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된 곽재우장군의 생가   드라마세트장 같은 분위기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멀리 떨어진 형식의 배치도 생소하다. 복원은 역사적인 장소에 고증을 하여 지은 것을 말한다. 생가터에서 600m 떨어진 마을 구석에 고증도 되지 않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생가라고 한다. 생가터를 사전에 확보해 놓지도 않고 사업을 무리하게 기획하여 예산을 따놓고 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하여 예산을 확보하니 무조건 사용해야하는 절박감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이 고장의 고택구조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건물을 지어 놓고 홍의장군의 생가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에 불과하다. 경남지방 사대부의 가옥배치는 이(二)자형이다. 심산김창숙 선생 생가, 호암이병철 생가, 백산안희제 생가가 바로 二字形이다.

곽재우 장군(郭再祐, 1552~1617)은 현풍 곽씨로 현풍이 본가였지만, 외가인 의령군 유곡면 세교리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曺植 선생(1501-1572)이 강조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의義로서 행동하는 실천철학’을 배우고 익힌 그는 남명선생의 외손녀를 배우자로 맞이하였다.

곽재우 장군의 할아버지 곽지번은 부사, 아버지 곽월은 관찰사였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여 세상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던 그는 32세에 과거에 급제했으나 선조가 불손한 내용이 있다고 불합격시키자, 과거를 포기하고 의령 동쪽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기강岐江 근처 둔지遯池에 정자를 짓고 낚시질을 하면서 소일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사대부와 백성들에게 행동지침을 하달하지 않고 의주로 도망가기 바빴기에, 영남좌도 사대부들은 왕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가 의병을 일으키는 좋은 시기를 놓치고 만다. 반면에 조식선생 문하의 사람들은 백성과 나라의 안위가 위태로우므로 조정의 재가나 왕의 교지를 받기 전에 먼저 의병을 일으켰다. 이러한 신속한 실천력은 기득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조정과 알력이 생기기도 했다. 임진왜란(1592)을 당하여 열흘 만에 의병을 일으키고, 최초로 승전보를 전한 분이 곽재우 장군이었으니 침략군에게 짓밟힌 백성들에게는 희망이었다.



충의각忠義閣   곽재우 장군과 17명의 장수들의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이다. 충익사 경내에 있다. 의령읍 동동리에 있던 관찰사 이중하의 불망비각이었으나 지금은 충의각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을 살펴보면 4칸으로 명판이 건물의 중앙에 걸리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나 명판을 모시는 건물은 홀수칸이어야 건물의 중앙을 차지할 수 있어서 안정감을 준다.
충익사는 곽재우 장군을 위시한 18장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무명의병의 위패까지 모신 사당이다
곽재우 장군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던 탓에 지리에도 밝았으므로 지리적인 잇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호남으로 가려는 왜군들을 막아선 전략지로서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4월13일에서 열흘만인 4월22일에 의병을 일으켰고, 초기에는 이웃의 사대부도 호응하여 50여명의 의병을 거느렸다. 해가 바뀌기 전에 의병의 수는 2천명을 헤아렸다. 의병을 위한 비용은 곽재우장군의 사비와 양반들의 희사로 충당되었다.

충익사 기념관에 있는 곽재우 장군상 


그의 활약으로 전란이 끝난 1599년 경상좌도병마절도사(종2품)임명되지만, 그 다음해에 당쟁에 엮여 유배당한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한성부우윤에 임명되기도 하지만 병을 빙자하여 낙향하여 은둔하며 곡기를 끊고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행적에서 도인의 면모를 유추할 수 있는 곽재우 장군은 기본적으로 의義를 중요시했던 분이었다. 의병장으로써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보다는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큰 나무였다. 의령의 의로운 기운이 곽재우 장군을 통하여 실현되었던 것은 아닐까.

의로운 부자, 백산 안희제

의령관문을 통과하는 남강에는 솥바위라고 일컫기도 하는 정암鼎岩이 있다. 정암 옆 모래톱은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정암나루였다. 정암에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20리 안에서 나라의 큰 부자가 배출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삼성, LG, 효성이라는 대기업의 회장이 이곳에서 8km 이내에 살았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의령출신이고, ,LG 구회장은 진주지수면출신, 효성 조회장은 함안 출신이지만, 정암이 행정구역의 경계에 있었던 탓에 정암의 기운을 골고루 받았던 것이다. 정암의 예언은 사실처럼 여겨지지만, 그 근거나 당위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신비로운 기운을 인정하고 우리의 정서를 형성하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백산 안희제 생가   전형적으로 마을은 초승달 모양의 지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지형은 정곡면 중교리(이병철)나, 유곡면 세간리(곽재우)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생가는 마을에서도 기운이 머무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백산 안희제 생가의 문창살    문은 소목이 만든다. 빗살무늬의 문창살은 소목 중에서도 최고급 기술자의 손길이다. 이런 문을 만들어 달수 있다는 것은 안목이 남다르고 최고를 지향하는 기질을 지니고 있다. 의령 부농의 능력과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의령의 선구자적인 부자가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출신의 백산 안희제(1885-1943)이다.

