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과 산 2015년 12월호
김규순의 풍수이야기

이순신의 마지막 보루_해남, 그리고 윤선도

글 사진 || 김 규 순




이순신의 바다
해남은 땅끝마을로 유명하다. 해남은 땅끈이라는 상징과 함께 더 큰 의미가 숨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이순신 장군을 제거하고픈 세력들의 준동으로 백의종군할 대 일어난 정유재란으로 홈남까지 초토화되고 조선이 풍전등화의 위험에서 구출한 이순신 장군.  그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던 전쟁에서 기댈 수 있었던 크나큰 언덕이 해남이었다. 해남은 예로부터 해상세력의 본거지였다. 백제 멸망후 흩어졌던 백제의 해상세력이 장보고의 지도력으로 뭉쳐 해남과 완도를 기지화 했고, 고려왕건도 이 지역의 해상세력과 손잡고 후백제를 견제하고 흡수하였다. 그 후 삼별초가 항몽전쟁으로 해상계보를 이어갔으며, 조선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들 해상세력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어 왜적을 물리쳤던 것이다.


명량대첩비
1688년 3월에 숙종대에 세워진  ‘통제사충무이공명량대첩비(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
해남우수영자리에 다시 세워진 명량대첩비. 1942년 일제에 의해 경북궁 구석에 버려졌다가 1947년 해남유지들의 노력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2011년에 다시 원래의 자리인 문내면 동외리에 이건하였다. 새로 조성된 비각이 탑비에 비해 낮아서 그 위엄을 보존하기 어려웠으며, 비각 주위의 담장은 대첩비에 적힌 이순신장군의 영도력을 갇히게 하는 느낌을 준다. 차라리 멀리서도 대첩비의 형광이 보이도록 담장을 없앴으면 좋겠다.


남해안은 목포에서 해남, 진도, 고흥, 여수, 남해, 고성, 한산도, 칠전도, 창원, 거제도, 부산에 이르기까지 이순신 장군의 숨길과 숨결이 스치지 않은 곳이 없다. 여수를 삼도수군통제사의 본거지로 한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첨의 승리로 제해권을 확보하여 한산도를 최전방기지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은 주로 경계가 쉽고 기동력이 좋은 섬을 활용하였다. 연이은 승리로 백성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안겨주던 영웅이었다.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의 전략적 승리로 지원루트가 끊어진 왜군들이 폐색이 짙어지자 내륙에 성을 쌓고 강화협상을 진행하며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이 대 이순신을 제거하면 조선은 무너질 것이라는 전략을 세운 왜군은 고도의 계략으로 조선의 조정이 판단불가 상태에 빠뜨렸고, 이순신의 혁혁한 공이 두려웠던 꼴통 기득권세력들의 흉계와 협작작용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은 역적으로 몰려 결국 죄인의 몸으로 백의존군의 길을 걷게 된다.
전쟁 중에 장군을 말에서 내리게 하지말라는 서양의 격언이 떠오르는 사건이다.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한 아둔한 정치꾼들의 내 사람 챙기기에 급급한 간장종지만한 인간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달마산 도솔암
산 정상부분이지만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굳이 북현무·남주작·좌청룡·우백호를 말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수행의 공간으로서는 손색이 없다.


이순신이 파직 당하고 백의종군할 때,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패하여(1597년 7월 16일) 주력 수군이 몰살당하는 지경에 빠진다. 선조는 죄인으로 죽이려고 했던 이순신 장군에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장문의 글로 사과하면서 그를 삼도수순통제사로 다시 임명하였다. 경상도는 왜군의 수중에 있었지만, 이제 전라도의 바다까지 적의 수중에 들어가 초토화되던 순간이라 마땅한 진지조차 구축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진지를 이동하였는데, 명랑해전을 맞이할 때에는 해남의 우수영에 진을 쳤다.



이진성지(梨津城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대비하면서 수일간 머물렀던 전략 요충지. 이후로도 충무공은 벽파진, 우수영으로 진을 옮기면서 명량해전을 준비했다. 어쩌면 왜적을 울돌목으로 유인하기 위한 전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주도면밀한 지략가였으니까. 이진산성의  많은 부분은 완벽하게 보존이 되고 있었지만 일부가 무너지고 있었다. 방치된 듯 한 유적지가 조상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명랑 울돌목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앞바다가 명량이다. 바닷물이 운다고해서 명량 또는 울돌목이라고 한다. 이곳이 명량대첩의 현장인데 전라우수영과 진도사이의 해협이다.  바사물이 밀물과 썰물로 바뀔 때, 좁은 해협 바닥의 암반과 부딪히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는 솟구쳤다가 다시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이 때 우뢰와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가 바위가 우는 소리라고하여 울돌목이라고 한다.
이순신장군은 울돌목에서 거센 바닷물의 소용돌이를 이용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왜적이 해상에서 전의를 상실하게 만든 의미깊은 명량대첩이가. 전장에 나가기 전 그가 왕에게 올린 장계의 글귀가 생생하다.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잇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낸다면 오히려 막아낼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거둔 대승 이었다. 今臣戰船尙有十二(금신전선상유십이)。出死力拒戰(출사력거전)。則猶可爲也(칙유가위야)。 



