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사람과산 2016년 4월호

청주_지난至難한 역사의 흔적과 청주한씨

글 사진 :: 김 규 순 

상당산성

청주라고하면 지방의 특색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내륙지방인 충청북도의 행정도시라는 것정도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미호천 부근이 수도후보지로 거론된 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청주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너른 평야를 끼고 있으며, 삼국이 대립각을 세울 때 백제가 진천의 김서현 장군(김유신 장군의 부친)과 대치한 곳이다.
충청북도라도 음성군과 괴산군은 한강유역이고 청주는 금강유역이다. 풍수학에서 기(氣)는 물의 어미라고 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 각종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산이 다르면 물도 달라진다. 물이 다르면 사람의 성향도 다르다고 했다. 산의 정기를 타고났다고 하는 것은 그 산의 물을 먹고 그 산의 언저리에서 자란 식량을 먹고 성장했다는 의미이다. 즉, 그 산의 미네랄을 공급받았다는 결론이다.
상당산(491.5m)은 청주의 진산이다-혹자는 우암산이 진산이라고 하지만. 상단산에는 산당산성이 있는데 마치 남한상성과 같은 모양이다. 산성이 규모가 있어서 저수지와 마을 그리고 논밭이 형성되어 있다. 충청북도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략요충지였다. 상당산의 정기로 청주의 기상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 같다.

청주흥덕사지(제공 : 청주시청)

평지사찰
백제가 멸망시킨 후에 이 고장 사람들은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그 멘붕이 즉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 심천(沁川), 조선시대 대교천(大橋川)에서 무심천(無心川)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는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스치듯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무심이란 불교용어이지만, 아무런 생각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을 표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청주지역에는 대사찰이 많았던 듯하다. 용두사지 당간지주(국보 제41호)가 남아 있는 용두사와 무심천 제방에서 400여점의 불교금속공예품이 출토되어 마침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뇌사, 사적315호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유적지로써 1377년(고려 우왕3년)에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을 인쇄한 흥덕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사찰이다. 위에 언급된 사찰들은 청주의 낮은 구릉지에 발달한 사찰이다.
백두대간을 동쪽에 두고 너른 구릉지가 발달한 청주는 언 듯 보면 경주와 흡사한 지형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경주와 비슷한 경우이다. 경주도 평지사찰인 황룡사는 사라지고 없다. 분황사도 탑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용두사지당간지주_국보 제41호 
청주시내 가장 번화한 상업지역에 남아 있으나, 절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 중 건립 내력과 년도(962년)가 확실한 것이며, 총 30여개의 철통 중에 20개만 남아서 전한다. 철통에 그 내력이 적혀 있다.
폐사지를 가보면 탑이나 당간지주만 뎅그러니 서 있다. 이는 종교의 거추장스런 장식은 없어지고 믿음만 남아 있는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믿음도 없었다면 탑을 허물어서 주춧돌이나 빨래돌로 사용했을 것이다. 번화가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를 보면 대사찰이 세월에 따라 이렇게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사뇌사의 금속공예품 중 하나_청주국립박물관 소장




사찰은 입지에 따라 산곡사찰과 평지사찰로 구분된다. 폐사지 중에 산곡(山谷)사찰보다 평지(平地)사찰이 더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째로 전란에 쉽게 노출된다. 소위 접근성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호국불교의 정신을 이어온 전통 때문에 저항하는 승병을 보고 적국 군대가 가만히 두고 지나갈 리가 없다. 둘째로 국시(國是)의 변화로 쇠퇴한 경우이다. 신라·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였으나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택하였다. 유교 사대부의 세력이 주류로 부상하면서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사찰을 가만히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양주의 회암사이다. 조선왕실의 사찰이었음에도 억불정책을 기화로 1565년 유생들이 불질러버렸던 것이다. 억불정책의 조선시대에도 살아남은 사찰이 많지만, 대부분 산곡사찰임을 알 수가 있다. 유생들이 산길을 들어가서 사찰을 파괴할 만큼 강심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로 승려들과 민간인들과의 불화이다. 평지사찰은 대부분 마을에 주민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매일 마을사람과 부대끼면서 살다보면 승려도 사람이니 만큼 재물을 탐하거나 실수를 하여 마을 사람들과 심각한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집단 간 갈등으로 사찰이 축출되는 것이다.
사찰은 수도도량이다. 수도도량은 수도정진이 가능한 지형에 지어져야 한다. 사찰이 시정잡배가 들끓는 마을이나 도읍지에 지어져서는 단기간 번성할 수는 있어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수행은 산의 맑은 정기를 벗하면서 닦아야 하는 것이다. 사찰이 수도도량으로서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퇴락해지고 폐허화의 길을 걷게 된다. 사찰은 사찰이 들어서야할 자리에 지어져야 한다.




