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호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고 청풍군은 수몰되었다. 충주호를 제천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부른다. 사실 충주호의 60%가 넘는 면적이 제천시의 영역이며 청풍면이 고스란히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360호) 타지로 나가고 일부분(140호)만 물태리에서 생활하고 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이란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이다. 강과 산을 유형의 자연이라 한다면, 이는 무형의 자연을 일컫는다.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면앙정 송순의 시조를 읊으며 청풍호를 돌아든다. “ 十年(십 년)을 經營(경영)하야 草廬三間(초려삼간) 지어내니 / 나 한간 달 한간에 淸風(청풍) 한간 맡겨두고 / 江山(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글 사진 :: 김 규 순

청풍명월의 그림자

지금 제천시의 행정구역에는 청풍군과 제천현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군수는 종4품이었고 현감은 종5품이나 종6품이었으니, 청풍군이 훨씬 컸다.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고 청풍군은 수몰되었다. 청풍명월의 고장 청풍군은 고스란히 물에 잠겼으니, 충주호를 제천사람들은 청풍호라고 부른다.

옛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청풍을 시로 남겼다.

“물빛이 맑고 맑아 거울 아닌 거울이요, 산 기운이 자욱하여 연기 아닌 연기로다. 차고[寒] 푸름[碧] 서로 엉기어 한 고을 되었거늘, 맑은 바람[淸風]을 만고에 전할 이 없네.” (주열(朱悅)의 시-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다락 밖에 어지러이 붉은 것은 붉은 살구꽃 비요, 시냇가에 연푸른 것은 푸른 버들 연기로다. 한 지경의 밝은 달 맑은 바람 좋은 경치를 세속 사람 향하여 쉽게 전하지 마소.” (양숙(梁肅)의 시-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제 그들이 즐겼던 청풍명월은 물속에 가라앉았다. 우리가 보는 청풍명월은 내륙의 바다라 말하는 위압적인 청풍호반 위에 부는 바람과 이지러지는 달빛이다. 그 광경에도 사람들은 청풍명월이라 탄성을 지른다.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의 힐링은 자연만으로도 족한 모양이다. 사람의 향기를 품지 못하는 자연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청풍의 명물 한벽루  한벽루는 청풍호 수몰로 인해 옛날 자기자리를 잃어버리고 (위 흑백사진) 새로운 자리(청풍문화재단지)에 자리 잡았다. 지금 수리 중이다. 옛 선비들의 풍류가 사라지니 청풍명월의 명성도 퇴색했다.

문화가 없는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문화재단지에 대한 소회치곤 글의 제목이 조금 껄끄럽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곳은 충주댐을 만들면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제천시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청풍문화재단지란 충주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한 청풍군(제천시와 청풍군은 1995년에 통합)에 남아 있던 문화재급 전통기와건물을 옮겨다 놓았다. 

청풍문화재단지 전경    사진 중앙에 보이는 기다란 기와집이 관아인 금병헌錦屛軒이다. 그 앞에 있는 기와건물이 대문격인 금남루錦南樓이다. 금병헌 좌측에 있는 건물이 퇴계 선생께서 머물렀다는 응청각凝淸閣이다. 응청각 좌측에 푸른 천막으로 씌여진 건물이 한벽루이다. 이 중에 제대로 자리잡은 건물은 한벽루 밖에 없다. 건물의 배치를 잘 못했다는 뜻이다. 물을 등진 관아자리는 주막이 있어야 할 곳이다.

팔영루    청풍문화재단지로 들어가는 문루이다. 문의 안팎이 바뀐 형국이다. 문이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지형지세를 보면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물이 흐르는 쪽이 바깥이고 산이 있는 곳이 안이기 때문이다.

옛 조상들은 건물을 지을 때 혼을 불어 넣었다. 건물의 용도에 따라 있어야 할 자리와 그 방향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향교나 관아는 산의 능선 위에 지었으며, 산을 뒤로 하고 사람이 사는 공간을 앞으로 보는 자리에 두었다. 고택은 산의 능선이 아니라 산이 끝난 평지 혹은 산에 의지할 수 있는 산기슭을 선호했다. 다만 누정(樓亭)의 경우 시를 짓거나 가락을 읊조리는 곳이므로 물가나 커다란 암반 위 또는 절경이 펼쳐지는 절벽 위에 짓기도 했다. 향교나 관아는 공자맹자를 모시고, 임금을 모시는 곳이므로 위엄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잡았던 것이고, 주택은 평지나 상대적으로 낮은 곳을 선호하는 것은 농산물이나 물을 지어 나르는 수고를 덜기 위함이고, 누정은 시상을 떠올리기 위해 좋은 경치를 곁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풍문화재단지는 이러한 용도에 따른 건축물의 입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런 생각 없이 건물을 옮겨 놓기만 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청풍문화재단지에 문화재는 있었어도 문화는 없었다.

관란정     원주원씨 원호(생육신)가 단종을 그리며 낙향하며 살았던 곳이다.
강물이 휘몰아치며 만든 절벽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풍수적으로는 흉지이나 백척간두에 서서 깨어 있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된다. 생육신 원호는 이곳에서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 강물에 띄워서 영월에 있는 단종에게 전하고자 했다. 경치가 좋은 듯 보이나 애잔함을 지울 수 없다.

정방사    제천 금수산 신선봉(845) 능선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신라 문무왕 2년(662)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거대한 암반 위에 지어진 절로 탁 트인 전경이 일품이다. 이런 곳은 노는 곳이거나 기도처이다. 지금은 기도하러 오는 사람보다는 관광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다.

