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물을 설치하려면 왕릉처럼 만들어라

묘지에 석물을 사용하는 것은 족장이나 왕릉에서 시작되었다. 석물로 무덤을 만들려면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족장이나 왕이 아니고서는 권력과 함께 경제력이 뒷받침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그 연원을 살펴보면, 피라미드 모양의 고구려 장군총과 백제의 석촌동 고분이 발견된다. 근거지가 요서지역이라서 아직 학술적 연구가 미진하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고구려나 백제의 묘제양식으로 추정하건데 고조선의 묘제도 적석총일 가능성이 높다.

고대국가 이후로 무덤양식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근거로 지하의 광중은 사각형으로 파고, 땅위의 봉분은 원형으로 덮는 방식이다. 특이한 것은 왕이나 고위층의 경우 원형의 봉분을 둘러싸는 병풍석을 설치한다. 병풍석을 사용하는 이유는 풍수학적으로 수렴, 충렴과 목렴, 화렴(풍렴)을 예방하고자 생겨난 오랜 장법(葬法) 중의 하나이다. 신라에서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돌을 사용하여 곽을 만들었으며, 외부에는 병풍석(둘레석)이 치장하였다. 그리고 신라시대(당나라와 동시대)에 이미 풍수학은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는 것을 최치원의 글에서 알 수 있다. 신라국 초원산 대숭복사비명(新羅國 初月山 大崇福寺 碑銘)에서 천문지리에 능통한 고운 선생의 고매한 풍수학적 식견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절의 배후 주산이 되는 것은 바위에 있는 고니의 모양인데, 그로 인하여 절의 이름으로 삼았다. (중략) 다만 이 땅은 위세가 鷲頭山보다 낮고 地德은 龍耳의 형국처럼 높으므로, 절을 짓는 것보다 왕릉을 마련함이 마땅할 것이다. (중략) 정원 무인년(798년) 겨울에 이르러, 원성대왕께서 사후의 장사에 대하여 遺敎하시면서 因山할 것을 명하였는데, 땅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워 이에 고사를 지목하여 거기다가 유택을 모시려고 하였다. (중략) 陵墓란 아래로는 地脈을 가리고 위로는 天心을 헤아리며, 반드시 묘지에다 四象을 포괄함으로써 천만대 후손에게 미칠 복을 보전하는 것이니 자연의 법칙이다. 佛法에는 住相이 없고 장례에는 盛한 시기가 있으니, 땅을 바꾸어 자리함이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다. 단지 靑烏子와 같은 풍수가가 땅을 잘 보았으면 되었지, 어찌 백마로 하여금 슬퍼하도록 할 것이랴.”

병풍석의 묘제방식

병풍석은 권위적인 의미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장풍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 발달한 묘제로 보인다. 대륙의 평야지대나 큰 강 유역 또는 해안에서 가까운 해안지형인 경우 장풍이 되기 힘든 지형이다. 이런 곳에 무덤을 만들면 비바람에 무덤이 빨리 무너져 사라진다. 장풍이 되지 않는 지역은 돌을 이용하여 무덤을 만들어야 무덤이 오래 보전된다.

왕조가 만들어지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며 왕의 후손들이 왕릉을 지켜보는 시간의 연속성에서 발달한 묘제 형식으로 보인다. 이 양식이 나중에는 권위의 상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신라초기의 왕릉을 보면 봉분만이 있다.


선릉(성종의 릉)

판석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병풍석을 설치하지 마라

병풍석을 설치한 무덤의 구조를 보면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는데, 병풍석 바닥에 판석을 깐다. 판석이 중요한 기능을 한다. 판석을 치마 모양으로 곡선으로 만든 까닭에 치마 상자를 넣어 상석(裳石)이라고도 한다. 둘레석이 없으면 난간석 아래에 판석을 깔기도 한다.

판석의 기능은 병풍석의 하중을 분산시키고 봉분에서 흘러내린 빗물을 무덤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병풍석의 하중을 분산시키지 않을 경우 돌의 무게에 땅이 내려앉을 수 있으며 빗물이 내려앉은 땅에 고여 광중으로 흘러들어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빗물을 판석을 이용하여 봉분 바깥으로 자연 배출하는 것은 광중으로 물이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무덤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빗물이 광중으로 스며들지 않게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빗물이 스며드는 그 틈새로 벌레도 쓸고 나무뿌리도 파고 들어가면 결국은 무덤이 사라진다.


출처 : 장영훈, 왕릉풍수와 조선의 역사, 2006, 대원사, p201


사대부의 정교한 무덤문화

왕릉에는 내광에 회곽이나 석실을 마련하고 봉분에는 병풍석이나 난간석을 설치한다. 이런 묘제양식이 사대부들에게는 규모를 축소하여 그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광중의 크기와 봉분의 크기도 줄였다. 상혼유석과 상석의 크기도 흉내만 내고 있다. 자칫하면 역모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대부들의 묘는 제대로 만들어졌다. 외광과 내광을 만들고 회곽을 사용하였으며, 달구지질을 통하여 흙의 밀도를 높이고, 둘레석(병풍석)을 만드는 경우에도 사각형의 광중보다 크게 봉분을 만들어 빗물이 스며드는 여지를 없앴다.

묘제에 관한한 유교는 도가나 불교와는 달리 치밀하고 정교했다. 유교는 조상으로부터의 발복에 관한 효사상이 있었다. 그래서 무덤을 하나 만드는데 왕릉의 경우 6개월이상, 사대부의 경우도 며칠씩 걸려서 정성들여 만들었다.

지금 우리의 엉터리 무덤문화

지금 둘레석을 만드는 이유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효도를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향은 ‘석물을 해야 효자’라는 석물 장사꾼들의 호사스런 말장난에 놀아난 불효자들인 경우가 많다. 값싼 중국산 돌을 수입하여 설치하므로 많은 이익이 남는 장사이다.

풍수학적으로는 돌을 사용해야 하는 자리라면 좋은 자리가 아니다. 일례로 석축을 쌓는 것도 그러하다. 장풍이 되지 않는 지역의 땅은 상대적으로 흙의 밀도가 약해서 푸석하다. 이런 땅은 허물어지기 쉽다. 또한 물을 머금기 쉽다. 습기가 많으면 벌레가 쓸고, 짐승이 구멍을 파기 쉽고, 나무가 쉽게 뿌리를 내리며, 흙이 거칠며 공간이 생겨 흙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어 시신을 해하게 한다.

이렇게 불리한 지질인 경우 돌을 사용하는데, 지금은 좋은 자리인데도 돌을 사용하여 흉지로 만들고 있다. 주위에는 석물로 무덤을 치장했다가 망했다는 소리도 많이 들려온다. 석물로 무덤을 치장하는 경우에는 유리함 보다 불리함이 많아진다.

그 이유는 요즈음 설치하는 둘레석은 무덤 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왕릉에 설치하는 병풍석을 설명하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병풍석을 설치하는 경우가 드물다. 궁금하신 분은 서울시 강남구 선릉에 가서 왕릉 축조 방식에 대한 홍보물을 관람하시기 바란다.

석물을 설치하려면 왕릉처럼 설치해야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봉분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야 한다. 그렇게 크게 만들려면 3-4일의 작업시간이 걸려야 하고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은 많으나 그것을 시행할만한 배포를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돈을 들이지 않고 폼만 내려다 망하는 것이다.[qsoon]