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과산 201602월호

소통정치의 제왕, 정조의 도시_수원

글 사진 || 김 규 순 

팔달산에서 내려다 본 수원시내    수원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형성된 평야지대에 도시를 세웠다. 조선시대에는 광교산_백운산_이진봉_팔달산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으로 수원이 발달하였고, 현대에는 물류의 편리함으로 저지대보다는 약간 높은 지대를 중심으로 주택지와 신시가지가 발달하는 경향을 보여 광교산_형제봉_경기대학교_봉녕사_아주대학교_수원시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신도시의 중심축으로 발달하고 있다.

북으로는 광교산(587m)이 우뚝 버티고 있어서 그 육중함이 수원을 안정감 있게 만들고 있다. 광교산은 한남정맥의 중심으로 여기서 서쪽으로는 수리산, 북쪽으로는 청계산을 통하여 관악산까지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중요한 산이다. 광교산의 정기는 동쪽으로는 청명산(191.9m)이 용인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칠보산(239m)이 군포 수리산의 기운을 이어받아 수원까지 뻗어내리면서 안산과 경계를 이룬다. 팔달산은 광교산_백운산_이진봉으로 와서는 평지로 낮게 능선이 이어지다가 수원행궁 뒤에서 우뚝 솟아난 산이다. 팔달산 정상에는 수어장대가 설치되어 있고, 산의 동쪽 아래에 수원행궁을 안고 있다. 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팔달산의 기개는 광교산에 버금갈 만큼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팔달산의 산신령_이고

여주인 이고(1341-1420)는 고려 말 나라가 쇠망하자 수원의 팔달산에 은거하였다. 그는 두문72현 중의 한사람 일컬어지는데, 1392년 조선 건국후 태조 이성계가 그를 불러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세종 대에는 석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정조가 1795년 이고의 묘역에 치제하면서 ‘팔달산주인’으로 일컬어 수원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팔달산의 산신령으로 추봉 받았다. 산신령에 관한 정신문화 유산은 고조선 시기부터 내려온 우리나라의 산악숭배사상과 천손사상을 바탕으로 한 전통 풍류사상이다.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시설이 전국에 포진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사라졌다가 정조대왕이 팔달산산령에게 치제를 한 후, 조선말에 명성황후가 계룡산 중악단을 설치하면서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다시 일깨웠다.



수원화성  화홍문 수류방화정, 동북포루가 한눈에 보이는 절경

 수원은 조선시대 최후의 계획도시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을 만들기 위해 그 당시 주위에 살던 수원군민들을 이주시키면서 만든 도시이다. 수원화성행궁(사적 478호)은 정조가 왕권을 양위한 후 노후에 살기 위한 집으로 지었다. 정궁(正宮)이 아니므로 근정전과 같은 대형 전각(殿閣)시설은 없으며 숙소를 겸비한 당(堂)을 위주로 지었다. 일제강점기를 맞이하여 자혜의원 및 수원경찰서와 학교가 들어서면서 수원행궁은 훼절되었고, 낙남헌(洛南軒)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975년 화성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2003년에 1차 복원공사가 이루어졌다. 2010년까지 2차 복원공사가 계획되어 있었으나 재정문제 등으로 보류된 상태이다.



수원행궁



낙남헌 수원행국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 

수원행궁의 관점 포인트

수원행궁은 동향으로 지어져 일반적으로 관아나 임금의 처소가 남향을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행궁을 동향으로 배치한 것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회룡고조형이란 효자나 충신이 난다는 상징을 품은 자리이다.

그리고 정면에서 보면 팔달산이 행궁을 온전하게 가려주지 않고 있는 점도 의아하다. 이는 경복궁에서 보면 북악산이 좌측에 포진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행궁배치이다. 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데, 수원화성 행궁의 경우, 정조대왕이 행궁으로 들어설 때와 한양으로 떠나면서 아쉬워 뒤돌아보는 때를 헤아린 설계자의 미학적 경관배치이다. 즉 정조대왕이 행궁을 쳐다보는 위치가 행궁 북쪽이므로 행궁을 배치를 팔달산 영역의 중앙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팔달산의 북쪽 편에 배치하여 팔달산이 행궁의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뷰포인트를 잡은 것이라 생각된다. 가장 안정된 모습으로 보이도록 배치한 경관에 따른 배치 미학이 적용된 사례이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위안을 주는 것도 풍수의 주요 목적이라 하겠다.






화성장대  팔달산 정상에 위치. 정조대왕이 손수 올라서 군사훈련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수원화성_세계의 문화재

수원화성축조는 1794년부터 시작하여 1796년에 완성하였다. 성곽은 왕의 위엄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물론 보안을 겸한 것일 수는 있으나 한양도성과 수원화성이 전쟁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으로 전쟁용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용으로 거의 완벽하게 구조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과 아름다움을 함께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정조대왕은 수원화성 축조형장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일당을 지급하였다. 그 전에는백성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부역으로 노동을 착취했지만, 정조대왕은 일당 지급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 최초의 임금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조대왕의 국민에 대한 사랑을 표시했으며 국민들의 임금에 대한 신뢰는 높아만 갔던 것이다.