청풍김씨의 노정

청풍이라 하면 청풍김씨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청풍김씨는 김알지의 후예이다. 김알지는 경주김씨의 시조인데, 이의 후손들은 120여개의 관향으로 나누어졌다. 이는 아마 고려왕조의 정책으로 생각된다. 경주김씨의 인구수가 많고 이들이 단합할 경우 고려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소지가 충분하므로, 신라를 고려에 양위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아서도, 본을 나누어서 전국적으로 흩어지게 하여 서로 화합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를 볼 때 청풍에 근거지를 둔 청풍김씨는 고려시대에는 경주김씨들 중에서도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듯하다. 청풍은 경관은 좋지만 논밭이 넓지 않고 산이 깊을 뿐만 아니라, 왕도인 개성으로 가는 교통도 불편한 오지였기 때문이다.

청풍김씨 시조묘단    이곳이 청풍김씨 시조묘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뒤로 보이는 소나무와 건물이 시조단이다. 단壇이란 묘를 실전했을 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청풍김씨 문중에서는 매우 혼란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구전에 의한 것을 무시할 필요가 없다. 신라 왕릉도 거의 구전에 의한 것이 많다. 시조묘도 구전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단군신화도 구전에 의한 것이며 후대에 기록되었다. 청풍김씨 시조묘에 대한 혼란은 자기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

청풍김씨 김대유 묘 일반적으로 시조묘에 가면 비석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묘비를 발견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청풍김씨세보에 있다. “묘소가 백치白峙에 있다고 전하나 실전했다. 후손 김우명이 직접 내려가서 백치우측 뒤를 살펴보았으나 지석을 찾지 못했다. 후손 김중명도 백치 앞기슭 추동楸洞을 살펴보았으나 안성인이 장사지낸 곳이었다. 그래서 순종 계유년에 단을 설치하고 비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청풍김씨 시조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작 청풍김씨 문중에서조차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청풍김씨 김대유의 묘라고 알려진 묘지에서 내려다 본 경관이다. 경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라골이라고 불려진 곳인데, 꿈속에서 자라가 옷깃을 물고 올라가서 점지해준 자리라고 한다.

청풍에는 청풍김씨 시조 김대유의 묘(제천시 수산면 도전리)가 있다. 청풍을 본거지로 한 명문가이다. 청풍김씨는 조선개국공신이 아니었으므로 초기에는 현달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조선의 역사가 송두리째 뒤집어졌던 임진왜란 이후부터 청풍김씨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청풍김씨가문에는 세 개의 큰 줄기가 있으나 김식의 가계와 김우증의 가계가 뛰어나다. 청풍김씨가 명문가 반열에 오르는데 거름이 된 사람이 김식金湜(1482-1520)이다. 그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대사성이라는 벼슬을 제수 받고 서울에 세거하기 시작했던 인물이다. 그는 조광조와 뜻을 같이한 기묘팔현己卯八賢으로 유배 중에 자결한다. 김식의 죽음은 가문의 큰 손실이었으나, 현손인 김육에게는 오히려 조광조의 조카손녀를 어머니를 두고 김상용, 김상헌 형제와 교유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현손인 김육(영의정, 1580-1658)에 이르러서 조선 후기에 명문가 반열에 올라선다. 특히 현종종의 비(김우명의 딸)와 정조의 비(김시묵의 딸)를 배출하는 명문가가 된다.

김우증은 무과출신으로 중종반정의 공신이 되고 정주목사를 지낸다. 한양입성은 벼슬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므로, 이런 기회를 잃지 않고 정승과 판서, 대제학이 줄을 이어서 배출하게 된다. 가문의 융성을 기대하려면 한양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양입성이란 과거를 통하여 벼슬에 제수되어야 가능하다. 한양입성은 지금의 8학군과 같아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과거시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용이하고, 고관대작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들의 우수한 유전자는 비교적 빠른 시일에 정권의 주류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정권의 주류를 넘어서 세도가가 되었다. 정승 8명·대제학 3명·왕비 2명을 배출하면서,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넘어 백년의 세도를 부렸으니 대단한 가문이 아닐 수 없다.

조상이 얼마나 훌륭하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시대에 그 문중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문중이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류라면 오히려 사회의 악으로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종회는 문중의 울타리를 넘어 대한민국국민이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제천향교    향교란 국립학교이다. 향교 앞에는 민가가 어지러이 차지하고 있다. 향교의 선비정신을 없애려는 일제의 만행이다. 향교 앞의 땅은 대부분 나라에서 향교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라고 내려준 재산이었다. 이것들을 일제는 제멋대로 팔아버린 것이다.

여흥민씨 민기閔機(1568-1641)의 묘    사람이 살던 흔적을 찾기 가장 쉬운 것이 무덤이다. 가옥은 300년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당으로 소문이 나서 전국의 풍수지리가들이 줄지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과거급제하고 한양에 살던 민기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제천에 무덤을 쓴 것을 보면 가문을 일으키고자한 그의 소망이 지극했던 모양이다. 묘봉에서 우백호, 안산, 조산 두개가 일렬로 줄서 있다. 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제천 장락동 칠층 모전석탑   보물 제 459호  신라시대 폐사지

월악산의 위용    청풍군의 정신적인 버팀목이다. 산은 사람을 관장한다고 했으니 월악산의 기품은 많은 인재를 끌어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