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수고시과목
형기론
이기론
현공론
풍수원전
풍수도서관
투텐명리학
연구게시판
풍수게시판 1
풍수게시판 2
풍수게시판 3

풍수칼럼
점포개발
풍수인테리어
풍수논단
고전엿보기

 
HOME 풍수콘텐츠 풍수칼럼
   
  [제목] [풍수여행] 지리산 정기를 담은 덕산 그리고 남명 김규순 2017-04-01 8360  
     
 

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_201702

지리산 정기를 담은 덕산 그리고 남명

 

글 사진 || 김 규 순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__122316
고려시대 대사찰. 현재는 당간지주와 동서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마을 가옥들이 단속사의 주춧돌과 장대석 위에 집을 지었다. 대대적인 발굴이 필요하다. 최우의 서자 만종이 유배와서 민초들을 착취했던 곳으로 전한다. 탁영 김일손의 두류기행록에 단속사에 대한 모습이 세밀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사찰이다.



12월 어느날 이영호 서울동인학회장, 최낙원 성북성심병원장, 유용석 선생 등 네명의 남자가 의기투합하여  미세먼지가 가득한 서울을 벗어나 지리산으로 향하였다. 겨울철의 원거리 답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동하다가 짧은 낮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덕산에 도착하니 진주에서 마중을 나온 표원일, 진영숙, 하재우 세분이 기다리신다. 이번 답사는 인원이 많아서 덕산을 휘저어 놓을 것 같다. 남명기념관에 도착하니 조승섭 관장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두 분의 문화해설사(안승필, 변명섭)께서 기다리고 있었다.




입덕문__153350
덕산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세워진 각자. 그 외에 성리학을 공부하러 들어가는 문, 그리고 남명선생의 학문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측아래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낙원, 유용석, 김규순, 안승필(문화해설사), 진영숙, 변명섭(문화해설사), 이영호, 표원일 하재우.





덕천강의 정기
여름의 지리산은 많은 사람들과 수다스런한 계곡과 풍성한 맛이 있는 반면에, 겨울의 지리산은 한적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 지리산 천왕봉(1915m)으로 가는 최단거리는 중산리 코스이다. 중산리를 가자면 거쳐야 하는 곳이 덕산이다. 행정적으로는 산청군 시천면이다. 자연적 입지로는 천왕봉의 물을 실은 덕천강이 지나는 곳이며, 천왕봉에서 연결된 좌청룡 능선과 우백호 능선이 감싸 안은 곳이다. 화장산(좌청룡)과 수양산(우백호)이 마주하면서 덕천강은 협곡처럼 보인다. 아마도 지리산의 양 산줄기가 온전히 품어 안은 면소재지는 여기가 유일할 것이다. 산의 물은 산의 정기를 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지리산을 만나면서 지리산 특유의 미네랄을 함유하게 된다. 지리산에 사는 모든 동식물은 지리산의 미네랄을 먹고 산 것이다. 



천평들__141034
남명선생 묘역에서 내려다 본 천평들. 덕천강 건너 비닐하우스 딸기밭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이 들어서려면 자체 생산 공간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남명선생이 덕산을 선택한 것은 먼저 ‘천평들’이라고 명명한 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명의 풍수
조선전기 퇴계와 남명은 경상좌도와 우도를 가르는 성리학자로 우뚝 서 있다. 경상좌도의 학문은 경(敬)에 무게를 두어 알아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반면, 경상우도의 학문은 경을 바탕으로 의(義)를 내세워 앎은 곧 실행으로 이어지는 성향을 보여준다.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는 남명의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퇴계와 남명은 두 분 다 오복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의 이치를 깨달은 도학자였다. 고종명이란 죽을 때를 미리 알아서 스스로 준비하고 맞이하는 자세를 말한다. 남명선생도 신후지지를 잡아 놓고 비석명을 지어놓는 등 삶의 끝을 정리하셨다. 산천재와 백운계곡과 묘소를 보면 그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남명 묘역__2991
높지 않은 마을 뒷동산에 남명선생께서 잠들어 계신다.
대명당인 것도 아니지만, 풍수적으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후학들의 마음 씀씀이을 보여주는 석축이다.




