이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영동군이다. 백두대간을 동쪽으로 넘으면 김천시이다. 동쪽에는 백두대간이 장막을 치고 있고, 백두대간에 내린 빗물이 모인 금강이 영동군의 서쪽을 감싸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금강의 상류인 영동군은 백두대간의 힘이 넘쳐서인지 금강은 살아 움직이는 뱀같이 구불구불 흘러 경치가 매우 좋다.

백두대간에 명당(明堂)이 없다. 백두대간은 일천미터 고지가 넘는 산들이 병풍을 치듯 이어져 있다. 경치가 좋기도 하지만 대체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화기가 많다. 화기란 성정이 급하지만 심지가 곧고 변하지 않아 충신이 배출되는 정기이다. 충신이란 나라가 혼란할 때 나타나는 성정이라 흔하게 배출되는 인물은 아니다.

영동군은 지형상 경사가 급하거나 비탈져 있고 물이 급하게 흘러 기운이 머무는 곳이 많지 않아도, 시대가 요구하면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는 지형이다. 그러나 권력과는 무관한 인물일 것이다. 반면에 학자들이 좋아하는 지세를 가지고 있어서, 상촌 김자수와 우암 송시열이 한동안 유숙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이곳을 택해 은거지로 삼았다. 

난계의 조부 박시용의 무덤  이 산에 기대어 밀양박씨 입향조 박시용의 묘지가 있다. 박시용은 목은 이색도 칭찬한 목민관이다. 사후 대제학에 증직되었다. 주산이 있지만, 묘지에서 보면 옆으로 비켜서 있으니 후손에게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다.

난계 박연 묘    생가는 부모가 자리를 잡는 것이고, 묘지는 자기가 자리를 잡는다. 자기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후손이 잡아 줄 수밖에 없지만, 원칙은 자기가 잡는 것이다. 난계선생의 묘는 그저 편안한 자리이다. 태종, 세종, 문종, 단종에 이르도록 4대왕을 모시면서 공이 큰 박연(朴堧)은 단종 대에 대제학에 올랐다.

밀양박씨 입향조 박시용

산과 물이 있고 들판이 있으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영동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영동군에서 내노라 하는 성씨로는 여흥민씨, 고성남씨, 영산김씨, 충주박씨, 영일정씨, 배천배씨, 여산송씨가 있으나 그 중에서 밀양박씨 난계 박연(1378-1458)이 으뜸이다.

금강 건너에도 조각난 영동의 땅이 있다. 이곳에는 천태산과 마니산, 어류산, 국사봉이 진을 치고 있는데, 백두대간이 아니라, 금남정맥에서 가지를 친 금남기맥의 한 줄기이다.

국사봉이 하나의 능선을 길게 뻗어 금강을 희롱하는데, 여기에 심천면 고당리로 난계 박연朴堧과 사촌형 국당 박흥생의 묘와 난계 생가가 있다.

밀양박씨가 영동에 들어온 경위는, 박연의 조부 박시용이 과거를 보려고 밀양에서 개경으로 향하던 중, 영동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다가 김영이의 딸과 눈이 맞은 듯하다. 박시용이 영동의 토박이 영산김씨 김영이金令貽의 딸과 결혼하여 정착한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김영이가 어느 날 버드나무 위를 비상하는 용꿈을 꾸었고, 마침 버드나무 아래에서 졸던 박시용가 있어 그가 과거 급제할 것임을 예견하고는 딸과 정혼시켰다는 것이다.

그 후 고려 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김영이는 세 명의 사위(박원용, 장비, 박시용)와 함께 영동으로 낙향하여 후학양성에 힘쓴다. 

난계 생가    좌청룡 자락에 기대고 우백호가 감싸 안은 집터에 안온하게 자리 잡은 생가이다.
멸실 되고 다른 사람이 살던 집을 허물고 2000년 5월에 복원한 것이다. 먼저 사대부 집안은 초라하기는 해도 안채와 사랑채로 나누어지고 행랑채가 있다. 3대가 고관대작과 벼슬을 했던 집안인데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집을 짓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대부집 안에 마굿간을 만든 것도 어불성설이다. 영동군청이 진실로 난계선생을 추앙한다면, 확실한 고증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퇴색한 축대를 보면 집터의 영역이 아랫단 까지 내려온다.

우리나라 3대 악성

난계 박연은 영동에서 태어나고 영동에 뼈를 묻은 진정한 영동 사람이었다. 박시용의 손자이자, 박천석의 아들로 집안의 대들보인 장손이었다. 김자수의 가르침으로 난계 박연은 태종5년(1411)에 등과하여 집현전 교리로 있다가, 세종의 눈에 띠여 악학별좌에 임명된다. 음악에도 통달한 세종께서 박연의 절대음감에 매료되어 절대적인 신임을 보냈다..

그는 세종의 명에 따라, 국가적인 행사에 울리는 음악도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잡동사니 같은, 조선의 음악을 정리한다. 공자도 가장 높은 수준의 예禮는 악樂이라고 했다. 음악은 최고 레벨의 문화이다. 고려시대말기의 잦은 전쟁으로 고급문화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였다. 조선 초기 엉성하기 짝이 없던 음악이었다. 난계는 향악과 아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궁중음악으로 재편성하고, 악기도 다시 만들었다. 그는 불완전한 악기도 조율하고 악보도 편찬하였다.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조선 국악은 난계선생의 작품이다.

