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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풍수여행] 서울의 좌청룡_아차산 김규순 2017-06-29 2813  
     
 

월간사람과산_김규순의 풍수이야기_2017년6월

서울의 좌청룡_아차산


글사진 ||  김  규  순



아차산 중턱에서 바라본 한강과 송파지역 >>
아차산 제5보루에서 보이는 한강남쪽, 건물이 들어서 있지만, 송파의 너른 평야가 연상되는 곳이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도 자세히 살펴야 찾을 수 있다.




아차산·망우산 능선을 종주했다. 약 9km에 달하는 거리이다. 아차산은 암릉이 많은 반면 망우산은 거의 흙길이었다. 서울 둘레길을 따라 갈려고 했지만 둘레길과 능선길은 달랐다. 서울과 경기도를 나누는 경계선을 따라 걷고 싶었기에 능선을 택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도시공간은 유교적 통치이념과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만들어졌다. 자연경관을 경계로 도시공간을 만들었다. 북한산을 필두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좌청룡으로 낙산, 우백호로 인왕산, 남주작으로 남산이 그것이다. 이 영역이 도성으로 둘러싸인 한양 내부이다. 이 능선들은 현대의 고층빌딩으로 가려져 그 진면목이 사라졌지만, 옛날 사진을 보면 그 경관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동경하게 된다. 사대문 인근도 한양 영역에 속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지리적 공간은 도성과 성저십리(도성 밖 십리까지 영역)를 포함하였다. 즉 남쪽은 용강, 서쪽은 서강, 북쪽은 북한산, 동쪽은 중랑천이 경계가 되었다. 한양은 이렇게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으로 이중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고구려의 아차산성  >>
아차산성 발굴지이다. 출입을 제한하는 철책담 안으로 석축 성벽이 보인다.




아차산의 암릉  >>
아차산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지하 600-700m 깊이에서 서서히 식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그 생성연대는 6천만년에서 1억7천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차산의 경우 지하 600m의 깊은 곳에서 지상 200미터까지 솟은 세월이 6천만년이상이 걸린 셈이다.

 

한양의 풍수에서 경복궁을 기준으로 한 풍수로는 좌청룡 즉 동쪽이 약해서 왜倭의 침략을 받는다는 일설과, 자하문 고개가 낮아서 또는 무악재의 고개가 낮아서 차이나의 침략을 받는다는 풍수적 일설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가 아니었던 신라와 고려시대에도 왜와 원의 침입과 약탈은 있었다. 그리고 왜가 딱히 동쪽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문제이다. 한양에서 보았을 때 왜는 남동쪽에 있었으며, 원나라나 청나라도 북서쪽에 있었다.
아차산은 서울의 외청룡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서울에서 거의 유일하게 고구려의 유구를 간직하고 있는 아차산은 고구려의 산성과 보루가 있었을 정도로 튼튼한 방비책이 되었던 산이었다. 한양의 좌청룡이 약해서 왜의 침입할 것이라는 얘기는 숙명론자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나라가 약해지면 주변국들이 언제라도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넘보게 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그러했고,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이 그러했다. 풍수적 숙명론이 아니라 유비무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행정지역 경계표시 >>
능선을 기점으로 동쪽은 경기도 구리시, 서쪽은 서울시 광진구이다.




아차산은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결혼했다는 스토리텔링의 주인공 온달장군이 전사한 곳으로 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망우산과 용마산 그리고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17개의 보루가 발견되었다. 고구려가 한강 일대를 적극적으로 경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루에 올라서면 동서의 경관이 장대하고 아름답다. 아차산의 동쪽은 너른 공간 중앙으로 커다란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데 그것이 한강이다. 서쪽은 북한산과 도봉산이 위엄을 보이고 있는 공간이다. 북한산과 북악산은 조선 왕권의 상징이었고 정치공간의 상징이었다. 인수봉과 보현봉 그리고 북악산이 보이고 인왕산과 안산 그리고 남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옛 한양의 위엄을 경관으로도 느낄 수 있다.




보현봉·북악산·인왕산·안산·남산의 파노라마  >>
한양 경관의 상징물들이다.

