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철학이 숨쉬는 공간     시인은 이해인 수녀, 철학자는 안병욱 박사와 김형석 박사를 위하여 만든 공간.   양구군의 빈약한 인문환경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공간이다.



풍수학인 영남대 박재락 교수의 산세론 지표분석의 항목에 의하면 백두대간 용맥이 산진처를 이룬 곳에 대한 풍수점수가 10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있다. 그것도 보국을 이루고 있다는 전제에서 5점을 주고 있으니 실제로는 5점 이하일 공산이 크다. 산세론의 지수에서 매우 낮은 점수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기보다는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역사를 보면, 중앙에서 관리가 와도 여기에 정착하지 않고 임기가 끝나면 부임지를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이주하는 유형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지방 관료로 부임하여 산천이 수려하고 인심이 후하여 머물러 사는 경우이고, 둘째는 장가를 가서 처갓집 마을에 눌러 앉아 사는 경우이며, 셋째는 유배지를 떠나지 못하고 제2의 고향을 삼는 경우이지만, 양구로 이주하여 큰 인물로 성장한 사람이 없다.

큰 인물이 없으면 풍수문화도 찾기 어렵다. 아니 양구에는 풍수문화가 없다. 숙종 때에 만들어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를 보관하고 있는 심곡사를 보면 사찰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다. 근래에 지어진 사찰이지만 좁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서 곡풍과 음기로 건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며, 사람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 힘든 곳이다. 

계곡풍을 맞는 심곡사     사찰은 산의 정기를 받아야 하므로 듬직한 산을 등지고 있어야 하는데 계곡을 등지고 있다.  산은 정신의 상징이므로 산이 끝나는 자리에 짓는 것이 원칙이나 심곡사는 능선과 능선 사이의 계곡을 뒤로하고 사찰을 배치했다. 절집이 풍수를 외면하고 지은 곳은 처음 보는 일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라면 부처님의 힘을 시험하는 것이고, 몰라서 그랬다고 해도 부처님을 불편한 자리에 모시고 있는 노릇이다. 기도도 응하기 힘들고 돈도 모이기 힘들겠다. 문화재에 매달리고 사는 꼴이다. 일부러 이렇게 지어라고 해도 힘든 배치이다.

안병욱 박사의 무덤    안병욱 박사는 양구와 연관이 없지만 지방의 빈약한 인문 스펙을 채우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사용하면서 공간을 만들어서 유치한 인물이다. 안병욱 박사(1920-2013)는 대한민국의 철학자이다. 평남용강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을 졸업했다. 지성인 잡지 <사상계> 주간으로 자유당 독재정권하에서 언론탄압을 온몸으로 견뎌냈으며 숭실대학교 교수로 철학서를 집필했다.
안병욱 박사의 자식들이 점지한 무덤이란다. 계곡을 머리 위에 두고 있는 무덤을 본 처음의 일이다. 무덤은 산의 능선에 올리거나 이어진 능선을 향해야 한다는 것이 동아시아 사상의 정설이다. 아무리 화장한 뼈를 묻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좌향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철학자로써의 위상이 한 순간에 흔들어 버리는 순간이다. 이것은 죽은 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문제이다. 여기에도 풍수는 없었다.

지나가는 고장과 머무는 고장

양구 땅은 거칠고 돌이 많아서 농산물의 수확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이다. 이런 곳은 일이 고되어도 농산물 수확이 많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는 어렵다. 사람이 살려면 생리生利가 좋아야 한다. 생리生利란 택리지에 나오는 용어로 먹거리를 말한다. 먹거리 즉, 논밭이 넓어서 농산물의 생산이 많아야 사람도 모이는 법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호기심 많은 사대부나 선비들이 금강산 구경 갈 때 지나가는 마을이었으니 하루 밤 쉬고 가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구는 지나가는 고장이지 머무는 고장이 아니었다.

양구의 산은 백두대간의 산이어서 거칠고 높다. 높은 산이나 이름난 명산에는 큰 고을이 만들어지지 않는 풍수적인 이유가 있다. 이들 산은 변전소나 고압철탑 역할을 한다. 변전소나 철탑 옆에 사람이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전봇대가 서 있을 뿐이다.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산을 과산過山이라고 한다.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과 같다. 사람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기만 하니 양구에 애정을 쏟지 않았다. 애정을 가지지 않으니 양구다운 문화가 축적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양구사람은 기운만 소진되고 허수아비 역할만 한 것이다.

금강산 가는 길_양구읍 입구     양구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비석이다. 비석의 위치가 어중간하다.양구읍으로 들어가는 길 우측에 세우는 것이 가시성을 확보하는데 훨씬 유리하다. 비석의 위치가 도로와 동떨어져서 미관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정작 보아야 할 비석의 글씨는  차를 타고가면서 보이지 않는다.




군사도시의 팻말   양구는 최전방의 군사도시이다. 군사도시는 풍수문화를 꽃 피우려고 해도 쉽지 않다. 군대는 살상을 전제로 하므로 긴장감이 돌기 때문에 문화를 꽃피우기가 힘든다. 어느 고장이건 위대한 인물을 배출하고자 한다.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고장은 그 자체로 위상이 올라간다. 인물이 바로 그 고장의 기운을 나타내기이기 때문이다.

