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문화예술산책’ <5>

풍수지리는 미신이 아니다. 한류 문화에 전 세계가 호응하는 지금 우리의 풍수 지리학은 대한민국 전통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땅을 보는 관점이 서구화돼 무차별적인 개발로 자본주의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우리의 풍수는 이런 데 야합하지 않고 우리의 방식대로 땅을 보되, 하늘과 사람에게 조화로운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풍수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치부한다면 당신은 우리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별다른 근거 없이 부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활어는 회를 쳐서 먹고, 갓 죽은 싱싱한 생선은 구이로 먹고, 죽은 지 며칠 된 생선은 찌개로 요리해서 먹는다. 재료의 상태에 따라 적당한 요리 방법이 있듯이 땅도 기운과 성정에 따라 알맞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기운이 강해 충돌이 일어나는 자리에는 그런 기운을 누르고 다스리는 사찰 등의 종교시설이, 기운이 넘치는 땅에는 학교나 관청이, 기운이 온화한 곳에는 거주지가 들어서면 적당하다. 기운이 없는 땅은 전시장·공연장·체육관 혹은 공원이 제격이라고 김규순 서울 풍수 아카데미 원장은 전한다.

풍수의 핵심은 땅의 기운을 감지해내는 일이다. 풍수 지리학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전했다. 귀신의 학문이거나 도사의 학문으로 남아 있었다면 풍수 지리학이 3000년 동안이나 건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직관과 경험으로 쌓인 지식이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오행을 사상적 틀로 만든 것은 은나라 때의 일이라는 사실이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밝혀졌다. 단군신화를 보면, “환웅이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하느님인 환인이 아들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 지상 세계를 살펴보니 태백산 지역이 인간들에게 큰 도움을 줄 땅이었다.”고 우리나라 풍수의 생명론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삼국유사에는 “석탈해는 지팡이를 짚고 노비 두 명을 데리고 토함산 위로 올라가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곳에 이레 동안 머물면서 성안의 살만한 곳을 찾아보니 초승달 모양의 봉우리가 하나 있어 오래도록 살 만했다. 그래서 내려가 살펴보니 바로 호공의 집이었다. 그는 곧 계책을 써서 몰래 그 옆에다 숫돌과 숯을 묻고 다음날 이른 아침 그 집에 가서 말했다. ‘여기는 우리 조상이 대대로 살던 집이요.’”라며 탈해왕이 풍수에 밝은 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신라 최고의 천재 최치원도 사산비명의 하나인 ‘신신라국 초월산 대숭복사 비명’에서 ‘이 땅은 위세가 취두산(鷲頭山)보다 낮고 지덕은 용의 귀 형국처럼 높으므로 절을 짓는 것보다 왕릉을 마련함이 마땅할 것’이라며 풍수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렇듯 한민족에게는 우리 고유 풍수라는 DNA 유전자가 삶의 원형질로서 전해지고 있다. 민족사가인 단재 신채호는 풍수를 이유로 서경으로 천도하려는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1천 년 내의 제1대 사건’이라고 하여, 민족 자주성의 표현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유야 어떻든 조선 시대에는 풍수 지리학이 유교와 찰떡궁합을 이뤄 한양천도에서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풍수가 사료에 도배돼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풍수는 우리의 생존문제와 직결되는 지혜이기에 선지자들이 대중을 위해 길흉화복과 연결해 잊지 말도록 가다듬고 정리해서 전해준 학문이라고 김규순 원장은 말한다. 지금도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같은 동네라도 어떤 집에서는 자다가 횡사하는 일이 생긴다. 이것을 운으로만 돌릴 것인가. 이런 불운을 과학적으로 피하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풍수 지리학이다. 물론 지금의 풍수에는 사기성도 있다. 하지만 쌀에 돌이 섞였다고 쌀을 모조리 버릴 수는 없다. 돌을 골라내는 기술만 있으면 된다. 풍수지리야말로 웰빙이고 웰다잉인 셈이다.

풍수가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땅의 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탐욕이나 이로움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천지인 가운데 사람이 중심이지만, 자연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혈 하나에 한사람이나 한집안이 사는 것도 우리나라라는 큰 입장에서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풍수는 땅 밑에만 기가 흐르는 것이 아니다. 강에도 바다에도 땅 위에도 하늘에도 바람에도 기와 운은 흐른다. 도선국사처럼 비보 사탑을 통해 온 국토를 편안하게 만들어 우리가 모두 살기 좋게 하고 싶다는 관점에서 풍수에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석탈해처럼 땅이나 보러 다니며 부귀영화를 탐하는 일화는 그런 측면에서 되먹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우리를 낳아준 대지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하늘공부’ 시리즈의 저자 현일 박재봉 선생의 견해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대지야 관심 없을 수 있지만, 땅에서 난 우리 인간들에게 복이 되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 땅을 섬기고 감사해 하는 인간으로서 풍수가 김규순 원장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 김규순 서울풍수아카데미(www.locationart.co.kr) 원장은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동방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헌 이준기, 정암 김종철, 김대중 선생 등에게 풍수를 사사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풍수컨설팅을 주로 했다. 지난 2월에는 풍수전문가 초청포럼을 조직하고 진행했다. 번역서 ‘청오경금낭경’(서울동인학회·2011)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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