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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풍수여행] 한양 권세가들의 은밀한 공간_백석동천과 청계동천 김규순 2016-08-28 5252  
     
 

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 2016년9월호

삼각산의 정기가 노니는 백석동천과 청계동천





삼각산(三角山, 836.5m)은 좌우로 장막을 펼치며 남하하면서 계곡을 만든다. 한양도성으로 가기 직전 보현봉에서 동쪽으로 정릉천 서쪽으로 홍제천을 펼치고 있다. 삼각산 백운대를 중심으로 우이천과 창릉천이, 삼각산과 도봉산 전체를 아우르는 영역으로 중랑천과 공릉천이 좌우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고 있다. 능선은 계곡과 평야를 만들어 물을 모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계곡물과 샘물에는 그 산의 고유한 미네랄이 녹아 있다. 그 물을 마시며 산다는 것은 그 산의 정기를 마시는 것과 같다.  


글 사진 || 김 규 순

삼각산은 어디에서 왔는가? 금강산 북쪽, 강원도 평강군과 함경남도 안변군 사이에 가로놓인 600m의 고개로 추가령지구대가 지나간다. 이 추가령에서 한북정맥이 분기하여 임진강과 북한강 사이를 헤집고 남서방으로 전진하다가 한강을 만나서 우뚝 솟은 것이 삼각산이다.
삼각산 백운대에서 한양의 주산, 북악산으로 이어지기 전에 기운을 추스르려고 세운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보현봉을 발원지로 평창계곡이 선경을 이루며 평창동을 휘감으며 홍제천의 본류가 흐른다. 건너편 부암동에는 백사실계곡 백석동천의 자연주의와 인왕산 북벽 청계동천의 풍류주의가 대비된다. 이 공간은 예아 지금이나 삼각산의 정기가 피어오르는 곳이므로 문사(文士)들이 찾아들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삼각산의 보현봉>>>
가장 높은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그 아래로 평창동 고급주택지가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들이 노니는 장소에 불과했는데, 현대문명의 이기(利器)인 자동차가 현대인의 발이 되어 준 덕에 높은 곳까지 고급빌라가 들어서 있다. 평창동에 내린 빗물은 모두 홍제천으로 흐른다. 이 동네는 지기보다는 천기로 살아가야할 동네이며, 부자가 되어서 들어오는 곳이다. 보현봉 우측의 쌍봉이 형제봉이다.



청계동천과 백석동천
서울에서 자하문 고개를 넘어서서 좌측 인왕산 기슭은 청계동천(淸溪洞天)이라 부르고, 우측 북악산 기슭은 백석동천이라 부른다. <용채총화>에서는 이곳을 “도성 밖의 놀만한 곳으로 는 장의사(藏義寺) 앞 시내가 가장 아름답다. 시냇물이 삼각산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온다. 골짜기 속에 여제단(?祭壇)이 있다. 그 남쪽에 무이정사의 옛터가 있다.”고 적었다. 홍제천의 물이 맑고 돌은 희고 깨끗하여 신비스런 경관을 만들고 있어서 많은 선비와 사대부들이 노는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탕춘대성>>>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상명대학교이다. 상명대학교 뒷 능선이 탕춘대능선이다. 병자호란이후 이곳에 성곽을 쌓았다. 사진 좌측아래에 나뭇가지로 살짝살짝 가려진 흰선이 성곽이다. 성곽의 끝은 홍제천과 만나며 홍지문과 연결되어 있다
.
이하응의 별서 좌측 원경으로 북악산의 후면이 보인다. 고종의 아버지로서 항상 권력을 쥐고 있겠다는 심산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청계동천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를 지나 10미터 위쪽 우측의 바위에 새겨진 동네이름.




