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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고전에서 풍기는 풍수의 향기 <한국고전번역원> 김규순 2016-03-04 2877  
     
  <한국고전번역원>의 고전칼럼
아흔두번째 이야기에 투고된 내용
http://www.itkc.or.kr/itkc/post/PostServiceDetail.jsp?menuId=M0491&clonId=POST0019&postUuid=uui-0b9bed07-06b5-4402-b7ff-83b5


고전과 풍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리학은 통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시작된 분야였다.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은 영역이 있어야 하고 그 영역을 지배한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어떤 영역에 대한 지배는 그곳에 대한 지리적 상황을 알아야 한다. 지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특산물, 인구수, 면적, 지리적 특성, 거주자의 성향까지 포함한다. 그것이 지리학을 발달하게 만든 요인인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있어서 지리학의 발달은 식민지 점령과 함께 약탈 및 착취에 활용하기 위한 기초 조사에 기인한다. 제국주의 지리학은 최고 통치자의 엄청난 ‘싱크탱크’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러시아, 일본을 위시한 미국의 지리학은 질적 양적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리나라의 지리학자 수가 200여 명 남짓하다면, 러시아는 일개 대학의 지리학자 수만 해도 70여 명에 달한다. 영국의 경우에는 왕립지리학회가 있다. 즉, 지리학을 나라가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지리학은 자기 나라 국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지향한다. 세계를 알아야 강국이 되는 것이다.


 
지리학이 동양에서는 색다르게 발전을 한다. 땅을 점령지로만 관찰하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로 인식하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시스템의 한 요소로 인식했다. 즉, 삶의 밑바탕에 땅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서양적 관점과는 달리 우리 생활 깊숙하게 연관 지어져 우리에게 정기를 부여하는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 잡았으며, 인간의 영속성에 빠지지 않는 후원자가 되었고, 길흉화복을 결정짓는 하나의 기제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고로 동양의 지리학은 물리적이고 관찰적인 것을 넘어서 정신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동양철학이 지리학에 스며들어 지리학적인 원리와 관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풍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철학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지 않으면 그 깊이를 알기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지리학은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광범위하게 풍수지리학이 활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서삼경에 그 원리가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노장사상이 그 기틀을 이루고 있다. 『서경』의 「우서 요전(虞書 堯典)」을 보면, 동서남북 지역에 따라 의미를 부여했고, 방향과 함께 사계(四季)를 연결시키고 있다. 사계란 길흉화복을 포함하므로 자연스럽게 땅에도 길흉화복의 의미를 부여한다. 선사시대에 사람들은 하늘을 경외시했다. 하늘은 넓고 높고 크고 변화무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하늘은 늘 어떤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사람은 땅에 정성을 쏟았다.
  청동기 시대에는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저수지도 만들고, 홍수를 대비하여 제방을 만들고 물길도 트고 땅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지리학이 발전하였다고 본다. 동아시아의 지리학을 풍수지리라고 한다.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땅, 오래도록 자손 대대로 살 수 있는 땅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지진과 산사태와 싱크홀, 홍수, 가뭄 등으로 땅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지 않고, 기쁨과 행복을 주는 안정된 땅을 원했다.

  하늘도 영원하고 땅도 영원한데, 그 가운데 인간도 영원함을 추구한 방법론이 풍수였다. 인간이 영원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손이 만대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일본에서 풍수지리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흔들리는 땅으로 말미암아 땅에 대한 신뢰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경』의 「주서 낙고(周書 洛誥)」에서는 ‘유자래상택(孺子來相宅)’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상택(相宅)이 지금 가옥을 살피는 가상(家相)과 같은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상택의 자세한 술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수상(手相) 관상(觀相)처럼 가옥과 집터를 보아 길흉을 살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에서는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라고 하여 사람이나 자연이나 그 형상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산이 유순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도 유순하다고 연결 짓는 이유이다.

  『주역』 「계사전」을 보면 ‘하늘에서는 상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을 이루는데 여기서 변화가 나타난다[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라고 했다. 변화는 바로 길흉이다. 그러니 땅의 형상에 따라 길흉이 생긴다는 것으로 결부된 것이다. 또한 ‘위로는 우러러 천문을 보고 아래로 구부려 지리를 살핀다. 그러므로 은미한 것과 드러난 것의 근원을 안다[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之故]’라고 하였으니 그 누가 풍수지리로부터 자유롭겠는가.

 
그 후 『맹자』에서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하여 하늘의 계절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땅의 이로움이 인간에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땅이 우리에게 만물을 생산해 주기에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늘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였지만 땅은 우리가 성장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하늘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발달을 거쳐 지리학은 세밀하게 발전을 한다.
  제자백가시기에 제나라 직하학파(稷下學派)의 영향으로 추연(鄒衍)에 의해 음양오행설이 집대성된다. 이로써 지리학은 엄청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다. 만물을 음양오행으로 분류하여 그 작용을 설명하고 있어서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분석 방법에 매혹되기도 한다.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 왕족 유안이 저술한 『회남자』는 노장사상을 중심으로 여러 사상을 통합하려 했는데, 특히 ‘지형훈’ 편에서 땅과 인간의 관계를 음양오행의 원리를 결부시켜 유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양의 지리학 서적인 『산해경』은 일반적인 지리서로 볼 수 있다. 『산해경』은 선진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편저자는 곽박(郭璞, 276~324)으로 보고 있는데, 그는 도교술사이면서 풍수사로서 많은 저술활동을 했다. 그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지리서도 저술했는데 그것이 『금낭경』이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지리학이 거시적인 면에서 미시적인 부분으로 발전한 터닝포인트였으며, 지리학이 풍수지리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저술은 풍수사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책이다. 이후부터 땅을 보는 상지법(相地法)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홍용구
[2016-05-19]
아! 풍수에 대한 개괄로는 가장 넓고 깊고 평이한 문장으로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황영심
[2016-05-19]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시지요?
안서영
[2016-05-19]
글 잘쓰십니다
한영자
[2016-05-19]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꾸벅... )
윤광철
[2016-05-19]
잘 읽었읍니다.
김윤희
[2016-05-19]
감사합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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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센 바람도 오전 내내 불지 않고, 소나기도 하루 종일 내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