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과산 2013년 10월호 <김규순의 산이 있는 사람이야기>

창녕 화왕산과 영축산의 역사적 향기_
창녕조씨, 영산신씨, 창녕성씨

영취산인가 영축산인가  가까이는 영취산의 암릉, 멀리는 운무 속에 영산읍 들판이 보인다. 영취산은 원래 독수리 ‘취’라고 발음하지만 불교에서는 ‘축’으로 읽는다. 석가모니가 인도에서 법화경을 설파했던 곳이 ‘영축산’인데 기인하여 영취산을 ‘영축산’으로 발음한다. 일례로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가 있으며 영산신씨의 재실도 축산재鷲山齋로 읽고 있다.

창녕의 동쪽을 아름답게 수놓는 산은 천왕산(618.2m), 열왕산(662.5m), 관룡산, 화왕산(755.8m), 영취산(681.3m)이다. 이 능선은 낙동정맥에서 이어져 나온 비슬지맥의 천왕산에서 분기한 열왕지맥이다. 창녕의 서편은 낮은 구릉과 평지로 펼쳐져 있고 그 끝에는 낙동강이 감싸 돌고 있다. 편안하고 정겨운 고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습지가 발달한 곳 중에서 창녕군의 우포가 역사와 크기를 따져볼 때 최고이다. 우포는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 수렵채취 생활의 기틀을 제공하는 생태지역이다. 창녕에서 고인돌과 대단위 고분군이 발견된 것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절했음을 말하고 있다.

글 사진 |  김 규 순 (서울동인학회 원장. www.locationart.co.kr)

창녕조씨 득성비와 용지龍池  사진 중앙에 바위가 모여 있는 것이 득성비이고 아래 노란 표지의 안쪽이 용지이다.  창녕조씨득성비는 조계룡의 후손인 조시영이가 세움. 2005년 용지를 발굴한바 장검 하나와 호랑이 뼈가 출토됨. 용지龍池는 임금과 같은 왕족을 의미한다. 조계룡의 무덤이 경주부근 기계면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왕족의 씨를 타고났다는 증거이다. 아비 없이 태어난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다 함은 왕족에 준하는 지위를 얻었음인데, 이는 공식적으로 아비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음성적으로는 아비가 왕족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화왕산의 억새와 억새축제  우측 봉우리가 화왕산 정상. 화왕산이란 이름이 신라시대부터 불린 것이라면 창녕 화왕산의 억세태우기 축제의 연원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왕산은 기도가 불꽃처럼 일어나는 곳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면 천신녀가 기도하는 장소였을 가능성도 많다. 2009년까지만 해도 억새태우기는 가장 유명한 축제였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화재로 80여명의 사상자가 나자 축제는 폐지되었다. 폐지가 능사가 아니다. 산불에는 불상사가 날 수도 있다. 다수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축제를 즐기다가 죽는 사람은 있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참가하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적 행위가 몇 사람의 죽음 때문에 중지될 수는 없다.

화왕산_창녕조씨득성지지

화왕산 정상과 배바위 사이의 중앙에는 용지龍池가 있고, 동쪽에는 창녕조씨득성지지 비석이 서 있다. 창녕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이가 태어난 곳이 화왕산 정상이다. 그 설화를 보면,

<신라 진평왕(?-632)때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병을 고치기 위해 용지에서 목욕을 하다가 용과 사귀게 됐다. 둘 사이에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아이의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새겨져 있어서 성을 조가로 하고, 이름은 용의 아들이란 의미의 계룡(繼龍)이라고 지었다. 장성하여 공주와 짝을 짓고 창성부원군으로 봉해졌는데, 그가 창녕 조씨의 시조이다.>

득성지로써는 매우 특이하고도 사뭇 색다르다. 산과 못(용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경우는 창녕조씨가 유일하다. 산의 형상은 사람됨이 흔들림이 없거나 학문을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지 또는 용연龍淵이라 불리는 연못에서 시조가 탄생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연못에다가 용龍자를 붙이는 이유는 최고의 신분을 의미한다. 즉 씨앗이 왕족이라는 뜻이다. 일례로 파평윤씨는 용연에서 양쪽 겨드랑이에 81개의 잉어비늘을 지니고 태어난 윤신달을 시조로 한다.