고인돌     한강변에서 많은 신석기 유적과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도 많이 발견되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이다. 심산유곡이라서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생활했다는 흔적이 있음에도 큰 마을이 생기지 못한 것은 농업생산물이 풍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양구는 산수山水

조선시대에는 자연을 산수山水라고 했다. 산수山水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언급되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의 네 가지 요소 중의 하나이다. 현대어로는 힐링과 휴식을 위한 자연공간을 말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 주로 기거하는 곳에서 한 시간이내에 수려한 산수 즉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자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때는 도보로 다니니 한 시간 거리이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움직이니 두 시간거리로 보아도 되겠다. 양구는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이니 산수山水의 고장으로 안성맞춤이다. 넓은 호수를 끼고 높은 산 사이로 계곡이 발달하고 있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산수山水는 도시생활에서 지친 인간에게 청량감을 주고 기분을 산뜻하게 바꾸어준다. 계곡의 맑은 물은 선녀를 만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두타연은 금강산의 물이 흘러내려오는 명승지로 유명하다.

양구가 있기에 북한강이 있으며, 양구가 있기에 서울이 있는 것이다. 양구는 등뼈와 같고, 서울은 갈비뼈가 감싸고 있는 심장과 같은 곳이다. 양구는 생태고장임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2004년 멸종위기종 1급종인 여우사체가 발견된 곳이며, 산양증식복원센터가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야생동물원을 만들었다가 통일이 되면 비무장지대로 확대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질까 혼자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백두대간이 오염되면 우리나라 전역이 오염된다. 전창범 양구군수는 공장이 전무한 생태고장임을 역설하였다. 백두대간에서 강의 흐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청정지역으로 보존되는 것이 마땅하다. 백두대간이 오염될 수 있는 공장을 짓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위락시설을 지을 필요가 없다. 삼삼오오 조용히 모이고 조용히 쉬다가 가는 곳이어야 한다.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    산 위에 보이는 건물이 을지전망대이다. 가칠봉(1,049m) 능선에 설치되어 있다. 능선이 실질적인 남방한계선이다. 을지전망대 내에서는 북한지역이 그대로 펼쳐지기 때문에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있다. 북녘 땅과 우리지역이 군사적 비밀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이외에 보이는 산하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매 한가지였다. 사진을 찍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알지 못했다.

금강산 가는 길-두타연 입구     금강산 가는 길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다. 금강산 가는 길이 좁고 음침하다는 느낌이 든다.  민통선 안에 두타연 계곡이 있고 금강산 가는 길이 이 계곡을 지나간다. 군사분계선이 금강산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을지전망대의 전몰영령 진혼비     뒤편으로 검은 가림막이 쳐져있다. 북쪽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보다 북쪽에서 이곳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다. 이 지역은 남북이 가까워서 소총으로 저격할 수 있는 거리이다.

양구의 풍수를 새롭게 하라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양구가 배출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양구를 만든다. 양구라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떠오르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양구에서 세상에 꿈을 펼치는 사람이 나와야 젊은 사람들이 양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이 급선무이다.

향교     향교건물은 근래에 새로 지었다. 초석도 근래의 것인 것을 보면 원상복구라고 보기에는 좀 어렵겠다. 초석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이곳이 원래의 향교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오랫동안 향교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태종 조에 향교가 설치되었다고 하나 고을의 위세를 보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먹고 살기도 힘든 지역인데 향교에 공부하러 드나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내려오는 용맥이 매우 약하고 중심도 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커다란 계곡이 들이치고 있다. 이곳이 향교자리였다면 공부가 될 리가 없다.이 곳에도 풍수는 없다.

박수근 미술관     아무리 미술관이라지만 너무 폐쇄적인 느낌이다. 예술이란 탁 트인 느낌이라야 소통하기 좋고 장구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러한 폐쇄성이 양구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길 기대한다.



박수근 동상_박수근미술관


박수근 친필_박수근 미술관

현재의 관점에서 양구의 지형을 보면, 큰 사람이 배출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일제시대 때에는 독립운동가도 숱하게 나왔다. 현대인물로 박수근 화백이 제일 유명하다.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이해인 수녀시인, 최규옥 농림부장관, 홍창섭 강원도지사도 양구 출신이다. 이를 보면 양구가 척박하기는 하지만 몹쓸 땅은 아니다. 메마른 사막지역인 몽고에서도 칭기스칸과 같은 걸출한 세계적인 인물이 나왔듯이, 기운만 응집된다면 위대한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 





양구를 풍수적으로 분석해 보면, 산들이 모여지는 것보다 제각각 흩어지고 있어서 독불장군형이 배출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재능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화가나 시인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구군민들이 애정을 가진다면 양구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될 수 있는 땅이다. 땅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 학교를 지어서 선후배가 도와주고 이끌어주면 나라의 동량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 대도시는 많은 학교들이 노후화된 건물을 버리고 새로운 터전으로 이전하였다. 양구도 관청이나 학교를 사명산 자락으로 옮긴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미 신축 건물로 학교를 지은 후라서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양구여, 사명산 기슭에 신도시를 기획하라 그러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파로호의 절경     댐을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자연 파괴이다. 댐이 없이 자연 상태로의 계곡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단지 자연 파괴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인간의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연을 파괴(?)하면 살아왔다. 현대에 인간의 능력이 너무 커진 것이 화근이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