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순의 풍수이야기] 월간 사람과산 2012년 11월호

일월산과 지조론 그리고 한양 조씨의 호은종택

영양군에 있는 일원산(1219m)은 대한민국에서는 오지라서 접근이 쉽지 않다. 마침 봉화에 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일월산과 영양 주실마을을 돌아보았다. 해와 달을 품은 일월산(1219m)은 동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막아서서 안쪽으로 대륙성 지형을 만든 특이한 모양의 산이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의 지형에 길들여진다. 지형은 기후를 만들고, 기후와 땅이 물맛과 식생활문화를 만든다. 이를 풍토라고 하는데, 풍토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기질을 만든다. 사람이 땅의 성정을 닮아가는 것은 바로 자연에 적응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자연과 더불어 적응하고 살아남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의 성향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글|사진 김 규 순 (서울풍수아카데미원장, www.locationart.co.kr)



남북으로 월자봉과 일자봉이 비교적 평탄한 균형능선을 이루며 이어져 있는 구간이 2키로미터에 달한다. 산의 정상이 다른 산과는 달이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정상에 군부대가 진주하고 있어서 산의 정기가 진압당한 상태이다. 담백한 인재의 산실이 무미건조해질까 걱정이 앞선다.

영양군에 있는 일월산은 경상북도에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 있는 산들 중에서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영험한 산으로써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영험하다는 것은 일원산이 대한민국의 오지에 있었으면서도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들이 일월산과 인연을 맺고 있다. 동학교조인 최제우가 사형을 당하자 최시형이 일월산에 피신하여 수행을 했던 곳이며, 을사늑약에 강분한 신돌석(申泰鎬)장군이 의병활동을 했던 근거지이다. 의병항쟁을 했다는 것은 부근의 양반들이 협조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한양조씨의 대륙적 성향

한양조씨의 고려시대 이전의 상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황하이북의 내륙지역에 있었던 조(趙, BC 403-BC 228)나라의 후예라고 생각된다. 유전자란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한 진화의 결과물이므로, 한양조씨의 유전자에 대륙적인 기질이 숨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전혀 다른 지역으로 옮겨 살더라도 그와 비슷한 곳에 터전을 마련한다. 사람에게도 본능적으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있다.

대륙성지형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내부이거나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서 나타난다. 여름에 기온이 높아서 덥고 소나기형 비가 잦으며, 겨울에는 공기가 건조하며 몹시 추운 특징을 지닌다. 풍수지리학은 바람과 물 그리고 땅을 아울러서 판단하는 학문이므로 당연히 바람 즉, 기후도 풍수학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지후와 지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도 대륙성기후지형이라고 하는데, 이런 기후지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은 대륙적 성정을 지니게 된다. 산을 좋아하고(樂山), 뚝심이 있으며 의리형･명분형이며,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가 중요하고, 검약함을 선호하고, 오래도록 잔잔한 즐거움에 처할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인물의 성향은 세상이 하수상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임진왜란 때부터 의병에 참가한 전통을 만든 주실마을은 을미사변직후에도 의병을 조직하였다. 조승기(24대)는 의병대장이었고, 영남만인소운동(1881)에 참가한 독립유공자이다. 의병진에는 조영기, 조병기, 조병찬, 조후용 등이 참여했다. 그 외에도 의병활동으로 사형을 선고 받은 조준용(23대), 신돌석에게 지원금을 준 조병유, 의병전투에서 전사한 조철용의 기록이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다. 조만기는 석주 이상룡의 외사촌으로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조승기의 손자 조헌영(26대)은 민족학자이며 한의학자로 제헌국의회원과 2대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나 6.25때 납북되었다.

독립운동유공자들은 자진참여와 자비출연과, 일제의 핍박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독립유공자들은 무관의 벼슬로써 재상에 해당된다. 대륙적 성향의 사람이야 말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호은종택의 풍수

영양 주실마을에 일가를 이룬 조전(趙佺, 한양조씨 12세손)의 아들 조정형은 호은종택을 건립(1629년)하여 한양조씨가 일월산과 인연을 맺는다. 일설에 매방산에서 매를 날려 집터를 잡았다고 하나, 이는 집안에서 풍수를 공부했다는 것을 외부에 알리기 싫어하는 선비들의 위장술에 불과하다. 풍수학과 한의학, 그리고 명과학은 조선의 실용학문이었기에 아마 능통했을 것이다.

호은종택에서 보여주는 풍수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연코 집터이다. 집터가 일월산의 중출맥이 장군천을 만나 숨을 고르는 자리이다. 일반적으로는 산의 옆구리에 마을과 집을 짓는 것이 순리였다. 용맥이라 불리는 능선위에 집을 짓는 것은 상당한 풍수적인 안목이 없이는 집터로 지정하기가 위험한 곳이다. 능선에 집을 지으면 병신이 태어난다는 풍수적인 경고가 있기 때문이다. 능선을 타고 집을 지은 것은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대륙적인 기질을 타고나는 것인데, 이 경우 절개와 떳떳한 자신감은 선천적이다.