산천재는 산을 뒤로하고 덕천강을 바라보며 지형의 순리대로 배치를 하였고, 숙식을 해결하는 동편 건물은 지리산천왕봉을 바라보이도록 지었다. 노력은 순리대로 그러나 고매한 학문은 지리산과 함께 공유했던 선생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것 같다. 남명선생은 지리산을 12번이나 다녀서 선택한 곳이 덕산이라 한다. 그는 지리산을 돌아보면서 천지간의 자연만 본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사람의 면면을 놓치지 않았다.
“물만 보고 산만 보다가 그 속에 살던 사람을 보고 그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10일 동안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언짢은 생각으로 바뀌어버렸다.(看水看山. 看人看世. 山中十日好懷. ?成一日不好懷)”(유두류록_조식)




지리산 천왕봉___
남명선생께서 죽을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던 천왕봉. 짙은 연무에 가려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살포시 드러내는 천왕봉.

남명선생은 자기의 묘를 생전에 직접 잡았다. 옹골차게 솟은 산과 굵은 팔뚝 같은 능선위에 누워 계신다. 풍수적으로 보면 조금은 모자란 듯한 자리인지라 아쉬움이 있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자족하는 도학자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그의 묘는 덕산의 나들목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를 지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덕산을 드나들 수 없다. 자신을 신비로움으로 포장하지 않는 스타일,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남명의 자연스러움에서 조선 선비의 색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남명묘소와 산천재를 어느 풍수사가 ‘회룡고조형’이라고 했다지만, 진정한 의미의 회룡고조형의 장소는 아니다. ‘회룡고조형’이란 그 땅을 만든 산봉우리를 돌아보는 형국의 지형을 말한다. 충신이나 효자가 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에서 가장 이상적인 풍수개념의 땅이다. 남명이 살았던 산천재는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는 공간에 건물을 지었으나 죽은 자의 공간인 묘소는 지리산 천왕봉을 외면하고 덕천강이 흘러가는 곳을 바라보며 자리 잡았다. 여기서 남명선생의 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보이는 남명(南冥)은 남쪽 바다라는 뜻으로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이다. 그는 덕천강을 따라 쉬임없이 흘러 남쪽 바다로 갔을 것이다.



산천재(山天齋)와 남명매__3011
남명선생은 자기가 머무르는 곳을 산천재라고 칭하였다. 산천재란 큰 산이 이미 하늘 높이 솟아있음을 묘사하는 것이니 이는 큰 산은 여여如如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역에서는 산천대축이라 하여 저수지의 물을 가두는 댐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물을 가두는 기간이 필요한데 오랜 기간 내공을 쌓는데 힘쓰라는 남명선생의 암시이다. 좌청룡 우백호가 없는 지형으로 남명선생의 거침없는 행보와 자존감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산천재는 덕천강의 공격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남명선생의 역발상을 보여준다. 강의 보호사면이라면 느긋하게 있어도 되지만, 공격사면의 경우 폭우기 쏟아지면 밀려드는 강물에 산사태나 홍수가 날 우려가 상존하는 곳이므로 항상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남명선생께서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는 성성자(惺惺子)와 경의검(敬義劍)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공간적 가르침이다. 이러한 지형에서 보여주듯이 남명선생의 경의(敬義)는 과단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제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빨리 거병하였으며, 곡창지대인 호남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을 막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남명의 가르침에 의하면 왕에게 물어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실행을 하고 단지 추인을 받으면 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경의는 지행합일을 전제로 한다. 지행합일은 도학자의 목적이지만, 조선왕조는 왕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원했다. 병권을 쥐고 있는 왕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의병을 일으킨 남명의 제자들이 임진왜란 후에 모함을 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덕천서원__3015
남명선생을 기리며 후학들이 세운 서원이다. 좌청룡 우백호가 없는 물가에 입지를 선택했다. 그만큼 자신감과 자존감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남명선생의 기품을 닮았다.