망선루_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0호

공민왕의 망선루(望仙樓)
청주시내 중앙공원에 망선루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서 있다. 망선루는 청주목 관아의 누각이다. 고려조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에서 머물다가 이곳으로 와서 수개월 안정을 취한 곳으로 유서가 깊다. 이곳에서 과거를 시행하기도 했다. 비록 건물은 조선조 건물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고려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자리이다. 진주촉석루, 남원광한루, 밀양영남루, 삼척죽서루, 청풍한벽루, 평양부벽루, 울산태화루, 안동영호루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누각이 고려시대에 지어졌다. 그만큼 고려 사람들의 풍류 감각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압각수(鴨脚樹)_충청북도기념물 제5호
망선루 앞 50미터쯤 거리에 압각수가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데, 900년 수령의 노거수이다. 목은 이색이 공양왕2년(1390)에 청주감옥에 갇혀 있을 때 홍수가 났는데 이 나무에 올라 목숨을 건졌다고 전한다. 노거수가 있는 곳은 좋은 자리이다. 지난 900년간 태풍도 번개도 화재도 비켜간 자리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정곡루와 중앙공원의 노인들
청주 중앙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노인들이 윷놀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명당이 시민의 공원이라는 것이 아름답다. 사진 왼쪽은 청주목 관아의 출입구인 정곡루



아미타불상_국보 제106호
계유癸酉가 새겨져 있어서 통일신라 673년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청주국림박물관 소장

청주한씨
청주를 관향으로 한 성씨로 제국공주(齊國公主)를 따라 왔다가 고려에 정착한 원나라 시중 양기(楊起)가 자기 처의 고향을 관향으로 삼은 청주양씨가 있고, 무인정권을 세웠던 정중부 일당을 제거한 경대승이 청주경씨 2대이지만 조선조에서는 그리 현달하지 못했다.
청주한씨 족보에 의하면 기자조선(箕子朝鮮)의 기자를 시조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 후 백제 이전 마한왕족으로 혈통이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란은 신라시대 호족도 아니므로, 청주지역의 평야를 경영하여 성공한 대부호로 여겨진다.
 
927년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한 후에, 복수하기 위해 928년(태조11년, 견훤37년, 경순왕2년) 견훤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출정하던 중 청주에서 청주한씨의 환대를 받는다. 이런 행위는 신라의 입장에서 보면 이적행위이다. 백제의 유민으로써 쌓인 한을 씻어보려는 반동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 한란의 판단은 적중하여 신라의 평민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왕이 되었으며, 한란은 고려개국벽상공신으로 책봉된다. 그럼에도 후손들은 고려조에서 크게 현달하지 못하다가 조선 초에 12세 한상질(韓尙質)이 대제학을 역임하면서 두각을 나타낸다. 더불어 12세 한영정(韓永?)에게 두 달이 있었는데 큰딸은 명나라 3대황제 성조의 후궁인 여비가 되었고, 차녀도 선5대황제 선종의 후궁 공신부인이 되어 조선 초 외교에 커다란 돌다리가 되었다. 이들 두 누이의 활약 덕분에 한확은 좌의정까지 오르는 출세가도를 달렸던 것이다.






청주한씨 한란의 묘 
청주에서 남쪽으로 20리 거리의 청주시 상당면 남일면 가산리에 청주한씨 시조 한란(韓蘭)의 묘가 있다. 묘가 조성된 능선은 힘이 들어간 남자의 양기 마냥 불끈하여 기운이 넘친다.
청주한씨의 시조가 기자(箕子)라고 한다. 이것을 인정할 경우, 사기(史記)의 은본기에 따르면, 청주한씨의 시조는 유융씨의 딸 간적(簡狄)이 된다. 간적이 현조(玄鳥)의 알을 삼키고 낳은 자식이 설(契)이다. 설의 13세손이 은나라의 1대왕 성탕(成湯)이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은 주왕(紂王)이다. 기자(箕子)는 은나라 30대 주왕의 삼촌이니 은나라의 왕족이다.



한란묘에서 바라본 광경
꽃잎이 묘지를 중심으로 좌우에서 보호하는 것 같은 형상이다

무농정
청주한씨 시조 한란이 농사를 경영할 때 진두지휘한 헤드쿼터였다. 남쪽 평야를 바라보는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방서동인데 이 언덕 뒤로 청주한씨들이 모여 살았다. 지금은 우물인 방정(方井,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과 청주한씨사효각이 남아 있을 뿐, 종택은 없다.

 
청주한시시조 한란이 살았던 집터를 표시한 유지비 



한상질의 장손자가 한명회이다. 그는 청주한씨 직계 종손이다. 한명회의 지략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을 성공하고, 단종복위 운동(1456년)을 저지시킨 후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다. 이 때부터 무소불위의 권력이 한명회 손에 지워지고 청주한씨는 조선의 명문가에 이름을 올린다. 한명회의 두 딸이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간택되고, 특히 예종에게는 한백륜의 딸도 간택이 되어 청주한씨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연산군은 자신의 생모를 폐비시켰던 한명회의 무덤을 파헤쳐져 부관참시 당한다. 뒤를 이은 중종에 의해 신원이 회복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세종에서 성종까지 80여년동안 가문의 영광을 누렸으니 조상의 은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명회의 지략이 정권 창출을 넘어서 국토확장에 적용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미치니 아쉬울 따름이다.

 



드릴모양의 건물_청주 명암유원지에 있는 이 건물의 모양도 이상하지만 건물이 협소하여 효율성도 떨어진다. 건물이라기보다는 기념탑 모양이다. 건물은 용도에 따라 적합성이 없으면 사용 불가능하다. 지어진지 수년이 지났지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물이다. 풍수적으로 이상한 건물이 있으면 그 부근이 모두 흉한 지역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