울돌목_명량해협
울돌목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해협이다. 바다위로 진도대교가 놓여 있다.
물살이 거세어서 밀물과 썰물 때에는 배가 함부로 다닐 수 없다.
정유재란(丁酉再亂)때 충무공(忠武公)이순신(李舜臣)이 이곳에서 왜적을 크게 격파한 곳이 바로 명량대첩(鳴梁大捷)이다.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이 눈으로도 확인된다.





원균의 패전으로 빼앗긴 해상재해권을 되찾아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왜적들은 다시 이순신장군에 대한 두려움을 각인시킨 해전이었다.수적 열세에 있던 조선 수군은 전면전을 피하고자 목포 고하도로 진영을 옮겼고, 왜적들은 해남 육지를 휩쓸면서 보복을 가하여 마을이 초토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말미암아 명나라의 수군도 이순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으며, 명나라 수군의 전쟁참여를 독려하면서 마지막 해전의 준비가 가능했던 것이다. 전라와 경상도의 경계지역인 노량해협에서 아군 300여척의 군함 합심하여 왜적을 무찌르고 자신을 산화한 충무공의 노량해전(1598년11월19일)이다. 



달마산 미황사



전라도 관찰사 황신(黃愼)은 주민 3백명에 불과한 대마도를 정벌해야 우환이 없어진다고 기개에 찬 상소(1598년12월21일)를 올리지만, 비변사에서는 중국의 품의를 기다리자고 하며 사대주의에 젖은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하기야 7년 정쟁으로 국력은 피폐해졌고, 선조는 유약하기 짝이 없고 조선 조정은 왕의 비위 맞추기와 자리보전에 여념이 없고, 왕에 대한 조선 백성의 믿음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수군을 이끌 장군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 정벌을 할 수 있겠는가. 충무공이 살아있었더라면 대마도를 점령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해남윤씨의 본향
해남윤씨는 전라도 토성으로 명문가이다. 시조는 윤존부(尹存富)이나 상세한 연원은 알지 못한다.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에 윤선도의 8대조 윤광전(尹光典)이가 아들 단학(丹鶴)에게 노비를 물려준다는 고려시대의 노비문서(보물제483호)가 보존되어 있다. 해남윤씨는 본래 강진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본향이 강진이 아니고 해남이 된 연유는 알지 못한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해남윤씨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해남에 정착한 해남윤씨 12대인 윤효정(1476-1543)때부터이다. 그가 강진에서 해남갑부 정문명(鄭文明)의 아들 귀영(貴暎) 호장의 딸에게 장가를 가면서 해남에 정착하게 되었다. 해남정씨 정귀영은 아들이 없었고, 그의 부(富)는 세 명의 딸에게 상속되었다. 그 덕에 윤효정은 커다란 부를 손에 쥐게 되었으며, 어초은(魚樵隱) 즉 고기를 낚고 땔나무를 하면서 숨어산다는 뜻의 호를 지어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윤효정은 자신의 세거지를 해남군 해남읍 연동의 덕음산(德蔭山)아래 연동(蓮洞)마을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았으며 그의 무덤도 집 뒤에 있다. 



녹우당의 폐쇄
10년전 녹우당을 방문했을 때만해도 녹우당만은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지금은 녹우당 마저 폐쇄하여 문틈으로 눈요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무슨 일인가.  해남군 당국에서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도 지어주었는데. 100억의 전시장이 독이 된 것인가. 아니면 사생활보호라는 미명하에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어초은 가문의 명예를 포기한 것인가. 군의 행정과 어초은 종가 사이에 꼬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예전에 없었던 매표소가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종가와 해남군 간에 빠른 문제해결을 기대한다.
녹우란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이다. 생명을 불어넣는 비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생명과 삶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단어인가. 녹우를 맞으면서 녹우당에서 덕음바위의 뭉클한 기를 받고 싶다.