정당매___3148, 3158
강회백이 단속사 경내에서 공부할 때 심은 매화. 강회백의 벼슬이 정당문학(종2품)에 이르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천출신으로 알려진 강회백이 남사에서 태어난 것은 외갓집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덕천강은 천왕봉에서 대원사 계곡을 거쳐오는 북쪽 지류와 중봉과 촛대봉에서 내려오는 남쪽 지류가 덕산에서 합류하여 도구대(陶丘臺)를 지난다. 하류 쪽으로는 하동군과 진주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진양호로 흘러들어간다. 지리산의 물이 흐르는 마을은 많지만 대부분 다른 기맥의 물과 혼합되기 일 수이다. 풍수에서 물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서 그 양과 모양, 물의 색깔과 냄새까지 세밀하게 분석한다. 이에 더하여 남명선생은 물의 기운까지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61세를 넘긴 생의 말년에 12차례의 지리산행을 통해 고심한 끝에 선택한 곳이 덕산이다.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자기의 생을 마감할 종명지로 선택한 이유는 덕산이야말로 오로지 지리산의 정기만 품은 순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덕산은 지리산 정기의 순도가 100%인 곳이다. 그는 산천재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으며 그가 세수했던 덕천강의 물에서 지리산의 정기와 소통했다는 사실에서 그는 지리산에 매료된 사나이가 아니라 지리산과 일체라고 여겼던 것이다.




남명장구지소__2928
용문동천을 지나 20여분을 걸어서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남명선생이 지팡이와 짚신을 벗어 놓고 유유자적하던 공간으로 후학들이 남명선생이 그리울 때면 회합을 갖던 곳이다.







탁영대__2953
갓을 벗어놓고 갓끈을 씻던 곳이다. 입덕문 아래 덕천강변에 있는 커다란 바위로 과객이 먼 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이곳에서 덕천강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다.






광제암문(廣濟?門) 각자___3124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친필이라고 전하지만, 사실은 고려 성종 14년(995)에 석혜연스님이 쓰고 석효선 스님이 각자한 것이다. 단속사로 올라가는 옛길 옆 암벽에 새겨져 있다. 지금은 사라진 길이어서 외지인은 찾기 힘든 장소에 있다. 



 

지리산 산신의 기운
산신령이란 산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다. 산신령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산에 기대어 사는 지역공동체를 하나로 엮어주는 구심점이다. 산신령은 지역공동체의 정신이며 질서이고 이데올로기였다. 나아가 산신령은 우리의 천신이었고, 조상신이었다. 천지가 하나이므로 천신이 지신이고, 지신이 산신이었다. 우리는 선민사상에 의해 조상신은 상제 옆에 앉아 있는 존재였다. 그러기에 천신=지신=조상신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하늘에서 강림한 단군은 최초의 산신이 되었다는 것도 그런 발상을 뒷받침해준다.



대원사 산왕각과 산신모__3015, 3095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사찰 중 하나. 지리산의 정기를 받은 사찰로 산왕각(山王閣)에 산신모를 모시고 있다.











지리산성모상__3047, 3049
지리산의 산신령으로 만든 성모상으로 우여곡절이 많다. 일제시대에 내원사의 최기조가 성모상을 자기의 토굴에 가져다 놓고 기도를 드리다가 들켜 중산리 사람들이 다시 천왕봉에 옮겨 놓은 적이 있다. 그 다음 1974년 훼손되어 상체는 분실되고 하체는 천왕봉에 남아있던 것을 중산리의 천왕사 주지 혜법스님이 꿈의 계시를 받아 성모상의 상체를 진주 비봉산 아래 어느 농장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여 경찰과 문화재관리소에 신고하여 회수하였다. 그 당시 문화재 가치를 알지 못해 방치되던 것을 혜법스님이 성모상의 상체와 하체를 모아서 접합하여 천왕사에 모셨으며, 1991년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14호로 등록·보존하고 있다.



산신령은 시대에 따라 그 주인이 바뀌기도 했다. 지리산 산신령은, 고조선의 마고(麻姑)할매, 신라의 박혁거세 모친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고려의 왕건 어머니 위숙왕후(威肅王后),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摩耶)부인 등 네 분의 신모(神母)가 차례로 등극하였다. 이는 대원사 산왕각(山王閣)에 산신모(山神母)가 모셔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리산신은 어머니의 상징이다. 지리산에서 어머니의 기운을 받고 새해의 정기를 받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사진설명]

용문동천(龍門洞天)
백운계곡 입구에 세워진 각자. 동천이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공간적으로 동천이란 밑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경관이 뛰어난 곳을 말하고 반면에 대(臺)는 내려다보았을 때 수려한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남사예담촌의 돌담길___2895
남사예담촌은 개천의 보호사면에 마을이 들어서 있으나 지형이 북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가옥들이 개천을 뒤로하고 산을 바라보고 집을 지어 반풍수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피하고 따뜻한 햇볕을 구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다. 마을의 입지로는 지형상 불리한 여건이지만, 단속사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부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고려말 조선초의 인물인 강회백, 이재, 하연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이 배출된 마을이다.