백석동천은 북악산 북벽의 높은 지대에 있지만, 막상 올라가면 낮은 듯 여겨지는 묘한 공간이다. 고관대작이 머무른 별서의 주춧돌이 있으며, 내면을 관조하기 위한 연못도 조성되어 있다. 이곳이 백사실계곡이라고 불러지므로,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이항복의 자택이 필운동에 있었으므로, 도보로 한 시간 정도 걸리니 별서로서 손색이 없는 입지이다. 필운동의 배화여자대학교의 필운관 뒤를 돌아들면 필운대(弼雲臺)라는 각자를 만날 수 있다.




백석동천 >>>
백사실 계곡에 새겨진 각자. 백사 이항복의 별서라고 전해진 곳에서 200미터 위 우측에 있다.




백사실 계곡에 남겨진 주춧돌과 연못 >>>
백사 이항복의 별서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의 집이 필운동에 있었으므로 부암동과 거리가 멀지 않아 별서로 안성맞춤이다. 계곡물의 흐름이 빨라서 별도의 연못을 만들어 유유자적하고자한 모습이 그려진다. 위쪽의 가옥은 계곡물을 등지고 산을 바라보며 따뜻한 햇빛을 받고자 남향을 지었다. 별서에서는 종종 풍수를 무시하며 경관과 효율성을 중시한다. 이는 사는 집이 아니라 잠시 거하며 쉬는 집이기 때문이다.








월암 >>>
월암(月岩)이라고 새겨진 각자. 바위에 걸터 앉아서 달을 바라보는 자리인지, 그 누구의 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 전자인 듯하다.




청계동천의 무계동(武溪洞)에는 무계정사(武溪精舍)가 있었다. 무계정사는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꿈에 본 경관을 찾아 지었던 정자이다. 안평대군(1418-1453)은 1447년 어느 봄날 꿈에 본 광경을 안견에게 그리게 했다. 그것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 <몽유도원도>이다. 안평대군은 도성 넘어 무계동에 별서를 짓고 살았으나 계유정난(1453) 때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로부터 그의 흔적은 지워졌다. 혹자는 안평대군이 정치를 떠나 무릉계곡에 은거하며 조용하게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무계동은 형제간 권력다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어 있는 곳이다. 지금 무계동은 한 쪽 구석에서 샘이 솟아나고 있고 사실주의 근대단편소설의 선구자 현진건(1900-1943)이 무계동에 살았다고 전하나 건물은 온데 간 데 없고 다만 무계동 각자 옆에 전통가옥 한 채가 수리 중이다.



무계동 >>>
안평대군 이용의 집터로 알려진 곳. 무계정사가 있었다고 전하나, 계유정난에서 친형인 수양대군에게 잡혀 사사당한 후 그의 모든 흔적이 지워졌다. 무계동의 글씨는 이용이 남긴 글씨 중에 몇 남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근대에 지어진 전통한옥이 수리중이다.





삼계동 >>>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 뒤 바위에 새겨진 동네이름.



무계동에서 한 블록 아래에 삼계동(三溪洞)이 있다. 지금 이곳에는 석파정과 흥선대원군(1820-1898)의 별서가 남아있다. 이집은 장동김씨 김흥근(1796-1870)의 집이었다. 김흥근은 순조황후와 6촌간이었고, 문과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역임한 당대에 내노라 하는 인물이었다. 이하응이 이집을 탐을 내었으나 김흥근이 팔지 않자 꾀를 내어 고종이 이집을 방문하여 하룻밤 숙식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왕이 묵은 집은 신하가 살 수 없다는 왕가의 원칙을 내세워 집을 빼앗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살아있는 권력이 무섭다는 말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모습에서 그의 정치가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의 말년이 꼬이고 명성황후와 파워게임에서 밀려나는 것이 그의 탐욕으로 인해 정적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석파정은 지금 개인이 소유하고 있으며 서울미술관의 한 부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서>>>
적어도 17세기부터 여기에 별서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집은 안동김씨 김홍근의 집이었다. 그는 영의정까지 지낸 세도가였으나 살아있는 권력 흥선대원군에게 집을 빼앗긴다. 인왕산의 암반 위에 세워진 별서이다.