주실마을은 능선 안쪽이나 산속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나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만들었다. 이것은 노예근성이나 비굴함이 있다면 마을을 이렇게 개방시키지 못한다. 이러한 기개는 주실마을의 당당함과 굳센 의지를 엿보게 한다. 호은종택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타인에게는 후하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품이 있고 재물이나 권력에 대해서는 거리낌이 없는 담백한 향기를 품고 있는 것이 남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묘지풍수에 못지않게 마을풍수와 가옥풍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지조론의 모체- 문불차(文不借)

주실마을에는 삼불차의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먼저 재물을 빌리지 말라고 한 재불차(財不借)는 허황된 욕심을 부리다가 패망하지 말라는 의미와 재물을 좇으면서 구차하게 살지 말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그 다음 인불차(人不借)는 사람을 빌리지 말라는 것이지만, 양자를 들이면 재산상속권이 넘어가므로 재물로 말미암아 집안에 혼란을 조성하는 것이므로 삼가라는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문불차(文不借)는 삼불차의 결론이다. 재물을 빌릴 정도이면 이미 학문이 꺾여 아첨의 도구가 될 뿐이고, 사람이 끊어지면 학문적 유전자고 끊어지는 것이다. 재불차와 인불차가 없이는 문불차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통합적 개념이다.

지조론의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

조지훈은 조헌영의 아들로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어학회 편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고려대교수로 봉직하였고 한국동란 때에는 종군작가로 활동하였다. 김소월과 김영랑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현대시를 완성한 분이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다.

조지훈의 전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지조론>이다. 그의 지조론을 보면,

* 지조란 것은 순일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지도자와 교양인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 지조를 지키리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인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문불차는 지조론의 모체이다. 지조론은 일월산의 정기가 만들어 낸 대륙적 기후지형의 결과물이다. 주실마을의 한양조씨는 지조의 향기를 풍기는 선비의 정신을 지녔던 것이다. 조지훈은 지조는 소인기(少忍飢)로부터 시작한다고 역설했다. 가난을 이기지 못한다면 지조는 한갓 물거품이라는 의미이다.

조지훈이가 지조론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한양주씨가 주실마을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삼불차와 의병활동은 지조론의 표상이었다. 300년이 지나 다시 의병투쟁을 주도하고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그들은 지조론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분들이었다. 조지훈은 조상들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글로 새긴 것이다. 대한제국에서 100년간은 한민족에게는 단군 이래 가장 혹독한 역사였다. 한 몸 추스르며 생존하기도 힘든 시기에 지조론을 외치며 헤쳐 나온 주실마을의 기개에 머리가 숙여진다. 일월산은 여전히 거기에 서 있다. 그곳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있는 한-. [qsoon]

<호은종택에서 태어난 한양조씨 계보> 조 군-덕순-희명-사도-거관-명복-언유-병주-태용-승기(독립유공자)-인석-근영,헌영,준영,애영-동진,동탁(지훈)/동걸/동원. 조선 중기 조광조의 혁신적인 정치개혁을 저지하고자 남곤과 심정의 반격으로 발생한 기묘사화(1519년)가 일어나자 화를 피하여 영주에 있는 처가로 낙향한 이가 조종(趙琮, 조광조의 9촌)이다. 조종의 손자 조원(趙源, 한양조씨 11대)도 처가가 있는 영양으로 이주하였고, 그의 손자 조전(趙佺, 13대)은 주실마을로 들어간다. 조정형(14대)이 1629년에 호은종택을 건립하였다.

옥천종택. 조전의 증손자 조덕린이 건립. <옥천종택에서 태어난 한양조씨 계보> 희당-준도-거신-일복-언규-병성-주용-만기(이상룡의 외사촌, 7가구의 망명, 독립유공자)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학파정, 참주정사 등 고건물을 방문해보니 사람의 손길이 없어져서인지 박제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삼불차의 정신과 지조론까지 박제화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좌측 숲속에 있는 건물이 참주정사. 중앙에 있는 건물(초가포함)이 옥천종택. 조전의 증손자 조덕린이 건립. <옥천종택에서 태어난 한양조씨 계보> 희당-준도-거신-일복-언규-병성-주용-만기(이상룡의 외사촌, 7가구의 망명, 독립유공자)
호은종택과 옥천종택, 학파정, 참주정사 등 고건물을 방문해보니 사람의 손길이 없어져서인지 박제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삼불차의 정신과 지조론까지 박제화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월자봉에서 바라본 일자봉의 모습. 군부대의 건축물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정상에 군부대가 진주하고 있어서 산의 정기가 진압당한 상태이다. 담백한 인재의 산실이 무미건조해질까 걱정이 앞선다.

일원산의 산길에는 가을이 익어 있다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전경. 뒤에 있는 주산이 마을 뒤에 버티고 서 있다. 가옥이나 마을은 보국이 우선하는데 보국이 좋다. 마을 앞의 문전옥답에 황금빛이 서려 있다. 장군천이 감싸 안은 상태이다.

창주정사에서 바라본 주실마을 앞산의 선경. 문필봉의 자세가 변함없다

고대신문에 실린 조지훈의 글. 4.18특집으로 <큰일을 위해 죽음을 공부하라>라는 제목의 글이다

조지훈문학관에 있는 조지훈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