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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풍수여행] 이순신의 한산섬과 박경리의 미륵섬 김규순 2017-09-29 1765  
     
 

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_201709

이순신의 한산섬과 박경리의 미륵섬

글 사진 || 김 규 순

떠오르는 도시 통영. 둘러싼 섬들로 인해 통영은 바닷가 도시가 아니라 커다랗고 잔잔한 호수를 낀 수변도시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인구 14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해양도시이지만, 임진왜란 당시 최전선으로 한산대첩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역사성과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관은 최고를 지향하고 있다. 한려수도 경관을 배경으로 한 섬 여행과 요트투어, 케이블카, 루지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미륵섬
미륵섬은 통영 앞바다(해수로) 건너에 있는 섬이다. 통영항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제법 큰 섬으로 통영항으로 불어오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연륙교가 두 개나 있어 건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간이 나면 연륙교를 걸어서 건너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오래 즐길 수 있다. 

미륵섬은 일주도로가 아름답다. 일주도로를 따라 어촌도 만날 수 있고 앙증맞은 리조트 건물도 볼 수 있다.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 한려수도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올라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세계적인 레포츠인 루지(luge)가 설치되어 있어 남녀노소 함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놀이기구가 케이블카 바로 옆에 있다. 또한 통영음악당과 리조트?호텔, 그리고 해수욕장까지 겸비한 관광단지로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통영은 한산대첩 축제와 통영음악축제가 있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미륵산의 6부 능선에는 우리나라 소설의 금자탑 ‘토지’의 작가 ‘박경리기념관’과 그의 무덤이 있다. 박경리의 생가는 서포루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북포루에 올라가서 보면 손에 닿을 듯이 보인다. 그의 무덤이 미륵도에 간 까닭은 무엇인가? 이유는 간단하다. 통영 시내인 서포루 부근에 묘지를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독지가가 통영시에 땅 300여 평을 쾌척하여 미륵도에 박경리의 묘역이 조성되었다.


한산섬
한려수도는 한산섬에서 여수까지의 아름다운 바다를 말한다. 한산섬은 한려수도의 동쪽 끝에 있는 섬이다.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남해안은 부산에서 목포까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피땀이이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대첩을 거둔 것은 1592년7월8일의 일이었다. 이 때 이미 거제도의 옥포해전에서 26척의 적선을 침몰시키며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합포, 적진포, 당포, 당항포, 율포해전을 연거푸 승리를 거두면서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말을 관리하던 목동 김천손이 미륵산에 올랐다가, 복수전을 위해 이를 갈던 왜선이 견내량(거제대교) 부근에 집결하고 있음을 견지하고 당포에 정박하고 있던 수군에 연락하여 이순신 장군 휘하의 선단은 왜군을 섬멸하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견내량에 있던 왜선을 공격한 후 도망가는 척하며 유인하고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군들과 합세하여 학익진을 펼치면 공격하여 66척의 적선을 불살랐다. 한산도 대첩을 기화로 왜수군은 겁에 질려 이순신장군을 피해 다녔고 그들의 보급로가 끊어져 왜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산도에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다.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본진이 여수에 있었으나 최전선과 거리가 멀어서 한산도로 본진을 이전하였다. 이순신 장군 생전에는 한산도가 삼도수군통제영이었다.

 


[사진설명]
북포루에서 본 통영>>062127, 062156, 063801, 4784, 4789

박경리 생가가 보이는 서포루>>070629
사진 중앙 오렌지색 지붕 좌측 고동색 지붕이 박경리 생가이다. 생가의 안산이 서포루이고 미륵산은 조산격이다. 미륵산에 박경리의 무덤이 있다. 집앞에 봉우리가 솟으면 기인(奇人)이 난다고 했다.

미륵도에서 본 한산섬>>104757, 4807
400년전 목숨을 걸고 싸운 이순신 장군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한 환상에 싸인다. 한려수도의 출발지가 수많은 사람이 죽은 현장이기도 하다.

충무교에서 본 통영항>080816, 4886
부도난 조선소가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흔적이다.

미륵산 정산에서 본 통영항>>105115, 4819, 4825
코리아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미항이다.

미륵산의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 120833

한산도 대첩이 이루어진 바다> 4832
이순신장군을 비롯한 부장들과 조선수군의 기개가 보이는 듯, 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미륵산에서 내려다본 당포>4837
목동 김천손이 왜선의 동태를 파악하고 이순신 장군에게 보고하러 달려간 당포이다.

루지레포츠 전경> 4837
역사성과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현대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는 레포츠도 중요한 부분이다.

박경리 무덤에서 보이는 한산도> 4850
탁 트인 바다보다 막아주는 산이 있어서인지 산소로서 나쁘지는 않다.

박경리 묘역에 서 있는 시비>> 4855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는지-박경리 시 ‘산다는 것’ 중에서

박경리 기념관에 전시된 시>>4865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생명의 아픔’ 박경리

박경리기념관 >> 4868
박경리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기념관 뒤로 미륵산 정상이 보인다.

미륵도 미래사 부근의 편백나무 숲 >> 4872
평균수령이 30-40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편백 특유의 향이 코를 찌른다.

미륵도미래사의 전경>>4881
미래사 뒤로 병풍이 쳐져있는 것 같은 편백나무

선상에서 본 안뒤산과 세병관 >>4901, 5014
위풍당당한 삼도수군통제영인 세병관이 보인다. 통영 안뒤산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이순신 장군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통영-한산섬 왕복선 >>084027, 4888, 4972
통영항에서 30분이면 한선섬에 도착한다. 통영항에서는 매시 정각에, 한산섬에서는 매시 30분에 출항한다.

한산도의 용암>> 4930
한산도가 용암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산도 제승당 올라가는 충무문>>4936

한산도 충무사에 모셔진 충무공이순신 초상화>> 4943

한산도 한산정 건너편의 국궁과녁>>4944
조선수군들의 화살훈련장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국궁을 쏘면 화살이 바다에 죄다 빠졌다고 한다.

한산도 수루>> 4953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차에
어디에선가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장군이 1595년 이 수루에서 지은 시이다.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여야 하는장군의 고독함이 배어 있는 시이다.

한산도 제승당>>4859

제승당 휴게소 >>4964
제승당 휴게소의 지붕이 일본 신사 앞에 세워 놓는 도리이 모양이어서 눈에 몹시 거슬린다.

선상에서 본 수루>>4985
수루의 좌우에 함선을 숨겨 놓기에 좋은 장소이다.

한산섬 왕복선상에서 본 미륵도>>091337, 5007
통영음악당과 리조트 그리고 호텔이 하나의 단지를 형성하며 통영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미륵산 용화사>>5036, 5041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일반적으로 왜적이 난무하여 공도정책을 썼으나, 미륵섬은 육지에서 가깝고 면적이 넓어서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 사찰은 고대부터 있었기에 풍수를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이다. 신라사찰에서는 신라풍수를 고려사찰에서는 고려풍수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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