조계룡은 화왕산의 정기를 타고났다. 화왕산은 화기를 머금은 산이다. 산의 정기는 사람에게 전해지므로 창녕조씨는 대체로 성격이 강직할 것이다. 자체적으로는 제어가 힘들 정도로 왕하지만 친구를 잘 만나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재주를 펼칠 수 있다.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 묘 호랑이가 점지해 준 땅이다. 호랑이는 산신령의 분신으로 영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호랑이가 선택해준 땅이라기보다는 배고픈 호랑이가 시신을 물고 가다가 사람들이 추격하자 시신을 두고 도망 간 자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회룡고조형의 창녕석리성씨고택

창녕성씨 시조와 관련된 풍수에는 호랑이설화가 등장한다. 시조 성인보가 개성에서 죽음을 맞이하자. 그의 아들 성송국은 아버지의 시신을 지개에 지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선친의 묘지에 대한 생각으로 밤을 세우던 중, 시신을 도난당한다. 마침 내린 눈 때문에 호랑이가 시신을 물고 간 것을 알고 뒤를 밟아보니 맥산 위에 시신을 두고는 호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시신을 두고 간 자리가 명당임을 알고 장사를 지냈다. 시조묘의 발복으로 후손들에게서 영의정과 대제학이 연이어 배출되어 조선의 명문가를 이루었다는 결론이다.

창녕석리성씨고가  아주 작은 동산에 의지하여 남동향으로 지은 집이다. 고가를 복원해 놓았으나 조선의 고택인데 일본식의 조경이 덧붙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풍수적으로 집안의 정원과 연못은 전통적으로 기피하는 것들이다. 다만 집터는 좋아서 대대로 재물이 많이 쌓일 형국이다.

창녕석리성씨고가  회룡고조형 집터이고 고택 앞으로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집 뒤로는 청석이 켜켜이 쌓여 부자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대대로 부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창녕성씨의 유적으로는 시조묘와 창녕석리성씨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시조의 묘는 화왕산에서 이어지는 용맥이 평지로 숨어들어 장한 기운을 찾기가 어렵다. 창녕성씨의 발복은 다른 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택은 화왕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전형적인 회룡고조형으로 조상의 음덕이 강하여 부가 끊어지지는 않겠다.

영산신씨고가  신씨고가의 사랑채와 우측으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인다. 신씨고가가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취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이 당차고 위엄이 서려 있다. 영산읍은 영산신씨고가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신돈의 출현은 조선을 위한 필연

영산신씨의 수호산은 영취산靈鷲山이다. 불교에서는 ‘영축산’으로 읽는다. 영취산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산을 오르면 능선 위는 바위를 쌓아 놓은 것 같다. 바위가 쌓여 있는 모양은 강인함을 의미한다. 이는 거센 비바람에도 굳건히 견디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후손들이 영명하고 학문적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일러주고 있으며, 무인의 기질을 내포하기도 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무인이 연속 배출된다. 산이 중요한 것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산의 정기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빗물이 산에 내리면 산의 물로 변신한다. 산이 가진 고유한 미네랄이 물속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산 아래 사람들은 그 물을 먹고 산다. 하루가 아닌 몇 천일동안. 그러면서 그 산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고로 사람은 그 산을 닮아간다.

영산신씨는 고려시대에 엄청난 문벌귀족이었다. 2대부터 6대까지 내리 대제학을 지내고, 7대에는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하였으며, 8대와 9대도 대제학을 지낸다. 11대에 나타난 신돈은 고려의 정기가 조선으로 탈바꿈하는데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신돈辛旽은 창녕 계성현에 있는 화왕산 옥천사에 있던 여종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신돈의 개혁정신과 고려의 정치세력에 염증을 느낀 공민왕은 서로 의기가 투합되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고려권문세가의 반대와 역모사건에 휘말려 신돈은 처형당한다.