석파정
흥선대원군 별서에서 가장 구석진 계곡에 지어 놓은 중국풍의 정자. 흥선대원군은 자기의 호를 따서 석파정이라고 불렀다.






흥선대원군 별서의 바위에 새겨진 각자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집 한수옹(권상하)이 친구 정이(조정만)에게 신축년에 글을 써주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巢水雲濂菴 寒水翁書贈 友人定而是 辛丑歲也)
권상하(1641-1721)와 조정만(1656-1739)은 김홍근보다 150년 앞선 시대의 사람이므로 이곳이 여러사람의 손을 거쳐간 곳임이 틀립없다.





홍제천
홍지문과 탕춘대성을 지나 홍제천을 따라 600미터정도 걸어가면 옥천암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는 보도각백불(普渡閣白佛)이라고 적힌 마애보살좌상(보물 제1820호)이 있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 양식이므로 고려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물줄기를 따라 몇 리를 따라 내려가면 불암(佛岩)이 있다. 바위에 불상을 새겼고 시냇물이 꺾여 돌아 북쪽으로 가다가 곧장 서쪽으로 흐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도읍을 정하면서 기도한 곳으로 전해지며,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인이 여기서 기도하여 나은 아들이 고종이라고도 전한다. 조선의 처음과 끝의 기운이 서려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옥천사 >>>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이자 고종의 어머니가 기도한 곳. 조선의 시작과 끝이 옥천사의 기운과 함께 한 것은 아닌지.




홍제천 계곡 >>>
인왕산에서 내려다 본 홍제천과 내부순환도로. 사진 아래쪽 고동색 지붕의 다세대 주택 위로 옥천암이 보인다. 완전한 반궁수자리로 물이 세차게 때리는 곳이다.물이 들이쳐서 바위가 드러난 곳으로 마애석불이 새겨져 있다. 이성계의 기도처로 전해진다. 그 옆으로 왕복 6차선의 거대한 고가도로도 무심하게 지나간다.
 



평창동과 홍지동의 경계지점, 홍제천 위에 세검정이 서 있다. 옆으로 도로가 나 있어서 쉴 새 없이 차량이 오가며 분주하고 시끄럽다. 주위 가옥들에 의해 오염된 듯 홍제천에 흐르는 물은 부유물이 섞여있다. 그 옛날 고즈넉했고 맑은 불이 흐르던 경치를 떠올려본다.
세검정에는 한양의 북방 외곽을 담당하였고 북한산성의 경비를 담당했던  총융청이 있던 곳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명분없는 쿠데타로 정평이 나 있는 인조반정 때에 주모자들이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결정하고 칼을 씻었다고 전한다. 



세검정 >>>
총융청이라는 조선 군부대가 있엇던 곳으로 인조반정의 음모를 꾸민 장소로 전해진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4가지 요소가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지리(地理), 둘째 생리(生利), 셋째 인심(人心), 넷째 산수(山水)이다. 홍제천이 있는 부암동은 한양 사는 사대부나 선비들에게 산수였다. 산수란 힐링할 수 있는 자연공간으로 경관이 뛰어난 곳을 말한다. 이런 공간은 자기가 생활하는 곳에서 한 시간이내의 거리여야 한다. 지금이야 도로가 좋고 터널이 뚫려서 자동차를 타면 10분이면 가지만, 도보나 말을 타고 다니던 때에는 한양 도심에서 시간이 꽤나 걸린 거리이다.

