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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풍수여행] 조선 사대부 정치적 재기의 발판_이천 김규순 2017-05-12 7823  
     
 

월간사람과산 4월호_김규순의 풍수이야기

사대부들의 로망이었던 이천 그리고 풍수

글 사진 ||  김 규 순








영월암 주지 보문스님과 다과시간 >>144506
필자, 최낙원 성북성심병원장, 이영호 회장, 이대영이천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주지스님의 선배 비구니스님들, 주지스님

이천의 금반형 길지
이천에 36명의 정승이 난다는 금반형 길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 정승을 지낸 후 들어간 사람은 있어도 들어가서 정승이 난 곳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천에는 원적산 기슭에 명당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마을들이 형성되었다. 이천은 한양사대부가 권력에서 밀려나 갈 곳을 찾다가 만난 기댈 언덕이었다. 사화 때에 많은 사대부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이곳으로 숨어들어왔으며, 권력에서 밀려난 후 재기하기 위해 한양에서 비교적 가까운 이곳으로 들어와서 기회를 노리기도 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땅의 도움을 받아 가문을 빛낼 인물을 배출해 보고자하는 욕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사대부들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속으로는 풍수적 길지를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육괴정 >> 3471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엄용순이 이곳에서 못 주위에 느티나무 여섯 그루를 심고 은둔하던 곳. 백사면 도립리에 있다.
아마도 길지를 찾아서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송말리 내하마을 숲 >> 164428
백사면 송말리의 마을 입구에 만들어진 숲. 마을 안에서 마을 숲을 찍은 사진으로 여름에 와야 나무가 우거져 경관이 좋다. 마을 입구에 규모가 상당한 마을 숲을 만들었다는 것은 풍수상 중대한 결점 즉 안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산은 터의 기운을 보존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소위 풍수 발복의 요체이다. 안산이 없다는 것은 발복이 안되거나 매우 느리거나 약한   장소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두무재  >> 3497
두사충이 이 고개를 넘다가 뒤를 돌아보니 금반형 길지가 보이더라는 일화가 있는 두무재. 두무재주유소가 있어서 찾기 쉽다.

김자점의 풍수 착각
김자점(金自點)은 단종 복위운동을 밀고한 김질의 후손이다. 인종반정으로 공신이 되어 영의정까지 역임하였다. 자신의 손자를 인조의 효명옹주와 결혼시켜 정치적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등 산림파가 득세하자 청나라와 내통하였으며, 아들 김익(金?)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김자점이 찾았던 금반형 명당은 이천의 남쪽 끄트머리 청미천에 닿아 있는 백족산 기슭이었다. 그는 비룡상천형으로 평가되는 곳에 아버지의 무덤을 조성했으나, 물이 부족한 약점이 있었다. 그는 청미천을 막는 보(洑)를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 물이 가득하니 보기도 좋았을 뿐더러 명당의 기운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용이 될 줄 알았으나 용에게 죽임을 당하는 꼴을 맞이했으니 이곳은 그에게 길지가 아니라 흉지였던 것이다.
백족산에 물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판단착오였다. 물이 있다고 용이 날아오르는 것은 아니다. 용이 날고 싶을 때 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김자점은 천시를 간과했다. 사자는 아무 때나 사냥하지 않는다.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한다. 이것이 천시이다. 그가 왕이 되려고 했다면 내공을 키우고 세력을 모았어야 했다. 그리고 홍수로 물이 개천이 흘러넘칠 때를 기다려 거사를 도모했다면 비룡상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자점보 >>> 3572
김자점이 비룡상천의 길지에 부친 묘지를 조성하고 발복을 받으려고 청미천의 물을 가둔 풍수보(洑). 그가 만든 보는 사라졌으며 일부는 땅에 묻혀 있다. 지금 자점보 자리에 현대식 콘크리트보로 대체되어 있다. 자점보 옆 백족산에 김자점의 가 있었다고 하나 어디인지 모른다
.


안동김문 김좌근의 노력
안동김문중에서도 장동파가 세도정치의 핵심이었다. 그들의 세도가 60년을 이어갔지만, 그들은 반영구적으로 정권을 누리고자 했다. 그것은 김좌근이 김조순의 무덤을 이천시 부발읍에 조성하였으나, 그곳에서 30리나 떨어진 백사면 내촌리에 별장을 지었으며 별장 뒤에 김좌근과 김병기의 무덤을 만들었다. 이는 금반형이라는 길지가 있다는 것을 믿고, 명당을 찾아서 집을 짓고 무덤을 만들었던 것이다.
김조순은 김창집의 네째 아들 김달행의 손자였고, 김조순은 순조의 장인이었다. 김조순은 문과급제하여 중앙정치에 진출하였는데, 정조에게서 신뢰를 받아 그의 딸이순조의 비가 되었다. 왕의 장인으로 정권을 잡은 김조순은 헌종과 철종의 왕비를 안동김문의 장동파에서 간택하게 하였다. 헌종은 김달행의 동생 김탄행의 후손에서 왕비를 간택했고, 철종은 김달행의 튼형인 김성행의 후손에서 간택하였다.
이들의 본원적 공간은 이천이 아니라 김상헌의 혼백이 머무는 양주의 석실묘역과 석실서원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김창집이 묻힌 여주 대신면 초현리였다. 김조순이 종손이 아닌 방계로써 파생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에서 부발읍을 선택하여 묘역을 만들었고, 김좌근은 백사면에 묘역을 조성하였으나 그 추모공간으로 고착화되기 전에 가문이 쇠퇴하였으며, 후손들을 교육시티는 강학공간도 고택에서 10리되는 곳에 현암서원을 조성하였으나 권력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흥선대원군이 훼절시켰으니 길지가 아니라 흉지였던 셈이다. 



