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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周濂溪와 周濂溪의 思想 김재삼 2012-03-04 7853  
     
  <출처 : 서울동인학회 제2권, 2012년>

周濂溪와 周濂溪의 思想

김 재 삼

Ⅰ. 序論

陰陽五行의 思想은 東洋哲學에서 중요한 思想중의 하나이다. 이 陰陽五行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이가 바로 濂溪다.

孔孟, 易傳, 中庸과 같은 傳統儒學 思想들이 天人合一的 세계관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듯이 濂溪의 사상 역시 이러한 세계관에 기초하여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孔孟의 天, 天命이 濂溪에게 있어서는 곧 太極인 것이며, 孔孟이 天, 天命에 의해 확보된 선한 本性을 이야기 하고 있고 이 선한 본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수양을 통해 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그들의 人性修養論은 濂溪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 주희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周濂溪의 학설은 性理學의 대전제인 性卽理의 발원체로써 老莊 思想에서 비롯된 無義 개념으로 우주론의 근본을 삼고, 인간 본질에 대한 佛家的 믿음을 儒家의 현실적 수양론으로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하다. 그는 太極圖說을 통해 자신의 思想 구조 전체를 밝히고 통서에서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렇듯 주희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性理學의 發源이 되었고 조선의 성학십도에서 보듯이 퇴계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風水를 비롯하여 易學에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이룬 陰陽五行論의 宗主로서의 주렴계의 사상과 생애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Ⅱ. 本論

1. 周濂溪 思想 형성의 시대적 배경

周濂溪가 살았던 시대 특히 成人 時期는 북송시대의 전성기로 알려지는 인종조의 후반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당시의 명신 范仲淹 歐陽修 등에 의해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는 정치 이론과 비판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학풍이 생겨남으로써 이른바 宋學이라는 학문적 토대와 경향성이 마련된 중국 근세 초기의 문예 부흥기였다. 이 시기에 새로운 儒學이 태동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를 역사적 정황을 통해 살펴보자면 우선 송대는 위정자들이 학문과 학자에 대한 존엄을 세워주었다. 송태조는 그 자신이 무인이었지만 문을 숭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우 및 아들로 하여금 學者에 대한 尊敬心을 잃지 않을 것을 맹세하게 하는 한편 이를 가법으로 삼아 대대로 지킬 것을 유명하였다.

이러한 爲政者로부터의 學問的 保藏이 있었기에 학자들은 소신있는 學問追求와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식인으로서 커다란 책임감을 스스로 견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송대 지식인들의 마음 상태는 이전의 다른 朝代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또한 잦은 침입으로 왕조가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것을 目睹하면서 이들은 우려의 뜻을 가졌고 이러한 憂患意識은 앞서의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적극적 현실 참여의 자세를 견지하게 했던 것이다. 즉 이 시대 학자들의 기본적 사고는 도피해 은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또한 老子와 莊子에서 비롯된 道家思想은 다분히 자연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道家의 이런 성격은 한대에 이르러 우주 생성론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고 위진시대에는 불교와 접촉을 통하여 性命을 논하는 玄淡思想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한편 후한 명제 때에 서역으로부터 중국에 들어온 佛敎는 초기 道家와의 의존관계를 통하여 중국에 정착하였으며 위진시대를 거치는 동안 세도인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이른바 중국화한 佛敎인 대승의 천대 華嚴思想과 선종으로 전개 되었다.

이와 같은 외부적 요인과 사상적인 상황이 周濂溪로 하여금 새로운 思想을 펴게끔 하는 요인이 되었다.

2. 周濂溪의 생애

주돈이는 자는 茂叔. 호는 濂溪. 道州(湖南省 道營縣) 출생으로 지방관으로서 각지에서 공적을 세운 후 만년에는 廬山 기슭의 濂溪書堂에 은퇴하였기 때문에 문인들이 염계선생이라 불렀다. 북송의 司馬光·王安石과 동시대의 인물이다.