세검정이 도성 밖이지만, 소나기 내릴 때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물기운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계곡이 깊지 않아서 소나기 내릴 때만 넘칠 듯한 물을 볼 수 있었으니  다산 정약용은 소나기가 내릴 만 하면 세검정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정약용의 <유세검정기>에서는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 내릴 때 폭포를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중략) 정자에 올라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난간 앞의 수목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데, 부러질 것 같아서 술기운이 싹 가시는 듯했다. 이 때 비바람이 십ㅁ하게 몰아치고 산에서는 물이 사납게 쏟아져 내려와 숨 쉬는 잠깐 사이에 계곡을 채우더니 그 소리 또한 요란하였다. 모래가 쓸려 내려오고 돌이 구르면서 사나운 물이 솟구치면서 정자의 초석을 때리는데 그 기세가 사납고 맹렬하기 그지없었다. 정자의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두려워 편안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명승지를 우리는 가옥들로 채우고 시멘트로 계곡을 덕지덕지 발라놓고 있으며, 도로를 만든다고 계곡을 매립하고 있다. 감흥 없이 먹고 사는 데만 정신이 팔린 삶의 질이 조선시대보다 낫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부암동은 권력을 향유한 자들의 은밀한 공간으로 한양의 속살을 간직한 곳이었다.

 
     
 
이승노
[2016-09-04]
잘 읽고 감동받고 갑니다..지금 물질적 풍요가 정신을 가난케하고 삶이 좋아졌는지는 알수 없고 팍팍한 삶이 안타까울뿐...옛 조상들의 풍류가 그립네요...ㅋ
박형규
[2016-09-07]
김규순교수님 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윤광철
[2016-09-08]
잘지내제..좋은글 감사.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게~?
능현
[2016-09-08]
교수님 이번달 풍수일간지 준비하시느랴고 수고 많으셨습 니다 많이 애쓰셨습니다 삼각산을 바라보면서 지향 구성과 정리 내용 알차게 잘 표현 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 대단하십니다 본보기가 되겠습니다 저희들도 조금씩 배우는 학생들이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교수님 훌륭하십니다 다음 풍수 일간지 기대하겠습니다 화이팅요^^
태백
[2016-09-08]
밝은 얼굴에는
늘 밝은 기운이 난다고 합니다

맑은 마음은 늘 맑은 손짓이
있다고 합니디

건강한 생각은 늘 몸또한 건강
하다고 합니다

긍정은 내몸 내생각 내마음을
잘 다스리는 명약과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긍정의 에너지로 자신을
잘 다스리는 시간 보내시게요

화이팅~규순형

잘 읽겠습니다
신수호
[2016-09-08]
가을은 완연한데
건강하시지요?
중추가절을 맞이하여
댁내 두루 편안하시지요?
곽선비
[2016-09-08]
감사합니다~^^
대단하신 필력입니다. 잘 봤습니다~
이기흥
[2016-09-09]
서울에 수십년을 살았어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 곳이군요. 더운 여름날 배낭 메고 다니시더니 답사 다니신거군요. 시야가 넓어지고 많은 지식 얻었습니다.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박성숙
[2016-09-09]
주말에 올라온 글인 거 같은데 나중에 일거야지 해놓고 이제야 펼쳐 봤습니다...
옥천사 부처님 부조가 특이 하네요. 첨 봤어요. 아직도 우리나라에 세간에 덜 알려진 곳이 많군요...
김명지
[2016-09-10]
보내주신 글 재미있게 읽고 있음니다. 특히 저 고향인 금당실글과 이번글이 저를 매료시키네요. 답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비박을 하면서 하시나요?
려산
[2016-09-10]
놀랍고 대단 하십니다~^^
추석명절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삼나무
[2016-09-10]
포스팅 정말정말 잘 했네 투덕투덕
이걸 읽으면서 빨리 끝나지
가 아니라 더 좀 길게 쓰지라 생각이 들 정도~
우산 이상길
[2016-09-16]
文忠公 白沙 諱 李恒福/鰲城府院君 先生 別堂(별서/別墅) 遺蹟地 復元 서울시 豫算 287億원 確定
김규순
[2016-09-16]
우산 선생님 소식 감사합니다
김규순
[2016-09-16]
권세가들에게 있어서 별서는 본가저택과는 다른 생활양식과 문화를 가진다.소위 보다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별서이다.고로 지리적 지형적 환경이 본가와 많이 다르다. 풍수적으로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궁국적으로 별서는 유희의 장소 또는 힐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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