김좌근고택 >> 3482
조선 말기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유명한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의 별업지이다. 한양에 자택이 있었지만, 원적산 기슭에 금반형 명당에 집을 지어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던 곳이다. 99칸의 대궐같은 집이 있었으며, 집 주변에 김좌근과 김병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근자에 개장하여 화장했다고 한다. 현재 고택은 기증하여 서울대학교 소유이다.



사람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데 본원적 공간이 필요하다. 전통시대의 본원적 공간은 거주공간, 경제공간, 선영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었다. 거주공간과 경제공간은 이주한 1-2세대가 만들어야 하는 공간이고 선영공간은 2-3세대가 만들어야 하고,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은 3-4세대가 만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개인이 가족을 구성하고 번성하여 소가문을 형성하여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는 다양한 공간의 형성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본원적 공간은 공간간의 상호작용으로 혈족의 정체성을 부여하며 한문에 정진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가문이 되기 위한 조건이었다.

 

 

 

이천오층석탑 환수 운동 >>3418
조명호 이천문화원장께서 문화재 환수 운동을 펼치고 있는 문화재. 이 탑은 1916년 조선총독부 마당으로 옮겼다가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그 후 동경 오오쿠라 집고관 뒤편 처마아래 설치했으며 지금은 해체되어 창고에 보관중이다.


이천도자기  >>> 3426
이천시의 도자기 컨셉은 광주나 여주보다 뛰어나고 추진력이 강하다. 4월 도자기축제를 즐기러 이천으로 가자.



이천서씨 시조 서신일묘 >> 3547
부발읍 효양산에 있는 고려시대 명장 서희장군의 조부묘. 명당의 조건인 입수와 당판, 좌우선익, 전순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므로 일부 풍수사들이 괴혈이라고 한다. 괴혈이란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큰 인물이 나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태평흥국명마애보살좌상  >> 3535
보물 제982호로 고려 초 981년(경종6)에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에 세워졌다. 이천은 석탑과 마애불상이 많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마애불은 보통 미륵바위로 불리는데, 이는 ‘미르’라는 발음이 용을 뜻하므로 토속신앙인 미르신앙에 편승하여, 미르신앙의 대상인 선바위에 불상을 새겨 불교를 전파한 흔적이다. 이런 곳에 석불을 새긴 것은 필시 이부근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며 그 일을 진압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 사진 설명 ]

원적산 원경 >>>3524
이천의 서쪽에 용인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원적산 기슭에 금반형 길지가 있다는 설화로 유면하며 사대부들이 명당을 찾아 모여들었던 곳.

 

현암서원터 >> 3514
순조왕비의 친정아버지 김조순을 배향한 서원. 안동김씨 장동파 김조순의 가계를 위한 문중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이 없애버렸다. 지금은 시민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애련정 >> 3503
이천시내 미란다 호텔 뒤에 있는 연못가의 정자. 김안국·월산대군·서거정 등의 시가 남아 있고, 숙종과 영조·정조가 다녀간 유서깊은 장소이다.

 

백족산 전경 >>> 3586
산의 능선이 아래로 연결되어 청미천을 만난다. 김자점이 선호한 지형을 살펴보니 그의 성품이 성급하고 덤벙대는 경향이 있고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성품에 따라 그가 좋아하는 자연지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봉산영월암 >>>143003
신라시대에 설봉산 정상 아래에 세워진 사찰로 마애석불과 삼층석탑이 보존되어 있음. 규모는 작아도 사찰로써 풍수적으로 갖출 것은 제대로 갖춘 지형으로 삼성각 터가 일품이다. 우백호 자락에 석탑을 조성하면 금상첨화일 것으로 생각됨. 대웅전 뒤 영월암마애여래입상(보물 제822호)이 있다.




이천에는 36명의 정승을 배출한다는 금반형 길지가 있다는데 명나라 풍수사 두사충이 두무재에서 금반형 길지를 보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조선에 왔었고, 정유재란 때는 아예 두 아들을 데리고 매부인 진린을 따라  다시 입국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은 정착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다. 두사충은 이천에 정착하지 않고 대구로 갔다. 그의 무덤이 대구에 있다. 그는 금반형 길지를 찾았을까 찾지 못했을까?




이천(利川)은 고려의 왕건이 강을 건너 삼국통일을 이루는 거사를 진행한 곳으로 왕건이 지명을 하사했다고 전한다. 주역의 이섭대천(利涉大川)을 근거로 이천을 지명으로 하였다. 이섭대천이란 ‘큰 강을 건너야 이롭다’는 의미인데 이는 ‘큰 일을 도모하면 성공한다’고 풀이되는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은 인문학의 총체이다. 산은 역사를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산에는 오랜 사찰도 있지만 산자락에 마을이 형성되며 산에 조상 묘역를 조성했으며 산 정상에는 산성이 구축되어 피란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천과 용인의 경계에 원적산(564m)은 금반형 길지를 품고 있는 산으로 유명하고, 설봉산(300m)은 이천의 진산이다. 이천은 평지구릉의 지형이 대부분이다. 농경산업이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전통시대에는 논밭이 부(富)를 상징했으므로 이천은 먹고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첨단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SKhynix가 이천의 명물이다.




설봉산영월암의 반야용선도 >>142925
주지 보문스님이 아미타전에 이천의 명물 자기로 탱화를 조성하여 매우 인상적이었다. 퇴색되지 않고 만년 깔끔한 그림을 유지할 수 있다.





반룡송  >>3467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 있는 수령은 850년의 천연기념물 제391호 소나무. 소나무의 생김새가 용트림하는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선국사가 전국의 명당에 심은 소나무 5그루 중의 하나라고 전해지는데 이천은 오래 전부터 명당으로 입소문이 많이 난 지역이다. 



 
     
 
dfg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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