원래 본명은 敦實이라고 하였으나 그 때의 황제 영종과 동명이었으므로 고쳐서 돈이라고 하였다. 부친인 輔成은 賀州 桂嶺縣 (현재의 黃西省에 속함)의 知事를 하고 있었다. 모친은 鄭氏이다. 염계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모친의 일가인 龍圖閣, 大學士, 鄭向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1036년에 그는 젊은 나이로 洪州 分寧縣의 主簿가 되었으며, 이어서 南安에 司法官으로 부임하였다. 그 후 주로 각 顯의 지사를 역임하여 知南康軍을 최후로 57세에 他界했다.

그는 道家思想의 영향을 받고 새로운 儒敎이론을 창시하였다. 즉, 우주의 근원인 太極 (無極)으로부터 만물이 생성하는 과정을 圖解하여 ‘太極圖’를 그리고 太極→陰陽의 二氣→五行 (金· 木· 水 ·火· 土의 五元素)→남녀→만물의 순서로 세계가 구성되었다고 논하고, 인간만이 가장 우수한 존재이기 때문에, 中正 仁義의 도를 지키고 마음을 성실하게 하여 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는 본래 하나라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저서에는 <太極圖說> <通書>가 있으며, 수필 <愛蓮說>에는 그의 고아한 인품이 표현되었다. 남송의 朱子는 염계가 程顥·程頤 형제를 가르쳤기 때문에 道學 :宋代의 新儒敎의 개조라고 칭하였다.

3. 太極圖說

주돈이의 太極圖說은 송 나라 초기 道師 陳摶의 無極圖에서 힌트를 얻어 그렸다. 주돈이가 이를 그리기 훨씬 전에 이미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비법의 도표로서 수많은 신비한 도식을 그려냈다. 주돈이는 그 도식 가운데 하나를 입수하게 되어 그것을 재해석하고 우주창조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이 고안한 도식으로 수정했다고 한다. 혹은 주돈이가周易 繫辭편에 있는 어떤 구절에서 찾아낸 思想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그 思想을 설명할 목적으로 도교의 도표를 이용하였다고도 한다.

太極圖說의 중요한 思想은 無極이 太極이라는 것이다. 이는 太極이 움직여 陽을 낳고,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靜하여지고, 고요하면 陰을 낳는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움직임으로 되돌아간다. 한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니 곧 음과 양이 성립하게 된다.

음과 양 두 氣의 변화와 오묘한 결합으로 곧 火ㆍ水ㆍ木ㆍ金ㆍ土가 생겨난다. 이 오행의 순조로운 분포로 春夏秋冬의 운행이 지속된다. 그러니 오행이 하나의 음과 양이요. 음과 양은 하나의 太極인 것이며, 太極은 본래 무한한 존재로서의 無極이다.

오행이 생기면 각 火ㆍ水ㆍ木ㆍ金ㆍ土가 각기 그 고유한 性을 가진다. 無極의 참다운 성품과 陰陽五行의 精髓가 오묘하게 합하면 결과물이 맺어지는데, 乾의 도리는 남성적인 것을 이루고 坤의 도리는 여성적인 것을 이루어, 만물의 생성ㆍ변화ㆍ무궁함이 나타나게 된다.

宇宙萬象 가운데서 오로지 사람만이 가장 빼어난 기를 얻어 神靈한 존재이다. 사람은 그 보이는 형체로서의 육신이 나면 신령한 몸도 동시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행의 性이 감동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고 이로부터 인간만사의 善惡은 나타나게 된다.

聖人은 사람으로 하여금 편협함에 빠져 中正을 잃지 않고 사욕에 가려 仁義를 버리지 않도록 중정과 인의의 기준을 정하여 主靜的인 가운데 사람이 나아갈 윤리의 최고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성인의 德은 天地와 합치되고 해와 달의 밝음과 합치되며 사계절의 순서와 합치되고 귀신의 吉凶과 합치된다. 君子는 그 덕을 닦아 길하고 소인은 이를 거스르기에 흉한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우는 것을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우는 것을 부드러움과 굳셈이라 하며, 사람이 나아가야 길을 仁과 義라고 한다.