영산신씨의 대동보에서는 신돈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일설에 신돈은 신귀와 형제라고 전한다. 신귀는 신돈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신귀의 아들 극례는 조선건국에 앞장서고 이방원의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덕으로 영의정까지 등극한다. 조선의 공신 대열에 당당히 서게 된 영산신씨는 불명예스러운 신돈과 같은 혈족이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돈을 족보에서 지워버렸다는 설이다. 신돈이 고려의 왕실을 드나들다가 최고 권력을 행사할 정도라면 영산신씨의 막강한 뒷받침에 힘입은 바 없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신돈의 개혁정신은 성균관을 중심으로 신진사대부세력이 성장하는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고려의 부조리를 개혁하는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신진사대부세력에게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를 국시로 하는 배불숭유의 조선에서 승려였던 신돈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득권층이었던 고려의 권문세가를 대상으로 개혁정치를 보여준 신돈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영산신씨의 무덤_가문의 특이한 선택  창녕군 장마면 유리 마고지 옆에 있는 영산신씨의 묘. 영산신씨의 대동보를 살펴보면 묘산도(묘지를 그려놓은 지형도)에 유독 못과 저수지, 강, 바다가 많이 보인다. 이런 사실을 영산신씨 대종회에 가서 말을 하니 족보에 그려진 무덤이외에도 물가에 만든 무덤이 정말 많다고 했다. 물은 풍수적으로 재물에 해당된다. 영산신씨의 유전자 속에는 물을 좋아하는 DNA가 존재하는 모양이다. 조상대대로 물의 기운을 좇고 있었던 까닭에 지금 영산신씨가 재물복이 터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려(문신)-조선(무신)-현대(재물)로 다양하게 변신하고 있는 영산신씨의 비밀은 풍수였다.

창녕술정리 동3층석탑에서 바라본 화왕산  창녕의 석가탑 술정리 동3층석탑(국보34호)와 창녕의 진산 화왕산의 웅장한 자태이다. 창녕술정리 서3층석탑(보물520호) 그리고 사찰이 많았던 것을 보면 창녕도 불국토였을 가능성이 많다. 특히 술정리 동3층석탑은 경주불국사 석가탑을 능가하는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다만 화왕산과 영취산에서 석조불이 그다지 많이 발견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화왕산 정기와 영취산 정기의 이합집산

영산신씨 신돈辛旽이 공민왕의 후원으로 6년간 정권을 쥐락펴락하게 된다. 신돈의 성쇠에 따라 신돈의 인물네트워크에 속한 영산신씨 외에도 창녕조씨와 창녕성씨도 그 흐름를 같이한다. 조민수의 아들은 신돈의 도움으로 과거에 합격하고, 성여완도 신돈에게 기대어 정치적인 이익을 구하였던 것이다. 신돈과 함께 신귀는 처형되었고 조민수는 유배당하고 성여완 은 장류杖流에 처하게 된다. 이렇듯 화왕산과 영취산의 인재들은 고려 말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지만, 이후 각 가문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창녕조씨 23대 조민수는 위화도회군에 동조하여 새로운 변신을 도모하였으나, 고려를 두둔하는 입장을 고수하자 조선의 건국을 지향하는 이성계일파의 권력에 밀려 결국은 창녕으로 유배당하여 숨을 거둔다. 그 이후로 조선개국 공신대열에 들어갈 기회를 놓쳐 크게 번성하지 못한다, 조선 중기에 남명 조식선생의 출현으로 창녕조씨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다.

창녕성씨는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일조를 하여 성여완의 아들 4형제가 영의정과 대제학을 역임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조선에 적극 협조한 경파와는 달리 본향을 지킨 것은 향파였다. 향파는 성여완의 5촌 조카 성사제의 후손이다. 그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고집하여 조선과 인연을 끊고 낙향한다. 후손들은 성사제의 유지를 이어받아 벼슬을 하지 않고 농사와 수양으로 창녕을 지켜왔다.

지금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세 성씨가 창녕을 지키고 있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개척할 새로운 인재로 나타나길 기대한다.[q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