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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Seoul-sketch] 환구단에 남은 황궁우의 처연함 김규순 2014-08-06 2389  
     
 

서울스케치 <월간서울시티 2014년08월>

환구단에 남은 황궁우의 처연함

 

글 사진 | 김 규 순 (저널리스트)

 

환구단(사적 제157호)은 한글표기이고 원구단圓丘壇은 한자표기방식이다. 환구단이란 제천의식을 행하던 환구단과 태조고황제의 신위를 보관하던 황궁우皇穹宇로 이루어져 있다. 환구단은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1897년)하면서 천자로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제단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조선총독부는 일본에서 오는 귀빈들은 맞이하고자 환구단을 철거하고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신축(1913년)하였다.

1899년 세워진 3층 팔각정의 황궁우는 태조고황제의 신위를 모시던 곳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환구단의 정문은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어(2007년8월, 강북구 우이동) 제자리에 복원되었다(2009년12월). 경내에 용이 정교하게 새겨진 석고도 남아 있어서 조선 말기의 석물제작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 제대로 인식되지도 않았던 대한제국의 잔존물이 환구단이다. 대한제국은 새 시대의 터닝 포인트이고자 했으나 역사에서조차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역사학자들 중에서는 고종황제의 등극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하기 위해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사전 계략이었다는 주장도 한다. 환구단의 동편에는 롯데호텔, 남쪽에는 조선호텔이 서편 프레지던트 호텔과 서울센터빌딩이 병풍처럼 가리고 있어서 외부에서는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다. 다만 서울시청 광장 옆에 환구단 정문이 서 있어서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 있다. 환구단 터가 조선호텔 부지로 사유화 되어있어서, 환구단 정문에서 황궁우를 가는 길목에 인공폭포가 버티고 서 있다. 조선호텔 측의 배려(?)로 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관람할 수 있다.

환구단의 자리는 애초에 청나라 사신이 머물던 남별궁 자리였다. 숙소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 제천단을 만들었고, 조선총독부는 다시 호텔을 지었던 것이다. 덕수궁에서 2-3분 거리에 있어서 황제의 거처와 가깝다는 입지적 이유로 이 터가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천의식은 산이 출중한 곳이어야 한다. 환구단의 주산이 남산이 제천의식을 받아들이기에는 미약한 점이 있다는 것은 풍수를 모르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다. 환구단 터가 탄탄하기는 하지만, 환구단 뒤편 즉 남산과 연결되는 부분이 환구단의 자리보다 낮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나태함이 드러나는 까닭에 제천의식을 거행하는 제단으로서 커다란 결함이다. 어쨌든 망하는 나라의 결정이었으니 오죽했겠냐는 한탄이 나온다.

여기서 삼성그룹의 대단한 안목과 전략이 눈에 들어온다. 박정희 정권은 국유지인 장충단 공원과 환구단의 철도호텔을 삼성에게 매각하였고, 삼성은 신라호텔과 조선호텔을 지어서 경영하게 된다. 정부의 문화재 보존과 복원 노력에 대해서는 한심한 평가가 내려지겠지만, 삼성그룹의 뛰어난 비즈니스 전략에 따른 입지선정 능력과 추진력이 돋보인다.[q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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