이러한 우주관 아래에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한 것이다. 중국 思想의 영향력에 비하면, 太極圖說의 내용은 의외로 짧은 것이다. 그렇지만 朱子의 性理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4. 通書의 主靜無欲

周濂溪의 思想이 우주의 근원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또 하나의 주요저작인 通書에서는 사람은 聖人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그는 사람은 靜하여야 된다고 하였다. 그는 靜을 無慾이라고 해석하였는데, 이는 道家思想과 佛學思想에서의 無爲나 無心이라는 의미와 같이 쓰인 것이다. 그래서 周濂溪는, ‘욕심이 없으면 곧 마음이 텅 비듯 조용하게 되고, 옳은 일을 망설임 없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마음을 고요하게 텅 비우면 곧 지혜가 밝게 빛나니, 옳은 일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곧 공정한 것이 되는데, 공정하면 그 감화는 넓게 확산된다. 밝은 지혜로 그 공정함이 넓게 통하면 가히 성인에 가깝다 할 것이다.’ 하고 하였다.

인간이 항시 추구해야 할 덕목으로 誠을 제시한다. 그것은 仁ㆍ義ㆍ禮ㆍ智ㆍ信의 이른바 五常의 근본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므로 오상 즉, 그 선한 마음이 발동하는 상태는 어떠한 이기적인 욕심도 없는 것이고, 그것이 周濂溪가 말한 靜虛의 상태이며, 이 때에 나올 수 있는 망설임 없는 행동이 즉 動直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항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마음가짐이요, 실천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의 목적은 爲己之學, 즉 자기를 위한 학문인 것이다.

5. 周濂溪의 우주와 인간 思想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존재자들 가운데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이상적인 인간으로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인간 누구나가 갖는 의문이면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철학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周濂溪는 宇宙의 구조를 밝혀 그것을 통해 人間의 本性을 탐구하는 性理學의 문을 열었다. 그의 宇宙論에서 우주의 본질은 끊임없는 생성과 변화로 스스로를 형성하는 誠實性이다. 인간 역시 그 誠實性으로 태어나 우주의 근원을 나누어 받은 존재로 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超越的이면서도 內在的인 本質과 同一하다. 이렇게 다양의 세계는 일자의 세계 속에 포섭됨으로써 다양과 일자는 통일된다. 여기에서 다양성은 單一性에로 回歸하면서도 완전히 침몰되어 消滅하는 것이 아니며 환상적 존재로서가 아닌 각각의 특성을 가진 현실로써 실재하게 되는 초월과 내재의 조화를 이룬다.

周濂溪가 탐구한 인간의 본성은 맹자의 聖善思想에서 후대 性理學에서 등장하는 本然之性과 氣質之性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우주의 순수하고 지극히 善한 성실성을 내재한 인간의 본성은 善하다. 그러나 周濂溪는 인간 본성의 근본이 하나라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평범한 사람과 성인에 이르는 인간성 완성의 단계도 구분하였다. 또한 선한 본성을 잃으면 악이 될 수 있음을 거미를 사용해 언급하고 강유와 선악 그리고 중의 다섯 가지 성품을 가지고 기질의 무한한 다양성을 말했다. 이러한 周濂溪의 性論은 맹자의 성선설과는 새로운 개념으로 본질과 현존이라는 인간 존재의 이중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현실적인 인간 이해에 기초한 인간의 지향점을 밝힌 것이라 하겠다.

또한 우주의 이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이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에 뿌리를 둔 形而上學의 追求는 주역이나 중요의 天人合一的 전통에서 비롯된다. 성인과 하늘을 하나로 통일시키고 천지의 생성을 곧바로 사랑과 인의로 규정한 것은 인간성과 우주의 본성을 일원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우주화 되고 우주는 인간화 된다. 그의 철학은 인간을 형이상학적 본체로 접근시키고 도덕을 인간 생활의 본질로 여긴 도덕적 형이상학의 완성이다.