삼성 이병철회장보다 25세 많았으므로 구한말의 힘없이 망해가는 나라를 목격하였다. 그는 “망해가는 나라에서 고서古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자와 맹자의 도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찍이 상경하여 신학문을 배웠고, 만주와 모스크바를 경유하면서 세계정세를 파악하였다.

한일합방을 겪은 후에는 1914년 부산 중앙동에 백산상회로 돈을 벌면서, 전국적인 지점망의 조직을 이용하여 독립운동의 전파와 독립자금전달에 힘썼다. 1920년대에는 언론에 관심을 가져 중외일보 사장겸 편집자로 활동하면서 항일언론투쟁을 지원하였다.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단군신앙인 대종교에 입회(1931)하여 헤이룽장성에 발해농장을 만들어 조선인이 정착하는 교두보를 만들고 발해보통학교장이 되어서 조선인을 조선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하였다. 이러한 행적으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안희제 선생 신도비   안희재 선생 생가가 있는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 어귀에 신도비가 서 있다. 비각 안에는 곽재우 장군의 휘하에서 전공을 올린 임진왜란 공신 안기종 유허비가 서 있고, 비각 좌측이 안희재 선생의 신도비이다. 신도비 뒤 봉우리에 안희제 선생의 묘가 있다.

일제시대에는 신흥종교·호국종교를 통하여 독립운동을 하곤 했다. 사대부니 지식인층은 대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백성들은 동학 즉 천도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단에 내는 기부금이나 교부금이 독립운동자금으로 전해지는 통로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 종교가 독립운동자금을 갹출하고 전달하는 국내창구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교인들은 모두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1942년 대종교 지도자들을 검거하여 대종교의 은밀한 독립운동 지원을 차단하려고 획책했다. 이 때 백산 안희재 선생도 체포되어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3년 돌아가셨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기가 가진 부와 기득권을 노블레스 오블리쥬라는 서양의 개념을 말하기 전에, 우리말로 충절과 절의를 다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부와 기득권을 포기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헌신짝처럼 희생한 분들이 많다. 그 예가 백산 안희제(탐진안씨), 석주 이상룡(고성이씨), 우당 이회영(경주이씨) 등이다.

부자가 되어서 백성들과 더불어 먹고살게 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독립운동이 시급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의령의 의로운 기운과 부자가 되는 기운 모두 받아들인 호인豪人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고향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난 호암 이병철(1910-1987) 회장은 단군 이래 최대의 부를 이룩한 분이다. 호암자전을 보면 성장기에는 나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 대한 생각으로 꽉 찬 사람이었다. 자신의 내공을 탄탄하게 만드는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린 것 같다. 그것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독립운동에 관심을 두었더라면 지금의 삼성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건너편 동산에서 본 이병철 생가    사진 중앙, 산기슭에 푸른 대나무 숲 아래의 기와집이 이병철 생가이다. 비교적 오목하게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고 뒷산의 꼬리가 마을안쪽으로 오므리고 있는 것이 기운이 모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홍수로 마을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물길을 바꾸는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부자의 업적은 시기적 시대적 인연에 따른 역할로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와 밥벌이를 해결해 주었다는 점이 제일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부자로써 강력하게 이름을 남긴 사람은 많지 않다. 큰 부자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아쉽게도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분이나 학문을 대성한 분과 비교하여 명성이 오래 전해지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귀貴의 기운으로 대표되는 정신적 유산은 멀리가지만, 물질적인 부富의 기운은 영속성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으로 해방 전에 돌아가신 안희제 선생과는 달리, 이병철 회장은 1938년 대구에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1942년에 조선양조로 부의 토대를 만들어 간다. 해방이 되자 그는 사업보국이라는 기치를 내건다. 그는 대한민국의 혼란기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부를 일구어내는 천부적인 소질을 드러낸다. 이병철 회장의 판단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는 대한민국 성장 동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은 굴지의 세계적 기업이고, 삼성이 이룬 부의 크기는 천문학적 숫자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선박의 엔진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뒷동산에 올라서서 본 이병철 생가    보수공사 중이어서 사랑채에는 가림막이 쳐져있다. 주변 가옥들과 집의 방향이 다르다. 집안에 들어가지 못해 단정할 수 없으나, 먼저 안산을 정하고 동서사택법에 의거하여 건물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안산을 정하고, 기운이 모이는 자리를 찾아서 가옥을 배치하는 것이 풍수사의 실력이다. 집은 정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