세종부터 성종 조에 이르는 동안 살았다고 전해지는 홍계관洪啓寬이라는 맹인 점술가가 있었다. 영의정 상진도 그에게서 점을 보았고, 계유정란의 공신으로 세조에게 신임을 받은 홍윤성도 그에게서 점을 보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아차산의 지명에 얽힌 홍계관 설화가 있다. 그의 점술이 정확하다는 소문이 파다하였기에 임금이 그를 불러 상자 속에 있는 쥐의 수를 맞춰보라고 했다. 홍계관은 쥐 한 마리를 다섯 마리라고 하였다가 사형장으로 보내졌는데, 쥐의 배가 이상하여 갈라보니 새끼 네 마리가 들어 있어 어미 쥐와 합하여 다섯 마리였다. 임금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하며 사형을 중지하게 하였으나 이미 그는 죽었다. 이에 그를 일러 신복神卜이라 했다. 그가 사형당한 곳이 아차산이어서 산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지명에는 역사가 숨어 있다.




아차산 제4보루와 한강  >>
용마산에서 바라본 동쪽 경관이다. 사진 좌측 아차산 능선에 평평한 곳, 잔디밭이 깔려있는 곳이 보루이다.




망우산 전경 >>
아차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망우산의 부드러운 모습이다.



아차산 제4보루에서 본 동쪽 경관 >>
치가 설치되어 있고, 한강이 흘러들어오는 경관이다. 아치형의 암사대교가 보인다. 정면 멀리 보이는 산은 검단산이다.





망우산의 서울에 있는 묘지는 일반적으로  북한산이나 도봉산 또는 수락산을 바라보고 있다. 반면에 구리시 영역에 있는 묘지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풍수적 공간이란 바라보이는 방향의 경관을 중요시한다. 보이는 공간이 어떤 경관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모양의 산이 있는지, 어떤 모습의 물이 있는지에 따라 그 땅(대지나 산소)의 성향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산을 바라본다는 것과 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공자도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이는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는 명언이다. 산은 속성을 드러내 보이고 있지만, 물은 속성을 안으로 감추고 있지 않은가.




망우묘역에 묻힌 독립운동가 표지판 >>




옛날에는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을 통털어 아차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망우산의 지명은 이성계가 망우산 북쪽 구능산 기슭에 자신의 신후지지를 정하고 난 뒤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근거심거리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망우리로 유명한 곳이다. 망우산에는 1933년에 일제에 의해 공동묘지로 지정된 망우묘지가 있다. 이곳에는 대부분 서민들의 묘지들이다. 독립운동가들과 문인들이 많이 묻혀 있는데, 이는 독립운동가의 집안들이 일제의 억압으로 피폐하고 가난하여 공동묘지에 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알려준다.
망우공원은 능선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진다. 망우산의 능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서울이고 동쪽은 구리시이다. 이런 상황은 아차산과 같다. 산의 반은 서울이고 반은 경기도 구리시이다. 




망우공동묘지에서 보이는 서쪽 경관  >>
보현봉, 인수봉, 도봉산이 보이고 사진 중앙에 종화산이 아파트 사이로 불쑥 솟아있다.





망우산 공동묘지에서 보이는 롯데타워 >>
망우산 능선의 서쪽 기슭에 자리 잡은 무덤의 방향은 한강 쪽이다. 수풀이 무성하여 한강은 보이지 않는다,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
무덤의 활개가 길이 되었다가 사람이 너무 많이 다녀 활개가 닳아서 없어졌다.




특히 망우산 서쪽에 있는 묘지가 바라보는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도읍지를 상징하는 산이며, 정치와 권력을 상징하는 북한산과 북악산이므로 이곳 무덤의 주인공이나 그 후손들은 정치지향적이거나 권력지향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망우산 서쪽에 있는 무덤들은 한강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경관을 보고 있으므로 권력보다는 재물지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공간을 점유한다. 성장할 때도 심지어 죽어서도 공간을 점유한다. 공간은 점유한 자가 지배한다. 어떠한 공간을 점유하느냐에 따라 공간지배자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진 설명>

아차산 제4보루  >> 151915

아차산 능선 >> 154443
좁은 능선의 좌우로는 급경사이다. 능선은 분수령이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방향이 정반대로 나타나는 곳이다. 산과 산이 연결되기도 하지만 아차산에서는 보루와 보루를 연결하는 통로로 사용되었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 분포도  >> 155005

아차산·망우산 능선 지도  >> 3756

아차산 제5보루  >> 3789, 3800






 

 




 

망우공동묘지 오솔길에 묻힌 묘지석  >>
이곳이 묘역이었던 모양이다. 묘지는 사라지고 묘비가 쓰러진 곳에 길이 만들어졌다.
망우산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이런 것은 종종 발견하게 된다. 무덤의 생로병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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