덕음산은 월출산에서 남동진하여 주작산을 만들었고, 주작산에서 북진하여 덕음산을 낳았다. 주작산의 다른 한 갈래가 서진하여 안산인 호산을 맺었다. 주산인 덕음산과 안산과의 사이에 넓은 평야를 만들어 생리(생리)의 기반을 만들었으니, 부의 축척은 필연의 결과이다. 부의 축척이 따른 후 귀함을 일으키는 것은 그 가문의 유전자의 공력이다.
덕음산이 병풍처럼 집 뒤를 둘러싸고 있고 암릉으로 덕음바위가 솟은 봉우리에서 연결된 능선이 부드러워지면서 묘터와 집터로 연결된다. 덕음산의 정기가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음이다. 정귀영이 죽고 그의 부가 세 딸에게 분할되었으나 정씨의 부자기운은 윤효정에게 집중되었다. 윤효정은 가문의 번성을 위해 길게 내다보고 자신은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학문의 불모지였던 해남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는 자기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일환이었을 것이다. 윤효정이 지은 고택은 5백년을 이어오고 있고, 효종이 수원에 하사한 집을 이건(移建)한 사랑채가 녹우당(녹우당)은 350년이 되었다.



녹우당의 연못 백련지
오래된 연못이다. 일반적으로 고택에서 가까운 곳에 연못이 있는데, 여기는 고택과 거리가 꽤 멀다. 소방수로서의 역할보다는 덕음바위에서 내려오는 기운을 바깥으로 설기되지 않게하려고 만든 인공못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해야 사는 사람의 기운이 상승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10년전에 와서 본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인공적인 가미가 너무 심하여 훼손된 것 같이 보인다.


윤효정 이후 해남윤씨문중의 어초은가(家)는 빛을 발한다. 아들 구(衢)는 홍문관교리를 지냈지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곤혹을 치루었다. 윤효정의 손자 의중(毅中)은 우참찬을, 증손자 유기(惟機)는 관찰사를 지냈는데, 유기의 아들이 동부승지를 지낸 선도(善道)이다.
윤선도(1587-1671)는 정치가이자 시인이다. 정찰,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시조시가이다. 1차 예송논쟁 시에 송시열이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정권을 쥐고 있던 서인들에 의해 맹공격을 받는다. 그가 효종과 현종의 세자시절 사부였던 관계로 사형은 면했으나 오랜 유배생활이 시작된다. 유배생활 중에 지은 시조가 유명한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이다.

날이 따뜻해지니 물위로 고기가 뛰놀고
갈매기 두세마리 오락가락하는구나
낚싯대는 갖고 있으니 막걸리병이나 실어라 (어부사시사 春詞2)

윤선도의 패철
고산 윤선도는 정조대왕이 풍수의 신안이라고 칭송할 만큼 풍수와 음양학에 통달한 인물이다. 대체로 대지의 기세는 매번 지나치게 웅위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아리답고 명랑하여 조금도 거칠고 사나운 기세가 없어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보배로이 감추어 성대가 억만년의 기틀을 여는 곳이라 할만하니 윤선도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좋다고 한 말이 조금도 허언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대지가 마치 오늘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전후로 능을 정할 때에 쓰이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우연이 아닙니다.라고 서면선이 정조 13년 1789년 7월11일에 고하고 있다. 체재공이 수원은 길지이다.민약 국장을 지낸다면 우리 자소노 이로부터 세상에 드러날 것이다.라고 한 고산의 말을 정조에게 드리고 있다.1790년 2월26일 일성록





윤두서의 초상화_국보



윤두서의 무덤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두륜산 대흥사 전경과 일문
대흥사는 해가 뜰 때 그리고 달이 뜰 때가서 기를 받아야 한다. 일문으로 해가 들어오는 시간과 월문으로 달이 들어오는 시간에 기가 가장 강하다. 일문은 해가 들어오는 문이며 월문은 달이 들어오는 문이다. 일문은 대흥사의 동쪽에 산의 능선이 말안장처럼 푹 꺼진 곳이며, 월문은 서쪽 능선이 말안장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깔고 있는 곳이다.



두륜산 대흥사의 월문



해남군의 지세를 보면 동쪽에 주작산으로부터 두륜산, 달마산을 지나 땅끝마을까지 기복은 있지만 거의 직선으로 내달린다. 해안도로를 끼고 가면서 보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나의 성곽처럼 보인다. 이를 볼 때 해남사람들의 기개는 출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해남 사람들의 중앙 진출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정부의 정책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해양기후는 귀(貴)보다는 부(富)에 눈을 뜨게 하기 때문이다. 특산물이 풍부하엿기에 천리나 떨어진 한양 가는 수고로움을 더하여 굳이 벼슬을 추구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