고구려의 왕산악, 가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불리는 박연의 공적은 조선의 음악을 만든 것이다. 그의 음악이 표준이 되어 우리의 가락이 만들어져 기생과 예인들에 의해 민중으로 퍼져 나갔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가락 속에도 박연의 숨결이 살아있다.


선지당先志堂     상촌 김자수 선생께서 후학을 가르치던 유적지로 영동군 심천면 각계리에 있다. 16세기 초에 지어졌고 1816년에 중수했다. 9대 후손의 효자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태종 이방원은 상촌 김자수의 인물됨이 아까워하였으나 상촌은 자결을 택하였고 그의 무덤은 태재고개에 아들 부부와 함께 있다. 그의 후손이 추사 김정희이다.

상촌 김자수의 충절, 박계우에게 전승

땅의 정기는 사람의 심성과 소통한다. 땅의 성정에 따라, 비슷한 성정의 사람이 그곳에 모인다. 모인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여 인연이 되니, 어떤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는가는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상촌 김자수(1351-1415)는 경주인으로 고려 말 형조판서를 역임한 충신이자 효자. 그의 효자비(경북 유형문화재 38호)가 안동의 치소에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모토아래 뭉친 두문72현 중의 한 분으로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과 절친한 사이였다. 조선의 태종 이방원이가 그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형조판서에 제수하고 불렀으므로, 상촌 선생은 상경하다가 지금의 광주 태재고개에 이르러 자결하였다. 충효의 상징인 상촌 김자수의 흔적을 영동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난계 박연은 그의 사촌 국당 박흥생과 이요당 박흥거와 함께 상촌의 제자이다. 상촌의 충절이 나중에 박시용의 후손(밀양박씨 대제학공파)에 불운의 풍파를 가져오게 하니 충절도 전염이 되는가 보다.

상촌 김자수는 난계 박연의 셋째아들 박계우의 출현을 예고한 운명이었다. 박계우는 계유정란이 일어난 후 단종에게 수양대군의 야망을 상언했다가, 수양대군의 미움을 받아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이때가 단종 2년 1454년 8월15일(음력)이다. 단종 때에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후 반대하는 유생들을 간당으로 몰아 죽였던 것이다. 단종복위운동은 단종이 왕권을 찬탈당하고 난 뒤의 일이니, 혹자가 박계우가 단종복위운동의 실패로 역적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이 내용은 단종실록에 기록되어 전해져 온다, 다행히 노령의 박연은 선대왕을 모신 공로로 화를 면하지만, 자가 귀양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마감한다.



국사봉과 심천면 고당리 전경   금강 건너 좌측에 보이는 산이 국사봉이고, 현대식 큰 건물이 난계국악체험관이다. 체험관 바로 뒤 좌측 능선에 국당 박흥생의 무덤, 우측 안쪽에는 난계 박 연의 무덤이 있다.
난계사당, 난계국악박물관, 국악기체험전수관, 난계국악기제작촌이 있고 아랫동네에 난계생가가 있다. 산책하기에도 좋은 길이다. 토요일에는 국악연주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호서루湖西樓  금강을 끼고 동서남북 좋은 경치를 두루 바라보이는 곳이다. 호서루는 난계의 후손이 지은 것이지만, 난계 박연선생 시절에도 여기에서 물 흐르는 경치를 벗 삼아 피리를 불었을 것이다. 좋은 곳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누각에 올라서서 금강 건너 고당리를 바라보니 550년전 난계 선생의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수적 기운과 우주의 에너지

죽은 사람과 소통이 가능한 곳이 그의 무덤이다. 그의 무덤을 보면 그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묘는 바로 그가 후손들에게 전할 말이나 바라는 바를 함께 묻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택이나 묘지에서 자리가 무엇이며 각 자리에 내재된 기(에너지)란 무엇인가? 우주에너지는 원운동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초당 약30km 속도로 돈다, 지구는 시간당 1,337km로 자전한다. 태양은 은하계를 초당 230km로 돌고 있다. 자전과 공전의 운동에서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가 어디로 발산되는 것인가. 이 에너지는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고도 10km 상부에는 시속 130km의 편서풍이 분다. 그러나 지상에서는 바람이 약해져서 사람에게 좋은 상태로 불고 있다. 바람 외에도 지자기地磁氣가 있는데 지자기의 크기나 교란정도가 다르다. 이를 통하여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우주에너지가 뭉쳐 있는 곳이 있다고 가정한다. 이런 곳을 찾는 작업이 풍수지리술이다. 풍수로 본 박시용의 묘지에 오르면 앞의 경치에 입이 벌어진다. 이 무덤을 매개로 하여 천태산과 어류산의 정기가 합심하여 큰 인물을 만들었으니 그가 박연이다.

난계의 음악적 내공을 세조의 물음에서 갈음할 수 있다.

세조6년 7월 어느 날, 성임(成任)을 악학도감 제조로 삼으면서 이르기를,
“경은 재주도 많고 기예에도 밝으므로 내가 매우 가상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천문(天文), 지리(地理) 등 잡학(雜學) 분야에 밝은 사람은 조금 있으나 음악 분야에는 아는 사람이 적다. 지금 악공(樂工)들이 배우는 것은 모두 음성(淫聲)으로서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경은 나의 뜻을 깊이 새겨 음악에 마음을 두도록 하라.” 하였다.
또 묻기를, “배우면 박연(朴堧)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는가?”
하니, 성임이 답하기를, “박연 같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배우면 그래도 터득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요컨대, 마음을 전일하게 갖는 데 달렸을 것이다.”하였다.<국조보감>

불행하게도 조선에서 더 이상 난계 박연과 같은 악성이 나타나지 못했다.[q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