수원화성 유네스코 등재 증명서 

정조대왕의 풍수정치

수원행궁에서 14km 지점에 정조대왕의 건릉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이 있다. 정조가 직접 사도세자의 능침자리를 찾아서 점지한 곳이다. 왕이 풍수에 관심을 가지고 왕릉을 찾은 왕은 생각보다 많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정조가 그 중 몸소 풍수공부를 한 임금이었고, 그 외에 왕비도 풍수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고 보인다. 선친의 무덤을 좋은 자리로 이장하기 위해 능침 자리를 찾아서 천장한 예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정조대왕 생전에는 화산릉(華山陵)이라고 불렸다. 정조대왕의 화산릉 행차가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았다. 임금이 행차하면서 자연스럽게 백성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고, 백성들이 일생에 한 번 뵐 수도 없는 임금을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 것이다. 이러한 기회가 정조대왕을 소통정치의 제왕으로 등극하게 하였다. 즉, 백성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가졌던 것이다. 정조대왕은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아픔을 해결하고자 밤잠을 설쳤던 것이다. 


홍제전서  정조대왕의 기록

이것이 사도세자를 명당에 묻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노력에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정조대왕은 풍수를 통하여 선친의 능침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수원부근에 세 개나 되는 저수지를 만들었고, 임금의 행차로 수원의 풍속을 왕도의 수준으로 이끌었으니 풍수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 뒤주 안에 갇힌 아버지와 담장 밖에서 아버지의 울부짖음을 들었던 아들이 세월이 흘러 죽은 아버지와 숨 쉬는 아들이 손잡고 일구어낸 쾌거이다.

풍습을 올바르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정치를 하는 것이며, 풍습이 올바르게 자리 잡으면 풍류가 되살아나는 것이며, 이로써 나라의 기강이 잡히고 나라의 문화가 융성해지는 것이다. 풍속이 문란해지면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나라의 기강이 흔들린다. 풍속도 유행을 타고 바람을 탄다. 바람이 불면 기가 흩어진다고 했듯이 풍속도 난해지면 사회가 불안해진다.





 건릉의 모습

건릉의 능선   왕릉으로 들어오는 능선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산은 인정을 관장하므로 풍수에서는 후손의 기백과 내공을 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정조대왕의 건릉을 살펴보면 뒤편의 능선과 연결되지 않는다. 능선이 산정부부에서 내려오다가 정조 능침의 좌측으로 틀어서 내려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건릉은 용맥에 이어져 있지않은, 산의 배 부분에 위치해 있다. 왕릉에서 능선과 능침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애초에 정조대왕이 직접 잡은 자리에 매장되었으나 후에 천장한 곳으로 역풍수(풍수해코지)가 의심된다.



융릉의 위용



지지대비   정조가 한양으로 갈 때 넘어가면서 천천히 가자며 뒤를 돌아보았다는 고개라서 지지고개라 한다. 이곳에 순조가 아버지의 효행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수원백씨

수원백씨는 780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팔학사 중의 한 사람이 백우경(白宇經)이다. 그는 당나라의 시성(詩聖) 백거이(白居易)와는 사촌간이었다. 중시조 창직(昌稷)은 경명왕의 사위였을 만큼 우대를 받았다. 신라를 이어 고려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다. 창직을 중시조로 하여 4세인 휘(揮)는 왕건의 사촌인 왕식렴의 딸과 결혼했으며 고려 목종조에 수원군으로 봉해졌다. 이후로 줄곧 벼슬이 이어졌으니 고려조의 명문가였다. 8세 이정(頤正, 1247-1323)은 1298년 임금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10년을 머무는 동안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안향(安珦)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체계화시켰으며, 그의 학풍은 이제현(李齊賢)에게 계승되었고, 그 후 이색(李穡), 권근(權近)과 변계량(卞季良)으로 전승되었으며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으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12세손 장(莊)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부름을 차례로 거절하여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면서 유배지에서 서거했다. 13세손 여옥(如玉)은 황희에게 배웠으며 조선조에서 좌참찬을 지내 벼슬길을 터기 시작했다. 16세 인걸(仁傑, 1497-1579)에 이르러 청백리를 배출하였으며 조선을 통털어 면면히 드러나지 않게 명문가를 형성했다.

수원백씨는 줄곧 벼슬이 이어졌으므로, 신라 때는 경주에, 고려조에는 개경에, 조선조에는 한양에 기거했을 것이다. 벼슬을 많이 하면 고향을 떠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외에도 장가를 들면 처가에 둥지를 트는 관례에 따라 많은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백씨는 선조가 수원에 뿌리를 내렸으므로 수원을 관향으로 하고 있다. 자손도 번창하여 현재 35만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난 뒤에도 백두진 국무총리 외에 장관을 8명이나 배출한 명문가로 명성이 드높다.

용주사   정조대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지은 사찰이름이다. 용주사는 일주문 대신에 향교에나 있을 법한 내삼문을 설치하였다. 불법승의 사찰이라기보다는 원찰로써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만들어지기는 했으나 매우 특이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