 
     
 
ㅎㅇㅎㅇ
[2019-06-08]
【 https://www.hwimt.com 】 메이저사이트, 먹튀검증업체, 먹튀검증, 스포츠토토, 스포츠토토검증, 놀이터인증업체, 안전한놀이터, 안전놀이터, 안전메이저놀이터, 토토먹튀인증, 먹튀인증업체, 먹튀인증
【 https://www.hwimt.com 】 메이저사이트, 먹튀검증업체, 먹튀검증, 스포츠토토, 스포츠토토검증, 놀이터인증업체, 안전한놀이터, 안전놀이터, 안전메이저놀이터, 토토먹튀인증, 먹튀인증업체, 먹튀인증
【 https://www.hwimt.com 】 메이저사이트, 먹튀검증업체, 먹튀검증, 스포츠토토, 스포츠토토검증, 놀이터인증업체, 안전한놀이터, 안전놀이터, 안전메이저놀이터, 토토먹튀인증, 먹튀인증업체, 먹튀인증
【 https://www.hwimt.com 】 메이저사이트, 먹튀검증업체, 먹튀검증, 스포츠토토, 스포츠토토검증, 놀이터인증업체, 안전한놀이터, 안전놀이터, 안전메이저놀이터, 토토먹튀인증, 먹튀인증업체, 먹튀인증
분데스
[2022-05-15]
분데스리가 2부

알루 쿠올(20): VfB 슈투트가르트 II에서 SV 산트하우젠으로 (공격수, 여름까지 임대)

모리스 드빌(29): FC 자르브뤼켄에서 SV [ http://xooxf.xyz ] 산트하우젠으로 (공격수, 2022년 여름까지 계약)

톰 트리불 (28): 하노버 96에서 SV 산트하우젠으로 (미드필더, 계약 기간 미상)

에리히 베르코(27): 다름슈타트 98에서 SV 산트하우젠으로 (공격수, 계약 기간 미상)

케말 아데미(26): FK 침키에서 SC 파더보른 07 ([ http://xooxg.xyz ] 공격수, 2022년 여름까지 계약)

아드리안 파인(22): 바이에른 뮌헨에서 디나모 드레스덴으로 (미드필더, 여름까지 임대)

마리우스 리제강(22): . FSV 마인츠 05 II에서 다이나모 드레스덴으로 (골키퍼, 2022년 여름까지 계약)

다니엘로 시칸(20):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한자 로스토크로 (공격수, 여름까지 임대)

벤자민 골러(23): 베르더 브레멘에서 칼스루에 SC로 (공격수, 여름까지 임대)

이동경(24) : 울산 현대에서 샬케 04로 (미드필더, [ http://xooxma.com ] 여름까지 임대)

니클라스 시프노스키(24)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얀 레겐스부르크로 (공격수, 2023년 여름


까지 임대)
세바스
[2022-05-22]
3부리그

세바스티안 뵈셀 (27): 1. FC 자르브뤼켄에서 [ http://xooxa.xyz ] 할리스체스 FC로 (수비수, 2022년 여름까지 계약)

필리프 줄레흐네어(31) : 클럽이 없다가 할레슈 FC로 (공격수, 2022년 여름까지 계약)

잘렌 호킨스 (21): FC 잉골슈타트에서 FC 자르브뤼켄로 (미드필더, 여름까지 임대)

야밀 지베르트(19):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빅토리아 [ http://xooxb.xyz ] 쾰른으로 (수비수, 여름까지 임대)

마이크 파이겐스판(26): 헤센 카셀에서 SV 메펜으로 (공격수, 옵션과 함께 2022년 여름까지 계약)

케빈 라우후트 (32): SGV 프라이베르크 풋볼에서 빅토리아 쾰른으로 (공격수, 계약 기간 미상)

앤서니 시어(26) : 클럽이 없다가 FSV 즈비카우로 (미드필더, 2022년 여름까지 계약)


도미니크 코더(21) : 카를스루에 SC에서 발트호프 [ http://xooxc.xyz ] 만하임으로 (공격수, 여름까지 임대)

  Name :   Password :

 

    

 
   [풍수여행] 조선 사대부 정치적 재기의 발판_이천
   [풍수여행] 왕과 사대부들의 묘지가 가득한 남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