太極圖說의 우주는 초월적 무한자(無極)에서 형성된다. 무한자는 고요함(靜)과 움직임(動) 이라는 율동성으로 陰과 陽을 낳고 陰陽의 화합과 변화로 우주 만물이 생겨난다. 이렇게 무한자가 만물을 생성하는 이치가 太極이다. 그러나 둘은 다른 것이 아니어서 周濂溪는 우주의 본체를 ‘無極이면서 太極(無極而太極)’이라고 상정한다. 太極은 세계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리들을 총괄하는 최고의 이치(理)이며 사물세계를 떠난 초월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현상 세계에 내재하고 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은 이 太極을 품수 받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작은 太極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상호적인 원리가 상호 동일하며 또 이것은 하나로 통일될 수가 있다. 결국 一者는 多樣으로 구체화 되고 多樣의 세계는 一者의 세계속에 포섭됨으로써 다양과 일자를 종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宇宙와 人間은 하나(天人合一)이다.

6. 퇴계의 성학십도의 太極도

 퇴계 이황은 경연에 입시 하였을 때에,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학의 대강을 강의하고 심법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性理學자들의 도설에서 골라 책을 엮고, 각 그림 아래에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여 왕에게 강론한 자료가 聖學十圖 이다. 그중 태극도는 가장 먼저 언급된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1). 위의 無極太極圖

○ 此 所謂無極而太極也. 卽陰陽而指其本體不雜乎陰陽而爲言耳. - ○ 이것이 이른 바 無極이면서 太極이다. 음양에 즉하여 그 본체가 음양과 섞이지 아니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2). 둘째 陰靜陽動圖

此○之動而陽 靜而陰也 中○者 基本體也. 者之根也. 者之根也 - ⊙ 이것은 ○이 動하여 陽이 되고 靜하여 陰이 되는 것이다. 맨 속에 있는 ○은 그 본체요,  (右一陽) 은 (左二陽)의 뿌리요. (左一陰)은 (右二陰)의 뿌리이다. 

 3). 가운데 五行圖

此 陽變陰合而 生 水火木金土也 -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화목금토를 생하는 것이다.  ○ 此無極二五所以妙合而 無間也. - 이것은 無極陰陽五行이 합하여 틈새없이 되는 소이이다.

 4). 乾道成男 坤道成女圖

○乾男坤女以 氣化者言也 各一其性而 男女一太極也 - ○<건의 도가 남이 되고 곤의 도가 여가 된다 함은 氣化한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가짐으로 남녀가 각각 하나의 太極을 가진다.

 5). 萬物化生圖

○萬物化生以 形化者 言也 各一其性而 萬物一太極也 -○<만물이 화생한다 함은 형화(形化)한 것으로써 말하는 것이니 각각 하나의 太極을 가진다.

 Ⅲ. 結論

풍수와 역학은 물론 우리나라 태극기의 모태가 될 정도의 지대한 영향을 준 陰陽五行론의 思想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그 뿌리를 좇아가 보면 이미 주역계사전에 언급되기도 하지만 역시 周濂溪의 太極圖說에서 음양의 思想을 확실히 설명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중기에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중심이 되신 퇴계선생의 충심어린 마음에서 집필된 성학십도중에서 가장 첫째 그림이 바로 太極圖說에 연유된 것처럼 우리나라 性理學의 주체가 된 朱子의 思想에 제일 먼저 영향을 끼친 분이 바로 濂溪였다.

周濂溪에 의하면 인간은 배움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발적으로 자기를 형성할 수 있는 능동적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다. 여기에서 자기 형성은 소비재의 소유로써 생의 즐거움을 가늠하고자 하는 경쟁심의 충족이 아니라 우주와 동일한 자기 존재의 위치를 깨닫는 충족감이다. 이러한 그의 思想은 인간 개개인의 정신적 解脫과 인류 문명의 진정인 進步를 위해서는 多樣性의 인정을 바탕으로 對立과 葛藤을 解消하고 統合과 調和로써 인류 보편의 價値를 세우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 참고 문헌

윤혜준, <周濂溪에서의 우주와 도덕의 문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2005

방현주, <렴계 수양론의 이론 근거와 그 전개>, 건국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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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경역, <중국철학사>, 일지사, 2001

 
     
 
손인천
[2012-03-17]
고전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김규순
[2012-03-20]
유학의 정립과 함께 풍수학의 정립이 진행됩니다. 풍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학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우 유익한 내용 잘보고 갑니다.
이승노
[2013-03-02]
선생님 잘 보고 갑니다....좋은 글 인용해서 잘 써 볼께요...감사합니다....이승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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